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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산업자본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의 의미

[시민정치시평] 론스타 사건을 통해 본 금융관료들의 실체

지난 2월 28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선 사람들이 펼쳐 든 플래카드에는 '금융위는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임을 알고 있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문구가 중요한 이유는 금융감독당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때부터 매각 결정까지,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발언을 하고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와 지배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이라는 간단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사건의 중심에 있던 금융관료들과 감독기구가 얼마나 현란한 거짓들을 동원했는지, 그 거짓들이 어떻게 진실의 햇살 아래 드러났는지 살펴보자. 이 일은 상당히 흥미롭지만 그저 재미삼아 하는 일은 아니다. 금융 시스템을 현재와 같이 금융위 주도 아래 맡겨도 되는지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금감원장, 자신도 믿지 않는 얘기를…

2011년 12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보고는 론스타의 외환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논란 때문에 시작됐다. 론스타가 자산 규모 2조8000억 원의 일본 내 골프장 사업체 PGM홀딩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난 이후였다. 은행법은 비금융회사의 자산 규모가 2조 원 이상일 경우 비금융주력자로 규정해 은행을 인수·지배할 자격을 부인하고 있다. 론스타의 외한은행 지배의 적법성이 뿌리부터 흔들린 것이다. 보고자로 나선 권혁세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비금융회사인 PGM홀딩스의 자산 규모가 비금융주력자 요건을 초과한다고 인정하였다.

"비금융주력자 제도가 국내 산업자본의 은행 사고금화 방지를 위해 마련된 만큼 론스타의 특수관계인 범위를 제한 없이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법 집행기관의 수장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월권을 저질렀다. 비금융주력자 제도는 외국 자본에는 엄격히 적용되지 않고 국내 산업자본에만 적용된다는 해석을 한 것이다. 권 원장의 월권은 그마저도 '거짓'이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국부 펀드의 일종이었던 테마섹이 2004년 하나은행 주식을 살 때 비금융주력자라고 판단하여 4% 초과 보유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10% 이내까지만 보유를 허용했던 과거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거짓의 증거는 또 있다. 이 거짓은 2013년 7월 참여연대와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공개한 이른바 '추경호 보고문건'만 보아도 금세 들통 난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막바지에 이르던 2003년 7월 23일, 당시 추경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은 당시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에게 내부 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어떻게 하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할 수 있을까였다. 갖가지 시나리오를 짜본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말미에 "은행법상 은행의 인수자가 산업자본인 경우 예외승인도 불가능하다"는 의미심장한 결론을 내렸다.

테마섹의 실제 사례와 추경호 문건은 은행법의 유권 해석기관이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을 불문하고 산업자본은 은행의 인수와 지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권 원장이 이런 내막도 모르고 금융감독원장이 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권 원장은 2011년 정무위 현안보고에서 국민이 뽑은 대표들에게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얘기, 즉 거짓말을 한 것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노력이 속도를 높여가던 2011년 3월 16일, 금융위는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론스타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금융위의 심사 결과 발표는 반기별로 하게 되어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몇 년 동안 방치하다가 3년 6개월분에 해당하는 7개의 심사 자료를 론스타로부터 한꺼번에 제출받아 이뤄졌다. 물론 론스타는 비금융회사에 속하는 일본 계열사를 누락시켜 비금융주력자가 아닌 것처럼 꾸민 서류를 제출하였다.

'비금융주력자 아니다' 아니라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 7개의 무더기 심사자료를 받기 이전에 금융위가 론스타를 1년 반 동안 다그쳐 2008년 9월 론스타로부터 받은 적격성 심사자료에는 론스타 스스로 비금융주력자임을 시인하는 계열사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때의 제출 자료를 의도적으로 묵살하였다. 인수 자격이 없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승인했던 금융위가 이번에는 론스타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외환은행을 안전하게 매각할 수 있게끔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때 금융위가 보도자료에 써놓은 문구다.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로 보기 어렵다."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 여부에 대해 간단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자산 총액에서 비금융자본(산업자본)의 비중이 25%를 넘거나 금액 기준으로 2조 원을 초과하면 비금융주력자다. 이 기준 이외에 고려해야 할 다른 기준은 없다. 따라서 론스타뿐만 아니라 어떤 은행의 대주주도 비금융주력자이거나 비금융주력자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에 해당할 뿐이다. 그런데 보도자료의 문구는 비금융주력자 여부가 아니라 비금융주력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행정감독으로는 외환은행의 대주주로서 론스타의 적격성을 승인하고, 혹시라도 론스타 사건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질 때를 대비해 변명거리 하나라도 만들어두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고자료에 담아 놓은 것이다. 얼마나 노회하고 얼마나 비겁한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정보공개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가 2011년 3월 보도자료에서 말한 것과 달리 금융위는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였음을 적어도 2008년부터 알고 있었다.

그 회견 이후 일부 언론의 취재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논란 등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힘들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인해 더 이상의 거짓을 지어낼 수 없자 금융감독당국이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투자자국가소송(ISD) 뒤로 숨어 버렸다고나 할까.

금융의 공공성 위에서 작동하는 '모피아'의 집단 이해

론스타 사건이 현재 진행형인 것은 외환은행 불법 인수와 지배로 인한 막대한 부당이득 실현이나 4조6000억 원의 시민들의 세금이 걸린 ISD 때문만은 아니다. 론스타 사건 전체에 걸쳐 금융관료들은 궤변을 일삼고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 비겁한 처신을 하였다. 그리고 론스타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데 협력했던 금융관료들은 예외 없이 힘깨나 쓰는 자리로 보상을 받았다. 론스타 사건을 통해 우리는 금융의 공공성이나 국익보다 우위에서 작동하는 소위 '모피아'의 집단적 이해를 실체로서 확인하였다.

금융 정책과 금융 감독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양손에 틀어쥐고 있는 조직이 금융위원회다. 금융위가 모피아의 집단적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이 항상적인 위기 상태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생생한 증거가 론스타가 제기한 ISD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시민들의 혈세가 낭비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모피아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론스타가 한국을 불법과 꼼수가 용인되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할 것이 자명하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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