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공통점이 많다. 농정분야는 두드러진다. 공히 '기업화'와 '산업화'를 농정의 공통, 핵심화두로 삼고 있다. "대기업 등 기업농 중심의 규모화, 집단화, 시설화로 농업을 산업화, 공업화하겠다"는 욕심이다. 따라서 '농업선진화', '첨단 융복합 6차농산업화' 같은 기업농 우선·중심 전략을 초지일관 고수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물리적 성과와 계량적 효율성을 농정의 최종목표이자 지상과제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결국 '농업'의 가치와 목적을 제대로 모른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과 다름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창조농업'이라는 어색한 조어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ICT·BT융복합 농업, 6차농산업화, 스마트농업 따위의 낯선 수사를 지나치게 남발하고 있다. 창조경제와 마찬가지로 창조농업의 실체를 이해하는 농민은 주변에 거의 없다. 주권국가로서의 농정기조가 애초 부족한 것이다. 농정전략으로서 논리와 명분도 허술하고 불순하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오로지 '돈의 위력'을 좇을 수밖에 없다. 수익성에 앞서 '생명의 가치'를 지켜내야하는 농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 대기업이나 재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기업으로는 태생적으로, 운명적으로 좋은 먹거리,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농사나 농업이 아니라, 농산업이나 농공업을 기술적으로, 기계적으로 영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업은, 특히 대기업은 농업에 손을 대면 안 된다. '본디 돈이 안 되는 농업'을 '돈도 되는 농산업'으로 무리하게, 무모하게 접근하면 농업은 실패한다. 결국 기업도, 농민도, 국민도 함께 공멸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 성장주의자, 개발주의자들은 늘 기업 편에 서 있다. 지난해 화난 농심에 불을 지른 동부한농 농업생산 진출 사태를 상기해보자. 정부는 자칫 '대기업과 농민(단체)'의 밥그릇 싸움구도로 왜곡해 치졸하게 몰아갈 수 있다. 심지어 "대기업이 앞장 서야 나라경제도 강해지고 국민들도 행복해진다"고 거짓말로 혹세무민할 게 틀림없다. 이럴 때, 농민들은 싸움의 주제와 목적을, 기왕의 '대기업 농업생산 진출 저지'가 아닌 '대기업 국민 식량주권 침탈 저지' 정도로 정확하고 현명하게 바꾸어 달 필요가 있다.
그전에 '대기업의 농업 진출' 문제는 5% 농민들만의 일이 아니고 100% 국민 모두의 문제임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농민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고고하게 자초하는 건 안타깝고 어리석은 짓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명분도 실익이 없는 소모전이다. 나아가 농정당국이나 대기업 등 외부에서 걸어오는 정쟁을 적당히 피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보다 '중소농 중심의 마을단위 공동농업' 같은 구체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정책모델을 연구·개발하는 데 힘을 더 안배하자. 불의와 비리에는 맞서되, 더 슬기롭고 더 현명해지자. 그래야 더 강해질 수 있다.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농업선진화방안', '기업화, 농산업화'에 불을 댕기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농업선진화방안'은 한마디로 농업구조조정 정책에 다름 아니다. 당시 농정당국이 내놓은 농업경쟁력 방안은 농업주체의 경쟁력 제고, 농업분야 투자유치 확대, 고품질기술 및 수출농업 육성, 시장친화적 농업정책지원시스템 구축 등이 골자다. 여기서 농업주체의 경쟁력 제고는 곧 규모화를 통해 법인화와 기업화를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우리농업의 주력인 소농과 가족농을 도태시키고,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농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투자유치 확대는 대기업과 외국자본에 농업의 문호를 전면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대자본이 농업을 장악하게 방치하겠다는 의도다. 고품질 수출농업육성이란 결국, 일부 농민의 농산물을 소량 수출하는 대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려는 꼼수다. 시장친화적 농업정책지원시스템 구축은 대다수농민에게 농업보조금을 빼앗고, 기업농 중심보조금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엄포다.
한마디로 종합하면, 결국 농업 정책을 신자유주의 기조로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즉, 국가의 식량주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근본적으로 농업은 교역적·경제적 영역으로 다룰 수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게 농업은 한낱 하나의 산업이고 농산물은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무지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저열하고 위험한 인식 수준이다.
FTA, TPP, WTO 등이 난무하는 오늘날 세계적 농업 환경에서 한국의 농업은 국제경쟁력이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정하게 시장원리로만 관찰하고 판정한다면 농업의 존립기반은 사실상 붕괴된 지 오래다. 농업선진화방안에서는 농업을 식량안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국가기간산업이나 생명산업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오로지 산업화 논리, 시장경제논리의 잣대만 남아있다. 농업이나 농민을 위하는 정책이 아니라 '농민들을 농지에서 몰아내려는' 개방농정, 살농정책의 구체적 실천방안일 뿐이다. 모름지기 한 주권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려는 농정기조는 중소농, 가족농 중심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마을과 지역이 함께 두레공동체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업 약소국,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농업선진화방안은 태생적으로 문제를 안고 시작했다. 2009년 4월 농식품부가 발표한 농어업선진화방안 47개 과제는 논의 과정에서부터 농민과 국민이 철저히 배제되었다. 심지어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는 뉴질랜드형 농업개혁은 농업계의 이해와 요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방적으로, 자의적으로, 졸속으로 중대사를 결정하고 추진했다. 선정과정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 선진화방안은 농민의 이해와 이득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농업 위기의 원인을 농업의 희생을 담보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개방농정에 두지 않았다. 농민의 보조금 수혜 등 정부 의존성을 주요 병인으로 매도하고 나섰다. 급증하는 이농현상의 원인조차 교육, 의료, 문화 등 정주여건 악화에서 피상적으로 찾는 의도된 오류를 작정하고 범하고 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농업 문제의 본질은 '농사를 지어서는 도대체 먹고살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부는 알면서 모른 척 하고 현실과 사실을 호도했다. 이런 왜곡된 논리를 바탕으로 정부는 정책자금, 농업금융 등을 농기업과 규모화된 주업농에 지원한다는 명분을 들이댔다. 또 각종 규제를 완화해 중소농을 농업의 중심주체에서 퇴출시키고 외부자본의 농업 진입을 자유롭게 하는 망국적 구조조정방안을 노골화했다.
이 방안의 내부를 더 들여다보면 농정당국의 악의는 더 명확해진다. 우선 '미래성장동력' 과제에서는 농업을 식량생산 국가기간산업이 아닌 기업화, 산업화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녹색성장 산업화, 국가식품시스템, 전통주 세계화, GMO 농산물 등은 전형적인 기업화, 산업화의 구호다. 특히 대규모 간척지에 농식품 산업단지를 조성해 수출중심 농업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의도를 공언하고 있다. 국고만 탕진한 기만적인 해외농업기지를 추진하는 대신, 대규모 간척지를 농지로 만들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게 제 정신을 가진 정부가 할 일이다.
소득안정·삶의질 향상 관련 과제에서는 농업소득 이야기가 고스란히 빠져있다. 주로 농촌과 농업에서 퇴출시킨 농민층에 대한 복지제도와 농어촌 서비스 기준 도입에 중심을 두고 있다. 작정하고 농민퇴출을 전제로 한 농업구조조정임을 명백히 시사하고 있다. 친환경적 수로, 농경지 진입로, 다목적 농업용수 개발은 오늘날 백일하에 드러난 대로, 망국적인 4대강사업과 같은 맥락의 토건사업의 일환이다.
또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농업을 자본에 넘기겠다는 '살농정책'의 의도를 분명히 했다. 실질적으로 농업보조금제도 개편이 그 중심이다. 품목단체를 조직화, 규모화해서 이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비농업인의 진입규제가 완화된 상황에서 규모화된 농기업에게 농업을 떠맡기겠다는 의도다.
결국 농업경쟁력강화를 위해서 외국인과 민간자본의 투자유치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책임을 시장으로 떠넘겨 농업을 자본에 팔아넘기겠다는 불순한 기획이다.
이는 곧 기존 정책자금 지원의 방향을 영세·고령농에 대한 지원은 배제한 채, 농기업 중심의 자금지원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포석이다. 결국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출분야, 첨단농업분야에 대한 진출과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식량주권 실현이나 보장과는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함으로써 농민은 대기업의 농업노동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악수다. 뿐만 아니라 민간 대기업 지원농정도 아예 제도화했다. 기업농 농업방식을 유도하기 위해 세액공제 법인세 감면 및 노무지원, 펀드 등을 개별농가가 아닌 법인체에 지원했다. 이로써 주업농의 법인화 및 기업의 농업 진출을 유도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농가경영체 등록제'를 병행했다.
대규모 민간 자본의 농업진출도 공식화됐다. 이전에는 농업회사법인의 경우, 대표가 농민이고 법인의 업무집행권을 가진 자 중 2분의 1 이상이 농민이라야 했다. 하지만, 2009년 5월 '농지법' 개정 이후 대표자가 굳이 농민일 필요조차 없어졌다. 또 법인 업무집행권을 가진 자 가운데 농민 구성원요건은 3분의 1 이상으로 완화됐다. 2011년 11월, 농업회사법인 설립 시 비농업인의 출자 한도 제한도 기존 75%에서 90%로 대폭 완화됐다. 민간자본과 대기업들의 농업시장 진입로를 크게 확장해준 셈이다. 대기업 농업에 대한 막대한 예산지원도 수반됐음은 물론이다. 새만금, 영산강, 한농 등 간척지에 대규모 유리온실 단지(100헥타르 규모, 3개 단지) 구축을 위한 사업자를 선정했다. 애초 단지 당 700헥타르 규모의 농업복합단지 조성 등 대기업이 아니면 참여할 수 없는 사업이다. 부지는 30년 이상 장기임대를 보장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농산업모태펀드는 1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하고, 펀드를 매개로 인수합병을 촉진해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유도했다. 여기에 수출 선도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물류비 15% 추가 지원)를 지원하고 수출보험 지원도 강화했다. 특히 직접투자(FDI) 유치를 확대해 외국자본의 국내진출도 보장했다. 외자유치의 거점으로 식품클러스터를 육성하고 외국인투자자에게는 농업정책자금 및 R&D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기존 중소농 중심의 생산농가는 퇴출을 적극 유도했다. 당초 고령농의 생활안정을 명목으로 도입된 경영이양직접지불제도를 사실상 농업에서 은퇴(퇴출)시키려는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 보조금 지원대상을 기존의 농업인 소유 시설과 장비에서 인프라, 공동이용시설에 대한 지원으로 제한하면서 단계적으로 보조금의 규모를 감축했다. 정책자금 지원의 금리를 인상, 시장금리로 접근시켜 정부보다 시중은행의 자금지원 역할을 강화했다. 이는 주업농과 기업농을 우선 지원해 중소농, 가족농의 퇴출을 촉진하려는 '살농정책'의 실천방안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살농정책'인 농업선진화방안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구호만 '창조농업'으로 변경되었을 뿐이다. 가히 '농업선진화 2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곧 경쟁력, 산업의 융·복합과 일자리 창출, 규제완화와 창의인력 양성 및 투자 확대 등의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등의 현란한 수사로 창조경제를 강변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창의력 있는 경영을 통한 창조농업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농업 경쟁력을 제고해가야 한다"고 현혹하고 있다.
정부 측 농정전문가들은 "농촌 인력구조 개편과 디스토피아 사회의 치유욕구로 분출된 힐링문화 확산, 저성장에 따른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와 개방화로 인한 지구촌의 농업환경 도래 등을 극복하고 그런 어려운 현장에서 블루오션을 찾는 것"이 창조농업이라고 해설한다. 이를 위해, 경비를 줄이고 무엇이든 직접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지는 소비자들은 농업경영에 참여시키는 농업, 즉 체험·관광·연수 차원의 농업 경영 기법을 발전시키고 보급해야 한다고 대놓고 제안한다. 오히려 거대 수출시장에서 틈새를 이용한 수출농산물 생산 전략도 승산이 있다고 자꾸 다그친다. 심지어 거대시장인 중국의 급진적 산업화와 일본 농업 노쇠화는 우리 농업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현혹한다. 알아듣기 어렵다. 손에 잡히는 게 없어 공허하다. 그것조차 아직 생각과 말뿐이다. 들을수록 불안하다.
특히 창조농업을 견인할 모델로 6차산업을 크게 부르짖는다. 농진청이 앞장 서 농업분야의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농업 중심의 가공·유통·관광·체험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6차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농·축산물의 다양한 기능성을 이용한 가공기술 개발·보급, 농업과 타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맞물려 급속히 늘어나는 귀농·귀촌자들의 노하우를 새로운 에너지로 창출해야한다고 자꾸 세뇌한다. 이렇게 기술농업과 6차산업화를 통한 농식품산업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6차산업지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관련 사업 연계지원, 기반정비, 규제특례, 금융지원 등을 수반하는 정책이다. 6차산업화 지원을 위한 농촌산업지원특별법도 발의 중이다.
아울러 식품·외식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촉진, 농식품은 2012년 56억 달러에서 2017년 100억 달러, 농자재는 2012년 7.5억 달러에서 2017년 10억 달러 수출 목표를 세웠다. 2014년에는 수출전문단지제도를 도입한다. 한국형 新(신)실크로드도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농업 예찬론에는 "앞으로의 혁명은 농업에서 나올 것"으로 예측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까지 예언까지 등장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우리 농업을 맡길 생각인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정부의 생각은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대기업이 농사를 지으면, 농민은 농산업 노동자가 된다
대기업은 농업을 망친다. 우선 대기업의 농업진출은 출혈경쟁과 농가소득 감소를 초래한다. 올초 동부팜한농의 경우처럼 특정 품목의 생산량, 수출량이 증가하면 제한된 시장에서 대기업이 경쟁우위를 점할 것은 자명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농 등 일반농가에 전가된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농업진출은 노동집약적 품목보다 시설채소, 버섯류, 축산업 등 공장화, 산업화하기 쉬운 분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농업의 특성상 일부 품목의 농가가 무너지면 해당품목 농가의 작목전환을 유발하게 마련이다. 마치 '도미노현상'처럼 전환된 품목시장에서도 공급량이 급증해 연쇄적 가격폭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농업생산기반도 붕괴된다. 대기업의 이윤추구 본능은 '돈 되는 품목'으로 편중, 저부가가치의 주요 곡물 생산기반이 취약해진다. 식량자급률도 하락하고 국민의 먹거리 불안도 커진다. 생산에서 유통과 판매에 이르는 먹거리의 전 과정이 대기업의 입김에 좌우된다.
농민은 대기업에 종속된 농산업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아 그동안 진행된 대기업의 규모화, 계열화 농업진출 과정에서 대부분 중소농 생산농가들은 계열화 과정에 편입되었다. 생산농가들이 원료와 자재를 모두 계열사에게 공급받고 농가에서는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만 제공하는 방식이다. 유통과 판매 또한 계열사에 의해 관리된다. 결국 농민은 대기업에 종속되거나 예속, 한낱 급여노동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덧붙여 불공정계약 및 부당거래 피해가 줄을 이을 것이다. 대기업의 계열화 비중 확대는 반드시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확대로 직결된다. '슈퍼 갑' 대기업은 시장교섭력이 없는 생산농가를 자기 통제 하에 두려고 한다. 이때 '갑'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계약서와 부당거래가 만연하게 된다.
농업의 산업화로 농민 소득구조는 더욱 악화될 게 자명하다. 대기업이 농업시장을 지배하면 농업 투입재들도 거의 시장이나 기업으로부터 구입하는 구조가 고착된다. 공급자인 대기업이 결정하는 포장, 가공, 유통 등 관련 투입재의 생산원가 부담이 늘어날수록 농민의 소득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농산물의 소비자 구입가격에서 농민의 몫이 차지하는 비율이, 1984년 35%에서 2008년에는 15.8%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고 한다.
나아가 농지는 투기상품으로 변질된다. 이러니 대기업 입장에서 농업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설사 농업 자체에서 돈을 벌지 못해도 기업과 땅이 남는다. 수직계열화로 기업규모를 확장, 주식상장 이득을 노릴 수 있다. 농업용 토지가 나중에 사업부지로 전용하거나 투기용 토지로 매각될 수도 있다. 현대그룹은 농지인 서산간척지를 특구로 지정받아 간척지로 분양하고 있다. 새만금간척지도 당초와는 달리 농업용 토지는 30%로 축소되고, 70%가 산업 및 관광 중심 복합용지로 변신했다.
협동과 연대의 중소농 중심 '마을·지역 공동농업'이 해법이다
대기업 동부팜한농의 농업생산 진출은 지난 한해 우리 농업계의 최대 쟁점현안이었다. 동부팜한농의 슬로건은 '씨앗에서 식탁까지'다. 세계 농업시장을 독과점으로 지배하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기업 카길, 몬산토 등과 일치한다. 곧 국내 농업생산과 식량소비 전반을 장악, 지배하려는 자본권력의 욕심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대규모 생산단지를 조성해 상품성 있는 특정 작목의 농산물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농업시장에서 독과점적 시장권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사업전략은 가히 기만적이었다. 동부팜화옹이 전량 수출용 토마토를 생산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덤핑수출이 아닌 이상 연간 수천 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토마토를 수입할 시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난해 일본의 국내산 토마토 수입량은 2000여 톤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동부팜화옹의 연간 생산량 5000여 톤이 전량 수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거짓말이다. 무엇보다 일본이라는 시장은 수출가능한 상품규격을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설사 요행히 수출을 한다 해도 국내 수출시장 확대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수십 년 동안 일본 등 수출시장을 힘들게 개척해 온 국내 토마토 생산농가들과 몫을 빼앗는 결과일 뿐이다. 결국 동부가 수출시장에서 판로를 찾지 못한 토마토 등 농산물은 국내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기존 중소농 생산농가들과 출혈경쟁, 동반 가격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업은 본디 이윤추구가 기본 목적이다. 그 목적에 보다 충실한 대기업은 국민의 먹거리 안정과 식량자급률보다 상품성 있는 작물에 더 관심이 많다. 그렇게 농업구조를 교란하고 재편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OECD국가 최저수준인 국내 식량자급률(2013년말 현재 22.6%)은 더욱 하락하고 대기업의 먹거리 독점이 심화될 것이다. 국민의 먹거리 복지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대기업은 유리온실에 이어 식물공장 등 공장식 농업마저 불사한다. 식물공장 같은 방식은 선진농업이 아니라 차라리 첨단공업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농촌공동체 유지, 생태환경 보전, 휴식과 치유 공간 제공 전통적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악화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국내 농업시장 진출 양상은 실로 다종다양하다. 농약, 비료, 종자, 동물약품, 도매시장법인, 음료회사, 유리온실 생산업 등의 동부그룹 외에, 롯데·CJ·웅진 등은 식품, LS엠트론, 동양물산, 국제종합기계(동국제강) 등은 농기계를 주도한다. 자본의 힘이다.
해법은 '협동과 연대'의 중소농 지원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농업구조는 전체 농가 중 66%가 1헥타르 미만의 경작지를 가진 중소농이다. 농업은 국내 총생산(GDP) 대비 4%에 못 미치는 전형적인 저부가가치 사양산업의 처지다. 이렇듯 가족농 중심의 생계형 농업 구조가 대세인 우리 농업 현실에 기업농 중심의 상업형 농업은 적절하지 않다. 시기상조다. 대기업이 농업생산에 본격 진출하면 결국 대다수 중소농의 붕괴로 직결될 운명에 처해있는 것이다. 우리 중소농들이 국내 대기업과 외국의 초국적기업에 대응해 살아남는 자구전략이 필요하다. 국내 중소농들끼리 공동 생산, 공동 브랜드, 공동 수출을 통한 협력와 연대의 농업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FTA피해보전기금 같은 농업보조금 등도 중소농과 국민 먹거리를 위한 정책지원에 집중하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일단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농업을 성장시킨 덴마크, 뉴질랜드 등 해외 농업선진국 사례에서 배우면 된다. 세계적 브랜드인 썬키스트, 제스프리 등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산지 생산자 조직화를 통한 교섭력을 키우고, 협동조합 간 연합체 구성과 참여조직의 역할분담으로 규모화·전문화의 효과를 발휘한 성공사례들이다.
'중소농 중심 공동농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을과 지역이 함께 두레농사를 짓는 것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마을단위 농업공동체'의 정책적 실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어차피 영세 분산 필지의 농업구조 하에서 개별경영의 규모화에는 한계가 있다. 설사 규모를 확대해도 효율적 경영은 어렵다. 개별경영 단위의 규모화로는 농업의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오랜 경험이고 다수의 지론이다. 그러자면 지역자원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복합화·다각화 할 필요가 있다. 복합화·다각화의 경우 개별경영보다 다수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조직경영'방식이 단연 유리할 것이다. 이처럼 개별경영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마을단위 영농활동의 조직화, 공동 경영을 통해 범위·규모의 경제 활동이 가능, 개별 경영체의 영세성이 극복될 수 있다.
'마을단위 농업공동체'란 '농업비중이 높은 마을단위로 공동 영농·판매 등을 수행하는 지역농업조직을 구성하고, 지역경제의 구심체로 육성'하는 것이다. 장점이 많다. 우선 조직화를 통해 지역자원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지역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지역주민 또는 지역 농협·농업법인 등이 자발적으로 결성하는 공동성도 도모할 수 있다. 나아가 자립성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경영방식으로 수익성도 추구한다. 형태는 민법상 법인·조합, 농업법인,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으로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기대효과는 얼마든지 예측가능하다. 마을단위로 농지의 단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농지규모화의 효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지역의 농지 보전과 관리에도 효과적이다. 또 영세한 농가가 공동으로 조직화하면 농업의 지속성도 증가한다. 단기적으로 농업생산 유지를 통해 경작포기지 발생을 방지한다. 장기적으로는 지역단위의 후계자 확보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다. 농지의 단지화, 농기계 공동이용으로 비용도 절감된다. 일본의 경우, 평균 0.8헥타르(벼 48아르, 콩 32아르)의 경지면적을 가진 37호(총 면적 30헥타르)가 각각 개별경영을 한 경우의 전체 비용은 1억2140만 엔이나, 마을영농의 경우 개별경영의 45%(5500만 엔) 수준으로 비용이 절감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경북도에서 선도적으로 '경북형 마을영농 육성사업'을 시작했다. 농지는 개인 소유, 경작은 마을단위 공동이 특징이다. 마을단위의 경작을 통해 경영비를 대폭 줄여 농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 목적이다. 이는 일본의 '집락영농'의 성공사례를 국내 최초로 벤치마킹해 경북지역의 농업 특성에 맞게 개량,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사업이다. 마을영농의 경영주체에 따라 마을주도형 모델·농협주도형 모델·기업주도형 모델·혼합형 모델 등으로 분류된다. 기존의 개별소유와 개별관리 방식의 영농을 농지 소유자와 이용자를 분리, 농지 및 농기계 공동이용, 작업별 노동력 집중 투입 등을 통해 생산비용을 최소화하고 마을전체의 농업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경북도가 지원하는 3억 원 내외의 지원사업비는 마을영농을 운영하는 전문 경영인이나 농기계 운영자 등의 인건비, 농기계 창고, 저장시설, 공동 농기계 구입비 등 사업 대상 마을의 실정과 필요에 따라 사용된다. 경북도는 2020년까지 도내 전체 경지면적의 10%, 2030년까지 15%까지 마을영농 사업을 확대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자신 있게 주장한다. 대기업 중심 성장지향 농정은 결코 우리 농업의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상종하기 어려운 상극의 조합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대기업은 농업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기업은 수익성에 몰두하고 농업은 공익성에 헌신적으로 복무하기 때문이다. 농업은 휴대폰이나 자동차처럼 오로지 수익성만을 좇아 떼돈을 챙길 수 있는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이 아니다. 농사는 돈이나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상업성 보다는 진정성이 더 중요한 업종이다. 에너지, 철도와 같이 공공의 안녕을 위한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이다. 그러니 하늘의 뜻과 같은 농심(農心)부터 잘 헤아리는 게 농업에 임하는 농부의 자세와 덕목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농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공익에 헌신할 수 없는 대기업은 농업을 하면 안 된다.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된다. 사업은 실패한다.
그럼에도 대기업이 농업에 뛰어든다면 농업 판은 국민의 식량생산 기지가 아니라, 다원적 공익기능의 보고가 아니라, 약육강식, 출혈경쟁의 살벌한 정글처럼 되고 만다. 우리 농민도 죽고 농업과 농촌도 따라 죽는다. 그렇다고 '3농(농민·농업·농촌)'이 무너진 빈 들판에서 대기업 홀로 살아남기도 어렵다. 이게 자연의 이치, 생태계의 섭리다. 결국 한국농업의 전체가 도산하고 공멸될 수도 있는 악수가 바로 '대기업의 농업진출'이다.
농업은 이명박정부의 '농업선진화'나 박근혜정부의 '창조농업'같은 공허한 구호가 걸맞지 않는다. 겉은 화려해보이지만, 농민은 물론 국민 모두를 기만하는 속셈이 숨어있다. 중소농, 가족농 등 대다수 기층농민의 협동과 연대만이 우리 농업의 앞날을 보장한다. 협동사회경제 같은 '농업경제 및 농촌사회 민주화'의 방법이라야 쇠락한 농업의 숨통을 뚫고 활로를 되찾을 수 있다. 마을과 지역이 함께 두레농사를 짓는 '중소농 중심 공동농업'에 국가와 국민이 애타게 찾고 있는 농정해법의 실마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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