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검사들이여, 김익진 총장을 기억하라"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2대 검찰총장이었던 김익진 총장은 1949년 당시 검찰이 김구 암살 사건을 파헤치려 하자 이른바 '검찰 장악'을 위해 임명된 총장이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던 김익진 총장은 검사들이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라는 정치 브로커 일당을 구속하려 하자 정권으로부터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그 결과 김익진 총장은 검찰총장에서 서울지검장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익진 총장은 "대통령이 그만 두라고 해서 그만 두면 나쁜 선례가 되며, 검사의 신분 보장 규정이 유명무실해져서 일선 검사가 소신을 갖고 수사·기소를 할 수 없게 된다"면서 옷을 벗지 않고 인사를 받아들였다. 머지않아 김익진 총장은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에 연루돼 결국 옷을 벗고 말았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후배 검사들이 귀감을 삼아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특히 어떤 사정이 있었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스스로 옷을 벗은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당시 칼럼에 언급하려다 뺀 인물이 있다. 채동욱 총장이 떠날 때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함께 옷을 벗은 이가 있다. 김윤상 전 대검 감찰 1과장이다.
그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 "본인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 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 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아들딸이 커서 역사 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서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라고 자진 사퇴의 변을 밝혔다.
그는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왔으니까 이쁘게 봐줘'라고 해야 인간적으로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고 하면서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10여년 전에 동아일보 기자가 한 부장급 선배 기자의 퇴사를 보며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좋은 사람들은 다 나가요."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가 됐지만 야당지로 명성을 날리던 동아일보의 논조가 바뀌면서 민완 기자들이 줄줄이 떠나던 때가 있었다. '좋은 사람들 다 나가면 되돌려 놓기 더 어려워질텐데'라는 하소연도 들렸다.
김윤상 검사에게도 '경솔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권력구조상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검찰을 그냥 둘 날이 올지 모르겠다. 아니, 검찰을 그냥 두는 것이 최선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민주주의가 더 성숙하게 되면 검찰의 공권력이 공정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기대 정도는 하고 있다. 그를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조직에 끝까지 남아 그런 날을 일궈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솔하다'고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생각에 회의가 든다. 요즘 검찰의 모습을 보니 그렇다. 김용판 사건 재판에서도 공소유지 의지가 있느니, 없느니 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 사건 수사 검사들은 다 좌천됐다고 한다. 채동욱 총장 혼외자식 의혹 관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도 수사팀에서 뺐다고 한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근 간첩 조작 의혹 사건에서는 중국 공문서 위조 의혹이라는 전대미문의 망신까지 당하고 있다.
김윤상 검사가 맞는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김 검사의 아이들이 2013~2014년 사이에 연쇄적으로 일어난 위의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아빠는 그 때 뭐 했어?"라고 한다면 그의 말대로 "훌훌 털고 나왔으니 이쁘게 봐줘"라고 할 수 있어야 덜 괴롭지 않겠는가.
김 검사에게 이 상황은 미래의 일이지만 남아 있는 검사들에게는 현재의 일이다. 국민들이 묻고 있다. "당신들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작금의 굴욕적인 상황에 대해 바로 지금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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