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들이 20일 오후 3시 금강산에서 만났다. 남북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남북 가족들은 20일 오후 3시 금강산 호텔에서 상봉 첫 일정인 단체 상봉을 가졌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들고 나와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김명복 씨는 누나인 김명숙 씨를 만나 알아보지 못하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지만 뒤늦게 손을 맞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명복 씨는 누나의 손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강능환 씨는 태어나기도 전인 아들을 뒤로 하고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와 이산가족이 됐다. 강 씨는 얼굴도 모르는 아들을 만나 이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전후 납북자인 최종석 씨의 딸인 최남순 씨는 당초 아버지인 최종석 씨를 만나기로 예정돼있었으나, 최종석 씨의 사망으로 대신 상봉에 나온 북측의 이복동생들을 만났다. 하지만 최 씨는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최 씨는 이복동생들로부터 아버지 사진을 한 장 건네받은 뒤 이들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무리 봐도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라고 말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남순 씨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3살 때라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며 “내가 스무 살 됐을 쯤에 아버지가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죽었을 거라고 말해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지난해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던 당시 최종석 씨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상봉을 신청했다.
최 씨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북측 가족들은 맞다고 설명하고 있어 상봉 대상자 선정과정에 착오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정부는 이에 대해 양측 가족들이 실제 가족인지 여부를 확인 중이다.
납북자 가족들, 눈물의 상봉
이날 상봉에서는 북측으로 끌려갔던 납북자들과 가족들의 눈물겨운 만남도 이뤄졌다. 지난 1972년 12월 28일 조업 중 납북됐던 오대양 61호의 선원인 박양수 씨는 이날 동생 박양곤 씨와 눈물의 조우를 가졌다. 양곤 씨는 양수 씨에게 “행님아”라며 42년 동안 부르지 못했던 형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양수 씨는 곧 흰 봉투에 담아온 훈장증과 훈장을 꺼내 보이며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 산다”면서 동생을 안심시켰다. 양수 씨는 “빨리 통일이 돼야지, 자주 만나자”며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박양곤 씨는 양수 씨가 납북됐던 당시를 “형님은 생업에 도움이 될까 하고 그 어린 나이에 배를 타러 갔다”고 회상하며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 할 무렵 날벼락을 맞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곤 씨는 납북자 가족으로 살았던 세월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심했다. 학교 다니는 것 자체도 그랬고 (힘들었고) 가족들이 외국으로 출국도 안되는 등 생활에 곤란을 많이 겪었다”고 털어놨다.
1972년 2월 15일 수원 33호의 선원으로 조업 중 북한으로 끌려갔던 최영철 씨도 형인 최선득 씨와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최선득 씨는 “동생이 배를 3번 타고 난 뒤 4번째 탔는데 그때 사건이(납북) 났다”며 “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서 외양 어선을 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외양 어선을 타면 돈이 좀 됐고 취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선득 씨는 이날 조카인 최용성 씨가 쓴 편지와 가족들의 사진을 같이 가져왔다. 최선득 씨는 이 사진과 편지를 영철 씨에게 전했다. 편지에는 그동안 가족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영철 씨를 그리워했던 가족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최영철 씨는 “다른 식구들 봤으면 얼마나 좋겠냐”며 “서로가 비방·중상하지 말고 민족단합해서 통일해야 한다”며 북한 지도부가 주장하는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
상봉을 앞두고 사망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정부에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북한의 최흥식 씨도 이번 상봉대상에 포함됐었으나 지난 9월 이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를 만나려 했던 자식들은 대신 이복형제와 상봉을 가졌다.
최흥식 씨의 아들인 최병관 씨는 아버지의 이복동생들인 최병덕, 최경희 씨와 만났다. 이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인 병덕 씨는 병관 씨에게 북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병관 씨는 “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까 외로움이 덜했을 것이다”라며 위안했다.
최병관 씨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가 인민군에 잡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고 납북 경위를 밝혔다. 그는 “6.25 때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계셨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마음이 생기더라”며 상봉을 신청한 이유를 전했다. 최 씨는 “살아계셨을 때 만났으면...”하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멀고도 험한 가족 만나러 가는 길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최근 동해안을 중심으로 내린 눈은 가족들의 이동을 지연시켰고, 금강산에는 2m가 넘게 쌓인 눈도 모자라 이날 또 함박눈이 내려 가족들의 마음을 애태우게 했다. 실제 오전 10시 50분 남측 출입사무소를 출발한 상봉단은 오후 1시가 돼서야 금강산 현지에 도착했다. 평소에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도로 사정 탓에 두 배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상봉자들이 대체로 80세 이상의 고령자가 많은 관계로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 대상자가 19명이었으며, 휠체어로도 거동하기가 불편해 구급차를 탄 상봉자들도 있었다.
전날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수액을 맞으며 집결지에 도착한 김섬경 씨는 구급차를 타고 상봉을 진행하기로 했다.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봉 행사에 참석한 박춘재 씨는 이날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족들의 인적 사항을 표로 만들어 북측 가족들에게 설명해주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상봉자 중에 심각한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북측 지역으로 들어가는 통관 절차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기도 하고 오래 서 있는 것을 힘들어 했던 상봉자도 있어 앞으로 3일간 진행될 이산가족 상봉에 건강 문제를 호소할 상봉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의사 5명, 간호사 5명과 구급차 1대로 구성된 의료진을 상봉단과 함께 금강산 현지에 투입해 상봉자들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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