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더 내밀하게 알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사진수업 2시간.
그들의 아픔은 특별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평범하고 나름대로 부모를 잘 만나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린 나에게는....
그 아픔을 건드리면 더 아플까봐 물어볼 수도 없다.
'그럴 거야. 그럴 수 있지...'
막연한 이해였다.
막연한 공감이었다.
막연한 소통이었다.
그런데 진정한 관계는 그런 아득한 추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느 한 쪽에서 애쓰지 않는 한...
난 분명히 사진을 가르치러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을 친구들을 만나러 온다.
목적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통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을 바꾸고 싶었다.
오만이었고, 오해였다.
하지만 4년이 넘게 이곳을 다니면서 난 나름대로 터득하고 깨우친 게 있다.
이 친구들에게는 사진, 미술, 음악 ,법무부에서 좋아하는 자격증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이란 것을................
대부분의 부모가 면회를 온다고 한다.
하지만 1년에 1번도 안 오는 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내가 그 부모 노릇을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수업하고 오롯이 그 시간은 그 녀석들을 위해 쓰는 시간이니까 온전히 몰입하고 싶었던 거다.
4년을 오고가도 난 그들을 대충알고 있었다.
2번의 면회를 했다.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간식을 사들고 수업이 끝나면 면회실에서 그들과 만난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또 깨진다.
이 친구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내가 똘망 똘망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그들의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린다.
아마 10명의 친구들이 거의 비슷한 상처의 패턴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들은 가장 가까운 어른들에게 상처를 받고 있었고, 그 상처를 잊기 위해 자신의 표현을 반항과 저항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반항은 자신을 지켜내려는 그들의 애처로운 몸짓이라고 생각했다.
깊은 눈물이 흘렀다.
난 지금 어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는 참으로 깊고 아득했다.
난 어른이므로 어떻게든 견딘다.
사회적으로 위치 지어진 게 있으니까....
하지만 이 아이들은 스스로 살려고 반항하고, 저항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려고 어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살아보려고 애쓰고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그 생명의 끈질김이란 차라리 고통이다.
그래서 이 친구들의 사진이 다 아팠구나...
사진은 거짓말을 못한다.
나는 나를 뒤돌아본다.
우리는 나이를 어떻게 먹었을까?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나이와 마음의 성숙은 다르다.
어쩌면 이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삶의 성숙이 빠르며 삶의 발효도 빠르다고 느꼈다.
나는 그들의 나이에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았으며, 나만이 최고라고 '자뻑'했으며, 오로지 나만을 위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 아닌 어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적어도 타인을 배려하는 게 어떤 건지 스스로 온 몸을 던져 깨우치고 있었다.
난 그 동안, 이 친구들이랑 같이 사진작업을 했던 시간.
후회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진정 발효시키고 있는 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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