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랑 옥시싹싹이 보상해준다던데, 너네 집은 얼마나 받았니?"
시어머니의 질문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선화(가명·여) 씨의 말문이 막혔다.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에 요구해온 것 중 무엇도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이 밝혀진 지 햇수로 4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육체적, 심리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 사례는 총 541건이고 이중 사망자는 144명(지난해 11월 1일 기준)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장에 옥시레킷벤키저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가 출석해 "인도적 차원에서 기금 50억 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제조업체다. 그러나 대형로펌 김앤장을 앞세워 피해자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의 '기부금'이, 어떠한 방식으로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증액한 피해자 지원비 30억여 원도 2014년도 예산안에서 대폭 삭감됐다.
<프레시안>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피해자 좌담회를 열었다. 피해자와 가족 5명이 참석해 근황을 나누고 피해 대책에 대한 의견을 냈다. 이중 백승목 씨와 주상현(가명·남) 씨는 각각 3살, 1살이던 아이를 하늘로 보냈다. 사회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이 맡았다.
출산 후 병원 갔더니…"산모가 죽어가고 있다"
박선화(가명·여) : 첫째 아이를 2004년 7월에 낳았다. 그해 11월부터 2007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2007년에 둘째를 임신했는데 6개월 만에 유산기가 보이더라. 아이가 안 자란다고 해서 임신 6개월부터 누워만 있었다. 둘째는 결국 2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사실 임신 기간 내내 기침을 달고 살았는데 뱃속 아기를 생각하니 엑스레이를 찍기도 찜찜하고 감기약을 먹을 수도 없어서 그냥 참았다. 그러다가 출산 후 조리원에 있을 때 인천길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하더라.
결국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지 거의 10일 만에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과민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원인에 대해 의사와 이야기하다가 가습기를 써왔다고 말했다. 진료 기록에도 남아있다. 원인을 없애야 한다기에 무작정 이사까지 했다. 예전에 살던 집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전화해서 혹시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나만 이렇더라. 셋째도 임신했었는데 강제 유산해야 했다. 2011년에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첫째 아이를 검사해봤더니 의사가 놀라면서 '어린아이인데 폐암을 앓고 간 흔적이 있다'고 했다. 애들 아빠는 폐에 구멍이 나고 부어있다더라. 지난해에는 남편의 폐혈관이 터져버렸다. 나는 여름만 빼고 계속 골골댄다. 지금 첫째 아이가 11살이니 벌써 10년째 이 상태인 건데, 해결책이 있겠나. 감기에 안 걸리려고 사람이 많은 극장이나 마트에 가지 않는 수밖에 없다.
백승목 : 2006년에 3살 난 딸아이를 보냈다. 감기 증상에서 사망까지 가는 데 한 달 걸렸다. 아이 기일이 되면 아이를 뿌린 강에 찾아간다. 자식이 죽은 뒤의 심리적 충격이라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도, 계산할 수도 없다.
주상현 : 먼저 간 아이를 선산에 수목장 했다. 아이가 떠난 6월마다 풀을 헤치면서 산을 오른다. 동생을 기억하고 있는 큰 아이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야 해서 자주 가지는 못한다. 큰 아이가 먼저 동생에 대해서 묻더라.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보면 '○○이가 저런 거 잘 가지고 놀았었는데'라고 한다.
"기부금으로 사건 종결 아니다"
-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지지부진하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소송과 별도로 '인도적 차원의 50억'을 내겠다고 했을 뿐이다. 소송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피해자들이 만족할만한 사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
강찬호 : 사측이 기부금 형태로 돈을 내겠다면 전체적인 투명성을 담보해야 한다. 사과를 받고 싶지만,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사과하겠나.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해봤자,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했던 사과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장에서 옥시레킷벤키저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는 "진심으로 안타깝고 미안하다. 피해 사실에 대해서 현재 법률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절차가 오래 걸리는 것은 안타깝다"고만 말했다.-편집자)
백승목 : 사측이 이야기한 50억 원은 일단 사과를 전제로 해야 한다. 또 소송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사측이 기부금 형태의 돈을 내놓는다고 해서 모든 사건이 종결된 것은 절대 아니다.
박선화 : 나는 개인적으로, 돈을 받는 것에 반대했다. 사측은 소송과 기부금이 별개라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보여주기 위한 방식은 싫다. 옥시레킷벤키저에 피해자들이 놀아나는 방식이라면 거부하겠다.
주상현 : 내 생각도 비슷하다. 사과가 있어야 하고 소송과 무관해야 한다. 기부금이라고 해서 피해 단체와의 교감 없이 집행하는 건, '줄 테니까 그냥 받아' 아니냐. 피해자들이 정말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곳에 써라. 우리는 허수아비가 아니다.
- 더 큰 문제는, 국회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올스톱' 상태라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에서 피해자 지원 예산이 30억이나 삭감됐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은 논의도 안 되고 있다.
백승목 : 예산이 뭉텅이로 삭감된 건 정말 어이없다. 구제법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인 일을 비상식적으로 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서 사람이 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한국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배려라는 게 없다.
박선화 : 피해자들에게는 돈보다 구제법이 더 중요하다. 우리 집은 네 가족이 다 피해를 봤다. 우리 부부가 살아갈 날만 3,40년이 남았다. 아이들은 더 오래 살 것이다.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 당장 돈 얼마보다는 지속해서 생활을 뒷받침해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강찬호 : 우리 아이는 계절 없이 감기를 달고 산다. 감기에 걸리면 바로 폐렴으로 이어지는 데다 천식 증세까지 있다. 장기적으로 폐암으로 갈까 봐 별걱정이 다 된다. 이런 맥락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해 줄 환경질환센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환경질환센터는커녕 모든 지원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
주상현 :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해 약 108억 원을 책정키로 했다. 이걸 보면서, 지원안이 나왔답시고 구제법을 무산시킬까 봐 불안했다. 구제법과 별개로 가야 했다. 그런데 역시나 이렇게 돼버렸다. 알게 모르게 이게 다 계획된 대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피해자들의 상처가, 가구당 몇백만 원을 받는다고 달래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부가 이런 식으로 피해자를 외면하니 피해자가 국회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는 믿을 수가 없다. 맘 같아서는, 정부에서 내놓는 안은 다 반대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프레시안>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백승목 : 일단 이렇게 연재로 피해자 이야기를 다뤄줘서 정말 고맙다. 앞으로 연재에서, 정부가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잘 반영됐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잘 드러났으면 한다.
박선화 : 정신건강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피해에 대해서도 다뤘으면 좋겠다. 폐나 심장 이식 수술비만 1억이 넘고 매달 약값만 2~300만 원씩 드는 형편이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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