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한국노총 소속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상급단체가 없는 공공기관 노조 대표자들이 한데 모여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대응 계획을 확정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노조의 연대와 시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약 보름 만이다.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13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전국 전체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 대회'에는 양대노총 소속 공공기관 187곳과 상급단체가 없는 기관의 노조 12곳이 참석해, 공공기관 방만 경영 책임 전가와 노조 무력화 시도 등을 규탄했다. 현재 전국 304개 공공기관 중 노조가 있는 기관은 200여 개다.
이들은 각 기관에서 단체협상을 개악하려는 일체의 교섭을 모두 거부하고, 교섭권을 소속된 산별연맹과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로 위임하기로 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을 위한 '노정 교섭은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개별 노사교섭 상황을 좌지우지하고 있단 판단에서다.
이들은 "공공기관 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그 방향과 내용은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교섭에 나선다면, 국민 시각에서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과감히 합의로 해결할 의사도 충분히 있다"고도 밝혔다.
3월 말부터 시행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전면 거부한다는 계획도 재확인했다. 이들은 "현재와 같은 상대평가 형식의 경영평가가 강행되면 이는 곧 정상화 대책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노정 교섭 거부와 정상화 추진 계획이 강행되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도 밝혔다. 각 공공기관 노조는 임금 교섭 일정을 3월부터 순차적으로 맞춰가며 같은 시기에 공동 쟁의행위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양대노총 공공기관 부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명박 전 대통령,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등 5명 배임죄로 고발할 계획이다.
양대 노총 '연대' 강조…새누리당 향해선 '내려가라'
이날 대회에서는 양대노총 위원장이 한목소리로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서로 다르게 살아온 세월을 극복하려는 매우 의미 있는 자리"라고 대회를 평하고 "신뢰를 회복하고 '성과'를 남기길 수 있도록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지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은 "양대노총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박근혜 정권에 큰 감사를 올린다"며 "신 위원장 말씀대로 잘못된 것은 '단절'이었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노조는 '동네 북'이 됐다. 이번 투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기업을 만들자"고 말했다.
한국노총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 역시 "대통령이 진두지휘하고 각 장관이 개가 돼 우리를 물어뜯으려고 하니 각 산별로는 싸울 수 없다"며 "단결해야만 대정부 교섭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인상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은 "박근혜식 '불통 개혁'에 맞서 올해 노동절 집회를 양대노총이 같이 하면 좋겠다"고도 제안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24일엔 금융감독원이 '진돗개식 끝장 검사 실시' 계획을 보고했다.
이날 대회에는 박원석 정의당 의원과 진선미 민주당 의원,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도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이 공공부문 노조가 연대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양대노총이 보란 듯이 이 자리에 모였다"며 "내란 음모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해 참가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박 의원은 "정부가 비정상의 대표적 사례로 든 12개 기관 복리후생비 3000억 원은 1인당으로 계산하면 84만 원 수준"이라며 "이게 과도한 도덕적 해이라면 지난 정부 시절 처음부터 문제 있다고 했던 용산역사 개발 사업으로 철도공사에 생긴 2조4000억 원의 부채는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부채관리 최우수 기업이었던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으로 8조 원이란 빚더미를 떠안고 가장 부실한 공공기관이 됐다"며 "정책 실패와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을 향해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 의원이 단상에 올라 연대사를 하려 하자 대회장 이곳저곳에서 '물러가라', '새누리당은 가라', ', '공공기관 노조 망친 게 누구냐' 등의 야유가 빗발쳤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도 도와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항상 한국노총․민주노총과 대화하며 30년을 살았다"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으나 '탈당하고 와라', '(새누리당)은 안 도와줘도 된다' 는 화살만 돌아왔다. 이 의원은 1분여 단상에 있다가 바로 내려갔다.
이날 대회는 지난 5일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대위(양대노총 5개 산별연맹 대표자회의)가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문제는 38개 중점관리 대상 기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304개 전체 공공기관을 향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마련됐다.
정부, 38개 중점관리 대상 기관 복리후생비 31% 삭감키로
한편, 정부는 이날 현오석 부총리 주재로 제4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중점관리대상 기관의 부채 감축 계획과 방만 경영 정상화 이행계획'을 추진키로 의결했다.
이행 계획에는 38개 중점관리 대상 공공기관의 복리후생비를 연말까지 4940억 원에서 3397억 원으로 줄인다(31% 삭감)는 방침도 포함됐다. 또 과다부채 중점관리 기관으로 지정한 18개 기관에서는 2017년까지 사업 조정과 자산 매각, 경영 효율화 등 자구 노력을 기해 42조 원을 부채 삭감 용도로 마련, 이를 통해 부채 비율을 259%로 낮추겠다고 계획했다.
부채 총계가 185조 원인 LH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석탄공사 등 5개 공공기관이 제출한 부채감축 계획에는 '미흡' 판정을 내리고 내달 말까지 추가 대책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정부는 이들 기관의 이행 실적을 오는 9월 말에 중간 평가해 부진하면 기관장 해임 건의 등 엄중 문책하고 내년 임금 동결 등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
정부의 이날 발표에 대해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대위와 공공기관 노조 대표자들은 대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열어 "부채를 키운 4대강 사업 등과 관련,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조치는 한 줄도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경쟁 도입, 사업 축소와 매각, 민간 개방 등을 언급함으로써 '공공기관 민영화'를 추진하겠단 의지를 노골적으로 밝혔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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