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제는 좀 특별하다.
'용서'
용서를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혹은 용서를 빌고 싶은 사람에게 오늘 찍은 사진을 예쁘게 인화해서 편지랑 같이 우편으로 발송하기다.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 중 지금도 마음 속으로 용서 못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
한 친구는 끝까지 안 들다가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들기 시작하니까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들었다.
전원 10명이 다 손을 들었다.
쉽지 않은 주제다.
내가 주제를 던져 놓고도 혼잣말로 '용서가 그리 쉽나?'
내 자신도 지금껏 살면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용서이다.
수업이 있기 전 날.
나에게 좋은 친구이자 평소에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지인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날 주제는 공교롭게도 '용서'였다.
"'용서'를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알아?"
"글쎄......"
"forgive?"
"루이스 콜이라는 미국 목사님이 설교에서 하신 말씀 중에 용서는 'Let it go' '가게 놔둬라'라는 뜻이래. 마음의 끈에서 풀어주는 것, 가게 놔두는 것. 그것이 용서래"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는 용서를 마치 자신이 타인에 대한 자비를 베푸는 것마냥 남에게 큰 선심 쓰듯 쓰는 단어였다.
하지만 마음 속에 꽉 붙들어 매서 보내지 못하고 괴롭히는 건 용서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정작 자기 자신이다.
결국 용서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붙들어 매고 놓지 못하고 있는 그 어떤 사람들, 어떤 것들, 다 가게 놔두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용서를 해야 된다.
친구들에게 이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 공감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찍은 사진은 예쁘게 뽑아서 편지와 함께 같이 보낼 거야. 어떤 사진을 찍을지, 그 사람이 받으면 기뻐할 수 있는 사진을 찍어보자"
친구들은 유난히 진지하게 열심히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면서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놀랍게도 2명을 제외하고는 다 자신의 부모님이었다.
어떤 친구는 엄마를, 어떤 친구는 아빠를, 어떤 친구는 남자친구를 그렇게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사진으로, 글로 써내려가면서 친구들은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다.
친구들의 편지 보낼 곳 주소를 받아 적다가 금잔디가 눈물 글썽이며,
"샘! 저는 엄마에게 썼는데 엄마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몰라요"
"무슨 말이니?"
"세살 때 헤어져서 이름도, 사는 데도 몰라요. 원망을 많이 했는데 오늘 수업 들으면서 엄마를 용서해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내 마음도 울었고, 내 눈도 울었다.
금잔디를 꼭 안아 주었다.
그것 밖에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그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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