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은 인간이 사용하는 오감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눈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고, 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식의 틀에 갇히면 보기는 하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사물을 혹은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억하고픈 것만 떼어내서 개념화한다.
똑같은 사물을 바라보아도 보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라보는 대상에 사람의 심상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늘을 본다고 하자.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맑은 하늘은 기쁨이지만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맑은 하늘은 맑지만 슬프다.
맑은 하늘은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으로 저장되고, 또 어떤 사람은 환희나 기쁨으로 저장된다.
이 모든 '봄'의 행위에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사진은 정직하다.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상처나면 상처난대로, 우리들 마음에 초롱불 하나 밝혀 마음의 결과 질감에 따라 세세하게 비춰준다.
사진은 '찍는 것'을 가르치는 예술이 아니다.
먼저 사물을 천천히 '바라보는 법', 사물에 다가가 '말을 거는 법', 마음을 '드러내는 법'을 익힌 다음 서서히 자신과, 타인과, 사물과,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스스로 깨닫고 세상에 한 발짝 성큼, 다가서는 일이다
'사색'은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겨야 가능한 능력이다.
어느 날 한순간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보는 법에 대한 훈련은 사색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오래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법.
사물이 자기에게 다가오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지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문화는 우리에게 속도에 대한 집착만 키워냈다.
속도가 빠르다고 일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빠른 것에 집착할수록 우리의 시선과 마음은 불안하게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란 느림의 정서에 완전히 스며들었을 때 나오는 힘이다.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 어떤 철학자는 시각에 대한 성찰을 권고하고 있다.
느린 것에 머무를 수 있을 때 우리의 시각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오감을 다 일깨울 것이다.
감각의 세포들이 눈을 뜨며 살아나는 순간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각각의 분절된 감각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진 감각이란 것을 스스로 느낄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은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한 바 있다.
향기를 시각화하는 것, 소리를 시각화 하는 것, 맛을 시각화하는 것, 느낌을 시각화 하는 것, 언어를 시각화 하는 것.
오로지 느리게 바라보는 상태에서 자신과 사물들의 세계 속에 침잠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들이다.
'보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바라봄'이 아니라 '사색적인 바라봄'에 대한 성찰을 할 때가 됐다,
사진은 철저히 보는 법에 대한 교육이 우선 되지 않고는 단지 이미지를 재생산해 낼 뿐 더 이상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없다.
이 친구들이 나에게 사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해 주었다.
사진은 '찍는 법'이 아닌 '천천히 바라보고 드러내는 법'을 함께 하는 일.
그 작업은 그들의 마음 안에서 곪아터진 상처와 아픔들을 양지바른 곳에 꺼내어 바람과 햇빛에 잘 마르게 도와주고 있다.
그 친구들은 나쁜 친구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마음 속에 솜털 같은 감성이 있고, 마음속에 태양 같은 빛남이 있다.
단지 우리 어른들이 잘못 볼 뿐이다.
어른들이 이 친구들을 자세히, 오래 , 깊이 드려다 봐야 된다.
자세히 보면 보이고 , 깊이 드려다 보면 사랑이 생긴다.
그들이 왜 그렇게 거칠어졌고, 왜 외로워하고, 왜 아프고, 왜 방황하는지....
어느 순간 친구들은 사진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하고 있었다.
여린 연두 빛 봄풀 같은 감성이 나풀거리며 사물에게 말을 건넨다.
여리디 여린 감성이 그 친구들 마음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른들이 마음을 열면 그들도 따라 연다.
그러면 그들의 눈빛이 고요해지고, 그들의 미소가 환해져온다.
난 오늘도 그들에게 '천천히, 오래, 깊이'를 그들의 귀에다, 마음에다 조곤조곤 말할 것이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소년원 아이들이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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