규제는 "암 덩어리"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식 어투는 그 표현이 너무나 강해서 자칫 모든 규제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일반 국민에게 심어주기에 십상이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보수 성향 단체들과 언론이 이때다 싶게 무차별적으로 맞장구 치고 나오니 그런 잘못된 인식의 확산이 더욱더 탄력을 받게 되었다.
대통령이나 보수 언론들은 규제 대부분이 필요가 있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이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다. 작금의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의 침체가 2008년 미국발 금융 붕괴에서 비롯되었고, 이 금융 붕괴가 금융에 대한 여러 차례의 규제 완화에서 비롯되었음을 박 대통령과 보수 언론이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체하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과거 부동산 규제 완화가 우리 사회를 거품 사회로 만들었다. 근래에는 규제 완화에 대한 업계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결국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물론 시의에 뒤지는 규제도 있고 완화되어야 할 규제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옥석을 가리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 리더십의 중요한 부분이다. 인물도 옥석을 잘 가리고 정책도 옥석을 잘 가리는 것이 통치의 기본이다. 옥석을 가리지 않고 규제를 무조건 "암 덩어리",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마음에 드는 사람만 기용하는 것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규제를 완화하고 어떤 규제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형성 과정과 그 진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자면 이에 관한 최고 전문가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규제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최고의 대가라고 하면 미국 시카고 대학의 조지 스티글러 교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규제와 관해서 아주 획기적인 주장을 폈고 그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규제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연상하게 되고 업계가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정권이 바뀌거나 경기가 나쁠 때면 업계는 으레 규제 완화를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며, 정부는 못이긴 채 각종 규제를 풀어대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스티글러의 주장은 아주 딴판이다.
규제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은밀한 부분을 보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마치 박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스티글러에 의하면, 주요 규제의 대부분은 산업계와 정치권이 결탁한 결과다. 산업계는 은밀하게 정부에 접근하여 여러 가지 규제의 강화를 요청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입 규제와 수입에 대한 규제다. 자동차 제조업체를 비롯한 각종 독과점 업체들은 새로운 경쟁자가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외국 상품의 수입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비롯한 각종 규제가 실시되도록 경제 단체들이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이런 각종 조치에 대한 대가로 산업계는 정치권에 선거 자금을 제공하거나 표를 모아준다. 스티글러에 의하면 정치가 및 관료는 업계와 공생관계에 있다. 서로 뒤를 봐주는 관계다. 정치인과 관료가 뒤를 봐주는 대가로 업계는 선거자금, 금품, 각종 향응을 제공한다. 이런 거래에서 업계는 정부로부터 보조금, 진입 통제, 대체품이나 보완품에 대한 통제, 가격 규제 등을 그 대가로 챙긴다.
이런 공생 관계에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일까? 스티글러에 의하면, 이런 공생 관계에서 업계가 주도권을 잡고 있으며 정치권은 수동적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정부의 규제는 업계가 요구하고 업계가 주무르는 정부 특혜의 묶음에 불과하며, 따라서 규제는 이익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
스티글러는 자신의 수많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규제 이론에 어긋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그는 자신의 규제 이론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제 후학들이 규제 및 정부의 개입을 연구할 때의 핵심은 언제, 왜, 그리고 어떻게 업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를 이용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과연 후학들은 스티글러의 규제이론을 이른바 '포획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정치가와 관료는 업계에 의해서 '포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에 포획되어 있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강하게 주고 있다.
스티글러와 그의 후학들의 말을 들어보면, 진정 완화되어야 할 규제는 재벌과 대기업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각종 정부의 조치들이다. 우리 경제가 살아나고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재벌과 대기업에 눌려 있는 중소기업이 살아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경제 전문가들이 수없이 외쳐왔다. 후보 시절 박 대통령 자신도 이를 인정하였다. 그래서 경제 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그 공약을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이제는 규제 완화를 서두르고 있다. 경제 살리기에 초조해서 그렇게 서두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진정 우리 경제를 살리고 싶으면, 약속대로 경제 민주화를 강행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규제의 완화가 진정 우리 경제를 살리는지를 대통령은 다시금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규제 완화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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