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교통의 세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집과 인류문명의 영역이 아닌 곳 사이가 모두 교통의 세계이니 말이다. 가끔씩 교통을 의식주에 이어 네 번째 생활의 필수 요소로 꼽는 학자도 볼 수 있는 만큼, 교통이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통망과 그 유지관리 체계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철도나 고속도로가 어디로 향하는지, 사용 요금 또는 운임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 체계들이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 사람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평가하고, 때로는 이익 단체로 뭉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 체계들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지속가능교통 :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의 핵심 제안은 주차 예치금 제도(Parking Deposit Systems)다. 이 제안은 간단히 말해, 국내에서도 가끔 화제가 되는 혼잡통행료를 주차료와 결합시켜 도심지 승용차 통행량을 줄이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이 시스템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다른 구상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이 제도가 적절하게 작동할지에 대해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한편 내 생각을 덧붙여 보겠다.
모형의 구조
현재 국내에서 도심 진입 차량에게 돈을 부과하는 곳은 남산 1·3호 터널 뿐이다. 그마저도 18년 전(1996년) 정해진 요금인 2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1050원 수준인 대중교통 기본운임과 비교해 보면 비싸 보이겠지만, 승용차를 굴리는 데 들어가는 개인적·사회적 비용과 비교해 보면 사실 그렇게 큰 돈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격을 정하던 당시에는 휘발유 3L의 값이었으나, 이제는 1L 정도의 값이 되었으니 유명무실한 규제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은, 18년 전 시장의 결단이 화석처럼 남아있는 모습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듯하다. 남산 터널 혼잡통행료는 그맘때쯤 한국의 환경 의식이 크게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는 흔적처럼 그리 큰 의미 없이 남아, 혼잡통행료가 얼마나 도입하기 어려운 체계인지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시 당국은(보도가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지금까지도 교통 관료들은 그 꿈을 버러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혼잡통행료를 굳이 왜 징수하려 했던 것일까?
승용차는 어떤 길에서나 비슷한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니, 분명 20세기 문명이 인류에게 준 최고의 선물 후보 자격을 가진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승용차의 전부는 아니다. 승용차는 한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 가장 많은 공간을 점유하는 통행 방식이다. 이는 토지가 넉넉한 외곽이나 농촌 지역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인간 활동이 밀집해 있어 토지가 비싸고 부족한 도심 지역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내 계산에 따르면, 운행 중인 서울 시내버스에는 평균 약 12명 정도, 도시철도 1량에는 평균 54명 정도 탑승해 있는데 반해 승용차에는 1.3명 수준만 탑승한다. 물론 승용차는 어떤 기준에서도 시내버스의 1/10, 전동차 1량의 1/42에 불과한 작은 기계는 아니다. 승용차 이용자는 대중교통 이용자보다 훨씬 많은 자원과 공간을 소모하게 된다. 좁은 도심의 일부를 주차 공간으로 점유하게 되고, 보행자들이 위협적이고 시끄럽고 먼지를 뿜는 차량들에 시달려 오히려 거리를 다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귀결은 덤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교통량이 서로 비슷한 도심 도로와 외곽 도로가 있다고 해 보자. 이때 도심부 승용차 주행비용과 외곽의 승용차 주행비용이 비슷하다면, 도심부 승용차에게는 사실상의 보조금이 주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측은 비슷한 자원을 소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도심부 승용차 쪽이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 대중교통 통행자에게도 편익이 돌아갈 수 있었던 도심의 공간을 점유하는 기회비용을 사회로부터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심을 그냥 통과하기 위해 진입하는 사람들의 경우 도심지의 인간 활동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도심에 승용차를 끌고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추가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비용부담은, 혼잡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주차장 비용밖에 없다.
나는 일전에 이런 상황을 놓고, 주차장 요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혼잡통행료를 도입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글을 준비했던 적이 있다. 그 글은 아쉽게도 원하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아마도 참신한 생각은 아니었던 데다가 통과 교통에도 돈을 부과하는 방법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리카와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주차 예치금 제도는 이런 단점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제안이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특정 구역(대체로 도심부) 진입 시 예치금을 납부한다.
2) 도심 내 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예치금의 일부를 반환한다.
2-1) 이 모형은 화물차를 비롯한 모든 차량에 적용한다.
3) 도심 내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는 차량에게는 예치금을 전혀 돌려주지 않는다.
혼잡통행료라는 교통 학계 또는 업계의 중대한 문제를 풀어냈다고 주장하는 야심찬 주장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아주 단순한 모형이다. 하지만, 이 모형은 분명 혼잡통행료가 지닌 중요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인다.
먼저, 도심 통과의 비용을 올려서 도심을 목적지로 하는 통행과 무관한 차량을 외곽으로 빼내는 목적을 3)을 통해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예치금을 미리 받은 다음 다시 전혀 환급하지 않는다면, 도심 진입 차량에 대한 충분한 벌칙이 될 것이다. 이런 차량은 도심 혼잡만 일으키지 도심의 인간 활동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이런 조치가 합당하다.
반면, 도심을 목적으로 하는 통행에게는 2)를 통해 통행의 부담을 경감한다. 이 모형은 이 부분에서 기존의 혼잡통행료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혼잡통행료는, 도심에 진입한 차량에게 징수한 돈을 다시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도심 목적 승용차 통행의 비용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차 예치금 제도는 일부를 돌려주기 때문에, 도심 목적 승용차 통행의 비용을 크게 올리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평할 수 있다.
화물차에 대한 대책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특별히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론 화물 수송 차량이 필요하다. 현재 화물차는 흔히 볼 수 있듯 길가에 마음대로 정차하여 특히 좁은 길이나 시장 주변에서 차량 소통을 크게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을 억제하기 위해, 모리카와는 화물차가 주차할 하역 주차장을 설정하여 거기서 하역 업무를 처리하게 하는 한편, 하역 주차장에 주차한 차량에 대해서만 주차 예치금을 환불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하역 주차장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대다수의 시민들이 환영할만한 안으로 보인다.
이외에, 이들 돈은 주차장이나 노면전차, 기타 보조 시설을 지을 돈을 확보할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혼잡통행료와 동일하지만, 주차 예치금을 도심 주차 차량에게 얼마나 돌려줄지 그 비율을 조정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잡통행료와는 또 다른 점이 있다.
모리카와는 설문조사를 통해 이 모형의 수용성이 혼잡통행료 모형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밝혔다. 대부분의 업종 종사자들이, 도심 진입 승용차의 비용을 크게 높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혼잡통행료보다 주차 예치금 제도를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단, 자동차운수업(주차장, 화물, 택시) 측의 반발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주차장이나 화물차의 경우 어느 정도 대안이 있다. 주차장의 경우 이 제도의 중추인 만큼 약간의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화물차 대책이라면 이미 앞서 언급했다. 그러나 택시의 경우 과연 쉽게 설득할 방법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의문: 어느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 주차 예치금 제도가 적절한가?
모리카와와 동료들이 이런 모형을 적용해 보고 빈약하나마 실험도 해 보았던 도시는 나고야였다. 이 도시의 도심은 국내 대도시 가운데 대구에 비견할 수 있다. 비록 광역권 인구는 800만 이상으로 부산 일원의 동남권보다도 많지만, 중심도시의 인구는 대구와 비슷한 230만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아마도 국내에서도 대구 이하의 규모를 지닌 도시에서라면 큰 문제 없이 주차 예치금 제도를 시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 도시보다 더 큰 도시에도 주차 예치금 제도가 적절하냐는 데 있다. 모리카와는 세계에서 가장 인간 활동의 밀도가 높은 도심을 지닌 도시인 도쿄에서도 이 방안을 추진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주차 예치금 제도는 도심 진입 승용차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시키려는 특징을 가진 제도다. 도시가 커질수록 도심의 인간 활동 밀도도 커지며, 결국 도심을 목적지로 삼아 진입하는 차량도 제한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해야만 교통 체계가 사회적으로 최적 상태가 되는 도시 규모가 있게 마련이다. 도쿄나 서울의 밀도가 이 수준 아래라면 주차 예치금 제도를 채용해도 무방하겠지만, 서울은 물론 부산의 도심조차도 그런 밀도일지는 의심스럽다.
또 한 가지 지적을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지 않았으나, 지역 상권이 제공하는 명백한 승용차 보조금 관행이 존재한다. 바로 상품을 구매하면 주차권을 무료로 발행해 주는 상관행이다. 저밀도 지역에서 이런 행동은 물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가게로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이익을 불러오는 관행이다.
그러나 고밀도 도심지에서 이런 행동은 상인들의 매출은 늘릴 수 있을지 몰라도 도로에는 과중한 부담을 줄 것이고 대중교통 이용객에게 주차장을 유지하는 상인의 비용을 전가시키는 행동이 될 것이다. 주차권 관행 덕분에, 대중교통 이용객이 승용차 이용객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나는 일정 밀도 이상의 도심지나 철도역 부근 상업시설에서는 즉시 주차권 무료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매출 감소는 대중교통 쿠폰을 통해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운임 정책이나 투자와 연계되지 않은 주차 예치금 제도는 이런 주차권 제도처럼 사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물론 모리카와와 동료들은 주차 예치금이 대중교통의 상대 운임을 승용차에 비해 싸게 만들기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어나는 효과가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역시 예치금 제도는 일반적인 혼잡통행료에 비해 도심을 찾는 승용차 통행 비용을 덜 올리는 방안이다. 제도를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서는 예치금 대부분을 환급받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예치금 제도를 통해 도심 승용차 통행을 감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대구보다 규모가 작고 밀도가 낮은 도시에서는, 도심부라고 해서 승용차 통행을 배제해서는 상권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형 도시, 아마도 30만 명에서 200만 명 사이의 도시라면 혼잡통행료보다 오히려 예치금 제도가 도심을 자동차보다는 보행자에게 알맞은 구조로 바꾸는 데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의 도시에서라면, 예치금 제도는 승용차 이용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제로 이 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 역시 기술적으로 그리고 규범적으로 도전적일 것이다. 아무래도 톨게이트를 세우지 않는 방식으로 징수를 하려면, 차량에 식별장치를 부착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프라이버시 문제를 불러일으킬 우려도 있을 듯하다. 정보 시스템에 얽힌 다른 문제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지금 언급한 만큼의 일반적인 문제가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본문 4장을 읽기를 권한다.
책 자체에 대해
원래 책(<道路は、だれのものか>)은 작은 판형(19.2*13.6, 224쪽)의 문고판이었다. 가격도 일어판이 1680엔(약 17700원)으로, 217쪽에 2만 3천원을 받는 한국 책이 비쌀 지경이다. 영미나 유럽 책만 봐왔던 나로서는 꽤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지속가능교통 :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의 구성 역시, 교통 체계와 승용차의 역기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혼잡통행료나 주차 예치금 제도가 어떤 맥락 속에서 요구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서술에 1, 2, 5장을 할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모리카와가 원래 이 책을 냈던 의도는 도심에서 승용차를 억제해야 한다는, 상당한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목표를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아무리 교통 체계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부족한 한국 풍토라고 해도 이 책 전반의 서술은 전혀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수준이며, 따라서 역자나 출판사들 역시 모리카와처럼 이 책을 좀 더 가볍고(한국어판은 하드커버다) 싼 가격으로 내놓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리카와의 책은 승용차의 역기능에 대해 초점을 맞춘 저술이므로, 교통 체계에 대한 폭넓은 조망을 얻기에는 역부족인 감이 있다. 도로 교통 체계에 대해 국내에서 가장 흥미로운 서술을 보여주는 책은 <트래픽>(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김영사 펴냄)이다. 이 책은 교통 체계와 인간 심리가 어떻게 상호작용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밴더빌트는 폭넓은 역사적 고찰과 전 세계를 누비며 수집한 방대한 사례를 통해 도로 교통 체계가 대체 어떤 구조로 이뤄진 체계인지에 대한 폭넓은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특히 방대한 사례 수집은, 미국 논픽션 저술이 지닌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교통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지니고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겠다. 단,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2009년)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어서 다시 인쇄되어 교통 체계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