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철도 민영화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고, 이어서 의료 민영화 문제로 또 한 번 시끄러웠다. 올해에도 정부는 민영화를 계속 밀어붙일 기세다. 여기에는 시장주의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민영화가 무조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민영화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래서 득과 실을 잘 헤아려 보아야 하는데 시장주의자들은 너무 시장의 원리에 매몰되다 보니 민영화의 폐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현실을 너무 외면하는 것 같다. 2008년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가 시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보였음에도 시장주의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낙수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시장주의자들은 모른 체하며 여전히 낙수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적 대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장의 원리에 대한 근원적 회의가 일었고 이에 따라 정통 경제학의 내용도 큰 수정을 거듭해왔다. 20세기 초 선진국에서 환경 오염이 극심해지자 시장의 원리에 대한 예외로 '외부효과'가 인정되면서 이에 대한 이론이 경제학에 도입되었다. 그 후 독과점이 극성을 부리자 시장의 원리에 대한 또 하나의 예외로 '불완전 경쟁 이론'이 개발되면서 경제학 교과서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은 '거시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경제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로 부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경제학 교과서는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정보를 가지 못한 사람을 등쳐먹는 일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장에서 이런 일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횡행한다. 그러자 일부 경제학자들이 이에 주목하면서 이른바 '정보 경제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정보경제학 창시자의 한 사람인 애커로프(G. A. Akerlof) 교수는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데, 애커로프 교수는 새 의장인 옐런(Janet L. Yellen)의 남편이다.
애커로프를 유명하게 만든 논문은 '레몬 시장(The Market for 'Lemons')'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레몬이란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불량품을 지칭하는 속어다. 우리말로 하면, '개살구'쯤 된다. 시장에는 개살구가 넘쳐나지만, 애커로프가 특히 주목한 개살구는 중고 자동차였다. 시장에 진열되어 있는 중고차들은 겉으로는 모두 번지르르하지만, 구매자들은 그 속이 어떤지 잘 모른다. 단지 평균적으로 보아 중고 자동차 시장에 나온 차들은 대체로 질이 나쁠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면, 자연히 중고 자동차의 평균 가격은 아주 낮은 수준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평균보다 더 좋은 차를 가진 사람들은 억울해서 이 가격에는 차를 내놓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중고 자동차 시장에는 저질 자동차들만 득실거리게 되며, 구매자들은 그런 시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래서 자동차의 발동이 잘 안 걸리거나 운행 중에 갑자기 발동이 툭 꺼지면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기 십상이다. 특히 주부는 자동차에 대하여 무식하며 잘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이 자동차 수리점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 있다. 수리점은 자동차에 대하여 훤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부에게 어떤 식으로 바가지 씌울지도 잘 안다. 이와 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에 대한 정보가 거래 당사자 한 쪽에 치우쳐 있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5년산 인삼과 6년산 인삼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진짜 녹용과 가짜 녹용을 잘 구별하지 못하며, 중국산과 국내산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시장에서 정보가 이와 같이 편중되어 있는 경우 가장 우려되는 현상은 거래의 불공정성 내지는 사기의 만연이다. 지난번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보았듯이 정보는 곧 돈이다.
대체로 보면, 자동차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한 상품의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농축되어 있는 서비스의 경우에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 의료 서비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진단이 정말 옳은지 대부분의 환자들은 잘 모른다. 사실, 의사의 오진율이 의외로 높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오진을 미리 알지 못한다. 의사가 특정 회사의 약품이나 기기를 강요해도 환자들은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민영화된 큰 병원의 횡포를 크게 걱정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의료 서비스에 개살구가 많아지는 것을 크게 걱정한다. 물론, 지금도 의료 서비스를 둘러싸고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은 의술이 인술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고, 돈을 밝히는 의사는 악덕 의사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분위기다. 허나, 의료 서비스가 민영화된다고 하면, 의술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의사들은 공공연하게 돈을 밝히게 될 것이요, 정보의 비대칭성을 최대한 돈벌이에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개살구 의료 서비스도 늘어날 것이며, 병원을 통한 개인정보의 유출도 늘어날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의료 민영화와 관련하여 국민들을 크게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불공정 거래는 법으로 규제하면 된다고 시장주의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더 어렵다. 일단 민영화되고 나면, 힘 있는 경제 단체들이 시장주의자들과 합심해서 규제 완화를 큰 소리로 합창해댄다. 그러면 정부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이런 일은 과거에 늘 보아온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나 사기는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하다. 그 흔한 보험 사기를 포함한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문제다. 민영화는 서민들에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불편과 고통을 더 많이 안길 것이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 당국은 이 점에 각별히 유의하여야 할 것이며, 일반 국민도 예의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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