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박근혜 대통령 집권 1년을 맞아 국내외 평가가 쏟아졌다. 종합하자면 내치에 관해서는 경제민주화 및 복지공약 불이행, 인사정책 실패, 국정원 대선개입을 비롯한 여러 불협화음들에 소통과 대처가 미흡했다는 평가지만, 외교는 잘했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과반수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데 있어 외교점수가 공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는 과연 옳은 것일까?
외교 분야에서 큰 과오는 없었다. 5차례의 해외순방과 주요국 정상들과의 회담, 그리고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중견국가 협의체 MIKTA의 출범 등 대형 외교제안들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외교의 두 기둥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trustpolitik)'와 '균형외교(alignment)'도 적절한 방향설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올해 초에는 보수정부 등장 이래로 사라졌던 통일 담론도 ‘대박론’으로 복귀시켰다. 하지만 겉으로 바쁘고 화려해 보이는 행보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과나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크게 없었다.
박근혜 외교는 반사효과의 덕이 컸다. 이명박 정부의 재난에 가까운 외교와 김정은 정권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晋三)정권의 우경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극적 행보가 오히려 원칙고수의 일관성 있는 외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당면 난제들이 많은데 난제를 풀기 위해 씨름하기보다는, 이를 미루고 화려한 이미지 외교에만 힘을 쏟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고, 선이후난(先易後難) 외교가 바람직하지만 적어도 방향과 과정은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1년이었다. 그래서 5분의 1이라는 시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외교 행보의 동선이 가리키는 나머지 5분의 4는 기대보다 우려를 낳게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를 구성하는 핵심요소 3가지가 사라져버렸다. 신뢰프로세스에는 프로세스가 없고, 균형외교에는 균형이 없으며, 외교 및 통일정책에는 주무부서가 없다.
먼저 신뢰프로세스에서 프로세스가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인들이 공존하기 위해 상호신뢰가 필요한 것처럼 국가 간에도 신뢰가 있어야 공존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물론 국가 간에 신뢰가 있으면 대외관계가 원활하고 갈등의 가능성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먼저 신뢰를 보여야만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은, 반대로 상대방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어떤 선제적인 조치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외교무대에서의 주도권 포기라 할 수 있다. 대북정책과 대일정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신뢰를 할 수 없고 상대가 변하거나 굴복하기 전에는 아예 만나지도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이코노미스트>지는 박근혜의 외교는 신뢰외교가 아니라 반대로 '불신외교(distrustpolitik)'라고 냉정하게 꼬집었다.
현실의 국제관계에서는 ‘신뢰’관계보다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 신뢰가 힘든 국제정치에서도 상대방을 설득해 국익을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외교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신뢰할 수 있는 편하고 우호적인 상대들만 골라서 만나는 외교를 해왔다. 또한 신뢰는 협상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우선 대화나 합의가 있고, 그것을 이행해나가면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 원래 용어대로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과정은 시동도 못하고 전제조건이 출발을 막고 있는 형국이다. 신뢰외교는 국익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만 어느새 한국외교의 근본이념이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하다.
두 번째,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에 정작 균형은 없어지고 있다. 미국을 위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거의 드러내놓고 자임했던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특히 대북정책에 대한 한중협력을 모색했다. 당선자 시절에 전례를 깨고 미국에 앞서 중국에 특사를 파견함으로써 사전 정지작업을 했던 것과 취임 후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새로운 동반자협력관계에 시동을 건 점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균형외교 역시 지난 1년의 실행과정을 볼 때 아쉬운 점이 많다. 한중관계의 새로운 밀월이라고 선전했지만, 구체적으로 진전된 것은 별로 없다. 물론 양국의 외교부, 국방부의 전략대화도 열렸으나 여전히 대북공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핵실험과 장성택사건에서 보인 북한당국 예측불가의 행동들은 일단 중국의 대북인식을 변화시키고 한-미-중의 공조 가능성은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호하는 해결방안과 결과는 다르다는 점이 시간이 갈수록 부각되었다. 중국의 속내는 협상을 선호하고, 한미 양국이 6자회담 개최조건의 문턱을 낮추기를 바라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의 노선을 따르면서 중국이 대북압박을 해서라도 굴복시키기를 바란다.
일본의 우경화로 인해 한중관계가 잠정적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대중봉쇄의 틈바구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갈등과정에서 표면화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념논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균형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미·중 또는 중·일의 갈등위험이 커지고 있는 현 구도에서 상황을 오히려 이용하는 외교가 요구되지만 여전히 한국의 외교는 한미동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수동적인 외교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 중 상당 부분은 한국외교의 한미동맹 관성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60년간 군사안보분야를 넘어 사회규범과 정체성마저 일체화되면서 한미동맹은 더 이상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신화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한미동맹에 중독된 한국이 동맹을 신성시하면서 남북대결구조는 강화하고 있는 패턴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세계 11위권의 국력과 북한의 40배의 GDP를 가지고도 있음에도 리더십이나 일반국민들을 막론하고 동맹 없이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전시작전권 재연기를 시도한 것이나 한미동맹의 군사적 측면이 강화되고 안보 과잉이라고 할 만큼 군비증강에 가속도를 내는 것들은 상당부분 이러한 한미동맹 중독의 결과이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지나친 의존이 균형외교를 어렵게 만들었다. 동북아에 부활하고 있는 대결적 진영외교를 반대해야 하는 당위성은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편입되었기에 운신의 폭은 작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이 대북억지를 넘어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속된다는 함의를 가진 전략동맹을 박근혜 정부가 계승했다. ‘포괄적 전략동맹’은 한미동맹을 대북억지동맹에서 범세계적 파트너십까지 확장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주장하지만,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없이 글로벌 협력만 우선함으로써 한국이 미국의 군사 전략적 필요에 따라 움직일 개연성을 증대시켰다.
특히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양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에 투자하고 있으며, 양국 군대의 공동운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오바마의 언급은 한국의 MD 참여를 기정사실화 하는 발언이었다. 중국정부의 레드라인은 한국의 MD 참여라고 할 수 있기에 한국의 입장은 시간이 갈수록 난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로 인해 한미일의 삼각군사협력 구축이라는 미국의 구상이 소강상태를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원래 이 전략의 핵심인 대중봉쇄의 근간이 철회된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미·중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경우 한국은 일본과 함께 대중봉쇄의 첨병 역할을 요구받을 여지가 남아있다. 어쩌면 현재의 소강 또는 과도적 국면이 한국이 서둘러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끌어냄으로써 강대국의 권력재편에 휘말리지 않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그런 의지와 전략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원래부터 대통령 자신이 대미의존성향을 가진데다 육사 출신의 친미엘리트들이 핵심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정치적 기반이 강력한 보수친미 세력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미국을 설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의 외교에는 외교부가 없고, 통일정책에는 통일부가 없다. 우선 합리적이고 제도화된 정책 결정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선호에 의한 정책 결정이 지배하고 있다. 정책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다음 지시가 떨어지기를 목매고 기다리는 모습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외교부나 통일부의 전문성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한국사회는 이른바 안보 담론이 지배하고, 이에 편승한 군 출신의 강경파 인사들이 외교·통일 정책을 주도했다. 그 결과 통일부와 외교부 등 주무부서가 주변으로 밀려났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그리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대북정책에서도 의사결정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들 핵심 3인방 외에도 청와대의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 등에도 육사 출신의 인물들이 포진해있다. 국가안보실과 최근 부활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기능과 지휘체계의 중첩과 혼란 가능성은 물론이고 통일부와 외교부의 주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위험이 크다. 게다가 통일대박론의 후속조치로 발족시킨 통일준비위원회 역시 통일부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
안보우위담론은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보수층의 여론을 결집시킴으로써 지난 1년간의 지지율 유지에 공헌했지만, 한반도 정세는 도리어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안보를 강조하고 북한에 대한 단호한 원칙을 앞세우는 것에 대한 언론과 국민들의 높은 지지는 집권 보수세력이 외면하기 어려운 정치적 자산일 것이다. 특히 국내 정치에서 어려움을 겪을수록 이에 편승하려는 유혹은 더 커질 것이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바깥보다는 내부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국익은 새고 치열한 외교전에서 밀려날 수 있다. 게다가 동북아의 복잡하고 딜레마적인 상황이 가져다주는 외교적 난제들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올 때는 외교를 활용한 지지율 제고가 계속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외교안보분야는 워낙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에 완벽한 정답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은 어떤 리더십도 쉽게 헤쳐나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는 국익이 최우선이어야 하며, 정권차원의 정략적 이익이 기준이 될 수 없다. 국내 정치와 마찬가지로 외교도 원래 공약대로 돌아가야 한다. 신뢰프로세스에서 프로세스를 살려내고, 균형외교에서 균형을 회복해야 하고, 주무부처의 전문성을 중심으로 끌어와야 한다. 외교도 통일도 정치 담론이 아니라 정책 담론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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