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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년짜리 핵폐기물'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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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년짜리 핵폐기물' 어쩔 것인가

[시민정치시평] 진짜 공론화 첫발이라도 내디뎌야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진 지도 3년이 지났다. 원자력발전소는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한번 사고가 나면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과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준다. 하지만 비록 당장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원전은 또 다른 엄청난 잠재적 재앙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바로 핵폐기물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원전을 가동하기 시작하여 현재 23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설비용량 기준으로 보면 현재 세계 5위의 원자력발전 강대국이다. 문제는 이들 원전이 전기만이 아니라 독성이 강해 인체와 생태계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은 중·저준위와 고준위 핵폐기물로 구분된다. 원전에서 작업자들이 쓰던 장갑이나 덧신 등이 상대적으로 독성이 약한 중·저준위 폐기물이라면 원자로에서 연료로 태워진, '사용후 핵연료'가 바로 독성이 매우 강하고 오래가는 고준위 핵폐기물이다.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바로 이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과연 인류가 지금까지 감당해 본 적이 없는 10만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을 염두에 두면서 치명적 독성을 가진 고준위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또 그러한 의사결정에는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정부도 20년 남짓 핵폐기물 처분장 선정 과정에서 주민 저항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5년에야 가까스로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할 수 있었다. 원래 정부는 중·저준위와 고준위 핵폐기물을 한꺼번에 처분하고자 했으나 2004년 핵폐기장 문제로 엄청난 사회갈등을 겪었던 '부안사태'를 거치면서 중·저준위 핵폐기물의 처분과 고준위 핵폐기물의 처분을 분리하여 그 저장시설을 이원화하기로 했다. 일단 중·저준위 처분장만이라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처분 후 300년 정도 지나면 방사능이 대부분 안전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중·저준위 핵폐기물과는 달리 고준위 핵폐기물은 최소한 10만 년 정도가 지나야 할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독성 물질이다. 이는 향후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정책 결정과 처분장 입지선정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중·저준위 핵폐기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정부가 부안사태 직후인 2004년 말에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밀어붙이기식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 하에서" 결정하겠다고 공표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참여정부는 그 후속 조치로 2007년에 시민단체 인사들도 참여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공론화 방안을 수립하게 하였다. 이듬해 태스크포스는 일반시민과 이해관계자,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열린 공론화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의 기본원칙으로 천명하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 핵폐기물 전담기관 또는 공론화위원회를 법적 근거 아래 구성하여 핵폐기물 관리방식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책임지고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였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관리정책을 단지 소수의 기술관료와 전문가만이 아니라 일반시민과 이해관계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은 영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이미 강조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고준위 핵폐기물이 단순히 과학기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측면도 포함된 사회-기술 복합체이자, 누구도 그 안전한 처리를 보증할 수 없는 위험 불확실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한 다음 그 관리방안을 결정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태스크포스의 정책권고안을 받은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해 2009년 여름부터 전문가, 지역주민, 일반시민, 정치인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사용후 핵연료 포화 시점 및 관리 필요성 검토, 다양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 대안 검토, 중간저장으로 결정 시 중간저장시설의 입지기준, 운영기간, 부지선정절차, 지역지원방안 등에 관한 사항, 그리고 최종관리방안에 대한 논의시기 등의 사항들이 공론화의 대상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현판식 및 첫 회의가 예정되어 있던 2009년 8월 6일, 이미 예정되어 있던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문제는 기술적·전문적인 사항으로서 과학적·기술적 검토 없이 일반국민을 상대로 공론화가 추진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는 논리였다.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겠다던 정부가 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게 되었을까? 2008년 취임 직후 미국산 소고기 논란 속에서 타올랐던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로 인해 홍역을 치른 이명박 정부가 결국 사용후 핵연료 관리와 같은 휘발성 있는 의제를 일반시민의 참여에 의한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하자는 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크게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결과,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에 의한 공론화로 풀어가겠다던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원칙은 다시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이제 또 몇 년이 흘러, 다시금 고준위 핵폐기물 공론화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2013년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작년 10월 말 인문사회 및 기술공학 분야 전문가 7명, 원전지역 대표 5명,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대표 3명 등 15명의 민간위원으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출범식 날, 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 2명이 공론화위원회의 위원 구성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불참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사퇴 위원들은 위원장을 포함하여 현재 구성된 위원들이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위원 구성이 친(親)원전 쪽으로 편중되었음을 비판하였다. 위원 구성이나 위원장 선출방식 등을 통해 볼 때 공론화위원회가 향후 진정성 있는 공론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사회로부터 '반쪽짜리' 위원회에 불과하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상태로, 과연 공론화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금도 23기의 원전에서는 매년 700톤 이상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가 나오고 있다. 원전 내에 임시방편으로 쌓아두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와 같은 고위험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나 다른 나라에 그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도전이다. 이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공감에 바탕을 둔 모두의 지혜와 헌신이 필요하다. 말만 번지르르한 공론화(空論化)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진정성 있는 공론화(公論化)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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