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필자 주
프랑스는 파업, 네덜란드는 병가?
한 때 네덜란드는 노동인구의 최대 17%가 병가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노동자들이 불만이 쌓이면, 프랑스에서는 파업을 하고 네덜란드에서는 병가를 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는 극한 대립 없이 양보와 절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네덜란드의 문화가 녹아있기도 하다.
실제로 대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숙의(熟議)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니, '합의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노사정 대타협을 일컫는 '폴더모델(Polder model)'이나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ccords)' 모두 네덜란드가 주요 사례로 등장하거나 아예 네덜란드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폴더모델은 주로 노사정 관계에서 네덜란드의 노사합의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척지(폴더)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문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1982년 '바세나르'라는 곳에서 노동조합과 경영자협회 대표 사이에서 임금동결과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골자로 하여 맺어진 협약으로, 이후 네덜란드의 고용체제의 기틀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특히 국책사업과 관련해 합의를 기반으로 절충안을 도출하고 사업을 진행(혹은 중단 및 유보)하는 실제 사례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과연 합의의 나라다. 국내에도 이미 '갈등관리 시스템'이나 '합의형성시스템'에 대한 보고서의 해외사례 조사 대상으로 네덜란드의 합의 시스템은 빠짐없이 다루어지고 있다.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갈등 방지를 위한 공공참여 제도의 대표적인 사례인 '페카베(PKB)'는 이미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여러 번 다뤄졌다. 그리고 2005년부터는 국책연구기관의 각종 보고서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페카베(Planologische Kernbeslissing)는 직역하면 '핵심계획결정'이고 의역하면 '공간계획에 관한 핵심결정'으로, 국토계획에 관한 동명의 정책문서 혹은 계획안을 말한다. 관행상 이의 작성 과정 전반을 일컫기도 한다. 노사정 대타협의 '바세나르협약' 이야기도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이미 알려진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용산, 강정, 4대강사업, 밀양 등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쌍용차 매각과 철도 민영화 논란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계속됐다. 이에 따른 사회적 손실과 비극 역시 끊이지 않는 것이 현 상황이다.
여기서 고백할 것은 이 원고를 쓰는 과정이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웠다는 점이다. 먼 곳에서 무슨 별나라 이야기 같은 네덜란드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대해 어떤 자괴감, 위화감과 열패감, 그리고 우울과 울화와 회의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합의 문화가 출중하고 제도가 훌륭하며 국민의식이 세련되어 갈등이 없다.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화란(和蘭) 스타일을 배워보자"고 훈수를 두는 것 같아 도무지 입이 안 떨어졌다.
그러나 현장에서 겪는 서러움에 비할 바 있겠는가. 결국, 모종의 죄책감을 위장 혹은 과장’해 개인의 일용할 양심의 평화를 건사할 것이 아니라, 모래를 씹는 심정으로라도 시사점을 찾고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깨달았다. 이런 만용이 문제 해결에 있어 작은 실마리나 참고가 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한다.
"합의의 비결은 '합의' 그 자체"
네덜란드의 인프라환경부(IenM, Ministerie van Infrastructuur en Milieu. 한국의 국토교통부에 해당)에서 2011년 10월 한국 측 방문단과 현지 공무원의 간담회가 있었다. 말미에 서로 덕담을 하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한 한국교수가 네덜란드에서 이토록 합의가 잘 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네덜란드 공무원은 조금 난처했는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빙그레 웃으며 이어진 그의 대답 뒤로, 한국 방문단은 한숨을 쉬었다.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합의 될 때까지 결정을 하지 않는 거죠. 합의가 합의의 비결입니다."
'합의될 때까지 결정을 하지 않는다'라니…. 합의에 이르는 암묵지에 대한 실마리나 특별한 방법을 갈구하던 이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걸 누가 모르나. 시간도 없고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까 뾰족한 방법이 없나 찾는 거지.'
그러나 그 공무원은 오히려 우리를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이미 '합의, 양보, 절충, 협상, 인내'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합의 문화에 대한 충격은 앞서 말한 노동자의 병가 제도와도 연결된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의사들이 약을 처방하는 대신 '아프면 며칠 집에서 쉬세요'라는 말에 망연자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친절이나 인종차별로 오해를 할 정도다. 한국인의 정서는 '쉬면 되는 걸 누가 모르나. 쉴 수가 없으니 버틸 약을 달라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네덜란드인 역시 이해하기 힘든 문화일 테다.
그렇다고 네덜란드인의 생산성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이들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누가 그걸 몰라서 못하나'라는 힘 빠지는 대답, 언제까지 이들만의 전유물이어야 할까.
중앙부처 공무원까지 흠뻑 빠져 있는 네덜란드의 합의 문화를 뒷받침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국책사업인 '스히폴 공항 확장 사업', '로테르담 항구 확장사업', '고속철 사업', '암스테르담 시내 고속도로 백지화' 및 'A4 고속도로의 4개 구간의 사업 중단 및 유보' 등 무수하다. 모두 주민이나 환경단체와 갈등을 빚었으며, 경우에 따라 유럽연합(EU)이나 인근 국가와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협의에 참여한 사례들이다. 이 중 한국에 상대적으로 소개가 덜 된 '스히폴 공항'과 '알더스타펠(Alderstafel)'의 사례를 살펴본다.
5개 활주로의 스히폴, 15년 걸린 활주로 확장 공사
99개국 301개 공항과 연결된 스히폴 공항(2010년 기준)은 한해 41만5883편의 항공 운항을 통해 4830만 명의 여객을 운송하고(네덜란드의 인구의 3배에 육박), 유럽 여객 기준으로는 다섯 번째, 화물 기준으로는 세 번째(150만 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운영주체인 스히폴 그룹은 독립적 영리법인으로 지분 구성이 중앙정부 70%, 암스테르담 시 정부 20%, 로테르담 시 정부 2%, 파리S.A. 공항 8%인 '반(半)민영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뿐 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 총 9개국에서도 사업을 벌이고 있다.
5번 활주로 신규 공사는 로테르담 항구와 스히폴 공항을 양대 축으로 하는 통상국가 네덜란드의 위상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계획으로, 1988년부터 구체적으로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환경 단체 및 시민단체의 저항과 지루한 법정소송, 활주로 예정지에서 벌어진 농성과 퇴거 및 토지 강제수용을 거쳐 마침내 2003년 활주로가 개통됐다. 1994년 ‘천둥 숲’ 조성을 통한 본격적인 시민들의 저항으로부터는 7년, 최초 계획시점으로부터는 15년이 걸린 셈이다.
갈등 배경은 국가경제 인프라의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 시가지와 인접한 공항 소음피해에 대한 시민들의 누적된 불만, 새로운 활주로 확장공사로 인해 예상되는 각종 피해에 대한 우려 등이었다. 실제로 1992년에는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신도시에서, 2009년에는 활주로 인근에서 항공기 추락사고가 일어나 각종 우려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다.
스히폴 공항은 네덜란드에서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 기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시가지에서 가깝다. 이로써 여론 또한 공항확장 반대운동에 불리하지 않았다.
이런 갈등을 교훈으로, 공항의 확장과 운영에 대한 항공 정책 입안 과정에서 협상테이블인 '알더스타펠'은 2006년부터 만들어졌다. 현재 알더스타펠은 스히폴과 역할을 분담할 랠리스타트나 에인트호번 공항까지 포괄해 활동 중이다.
'천둥숲'과 '지구의 친구들'
1995년 2월 1만 명가량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참고로, 당시 암스테르담 인구는 약 70만 명이었으며 단순 비교 시 서울에서 14만 명 정도가 참여한 것과 같은 위력을 보인 셈이다. 집회에 며칠 전, '지구의 친구들' 활동가들이 공항 중앙홀을 기어올라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때까지는 비교적 평화적인 방법의 의견 표출이었으나, 정부의 방침에 변화가 없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해 10월에는 의회에서, 11월에는 활주로를 점거하며 연속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 정부는 1997년 시행예정인 소음규제
1996년 5월에는 스히폴 공항 게이트 농성이 벌어졌고, 10월에는 풍선으로 항공교통을 마비시키려는 시도까지 벌어졌다. 1997년부터는 천둥 숲에서의 말 그대로의 '소풍'이 연례적으로 열렸으며, 중앙부처 및 의회 점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1998년에는 비행기 점거, 1999년에는 관제탑 점거, 2000년에는 2만2500명의 반대서명, 그리고 2002년까지 이어진 천둥 숲에서의 무기한 24시간 농성 돌입까지. 다양한 수위의 투쟁이 계속됐다.
한편, 1999년 여름 천둥 숲 토지 매각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정부 절차는 강제수용단계로 진입해 이듬해 3월 관계법령(왕령)을 선포하고, 4월에는 집달관이 토지 소유주들에게 공지문을 발행, 9월에는 공사부지의 경계를 확정하는 등 양측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반대 측을 위한 희소식도 있었다. 2001년 2월부터는 토지수용계획에 대한 법적 심의가 시작되자, 법정은 7월 공항 확대 반대 측 100여명의 입장을 청취한 뒤 스히폴의 계획을 기각했다. 왕령이 2000년 3월 활주로 사용과 관련한 환경 면허가 중앙정부로부터 제대로 발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정되었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절차상의 미비점을 지적한 것으로, 스히폴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결국 9월 25일의 법정은 토지 강제수용을 결정한다. 11월 5일부터 반대 측의 무기한 24시간 농성이 시작되었으나, 해를 넘겨 2002년 1월 2일 마지막 두 명이 퇴거되면서 투쟁은 막을 내렸다. 5번 활주로는 그 해 완공되고 이듬해 2003년 개통된다.
* 이상의 반대운동과 활주로 확장공사의 경과는 '지구의 친구들' 홈페이지 및 Alex van der Zwart&Rob van Tulder(2006)의 보고서 "Clean, crisp and quiet Thunder Forest? – Fridens of the Earth Netherlands(FoE) versus Schiphol Airport (Group)" 그리고 Menno Huys(2006)의 논문 "Deliberative democratic legitimacy and interactive policy making: the case of Amsterdam airport Schiphol"의 내용을 종합·정리함.
※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네덜란드' 편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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