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는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서는 법'에 대해 너무나 간결하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이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이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 김춘수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서로에게 꽃이 되는 관계.
타인, 그리고 나.
타인을 천천히, 오래, 깊이 바라보고 서로의 드러냄의 과정이 지나면 자연히 가까이 다가서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다.
가까이 다가서야 그 사람을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고 그 때 바라본 사람은 이미 이전에 내가 느슨하게 알았던 타인이 아니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순간,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 수 있게 된다.
가을 단풍이 어느 순간 빨갛게 물드는 게 아니라 지난 여름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서서히, 느리게 물들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서로에게 스며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다가서기는 서로가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6월부터 이 친구들 면회를 신청해서 하고 있다.
1년이 넘도록 부모가 면회를 안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 친구의 말에 귀가 쟁쟁해온다.
'다가서기'에 대한 나의 노력이다.
그 친구들 개개인을 좀 더 잘 알고 싶었고, 이곳까지 온 이유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어떻게 자랐으며, 부모님들은 뭘 하시는지, 어떤 친구들이랑 어울리는지, 좋아하는 것은 무언지, 먹고 싶은 것은 무언지, 꿈은 갖고 있는지, 어떻게 살 건지...
묻고 싶은 것이 수십 가지도 넘는다.
수업시간에는 수업만 하느라고 물을 수도 없고 이 친구들의 사적인 부분이라 맘 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저 막연히 알 뿐이었다.
더 이상 그 친구들과의 관계가 진전이 되질 않는다.
나를 더 열어야겠구나..하고 생각해 낸게 면회신청이었다.
3번의 면회를 하고 나서야 그 친구들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기다려주고,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의 건강을 걱정해주고 나를 지지해준다.
수업시간에 말도 너무나 잘 듣고 열심히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진심으로 그 친구들이 행복해지길 바라고, 그 친구들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딸들이고 그 딸들의 기쁨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게 된다.
나를 내어주고 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받았다.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는 관계는 없다.
안단테, 안단테...
서로 서로 잘 스며들어 가을 산 단풍처럼 아름다운 관계가 되고 싶다.
타인을 통해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시간동안 내가 한 뼘 더 커지고, 내가 한 뼘 더 깊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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