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우면산 산사태는 위력적이었다. 기록적인 폭우는 산 위의 저수지 둑을 터뜨렸고 이와 함께 발생한 산사태는 산 자락의 마을을 휩쓸었다. 우면산 일대에서만 18명이 사망했다.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가장 큰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난 곳이다. 아파트 3층 높이까지 직격탄을 맞았다. 진흙은 지하주차장까지 밀고 들어갔다. 중장비와 군·경이 대규모로 동원됐지만 아파트 중앙에는 손도 대지 못할만큼 많은 양의 토사가 쌓여 있었다. 진흙으로 뒤덮인 도로 역시 작업량이 많아 이날 통행이 재개되지 못했다.
형촌마을은 산 위의 생태공원 저수지가 터져 홍수를 맞았다. 수량이 많고 마을의 경사면이 급해 피해가 컸다. 2층까지 물이 찬 집이 있을 정도다. 저수지 물을 빼내기 위해 묻어둔 배수관에서는 여전히 물이 솟아올랐다. 군인들은 모래포대로 제방을 쌓아 물길을 틀었고 주민들은 집집마다 침수된 가제도구를 내놓고 토사와 물을 빼내느라 분주했다.
남태령 전원마을의 집들은 대문을 밀고 들어온 흙더미에 1층이 내줬다. 집집마다 반지하 방은 거의 천정까지 침수됐다. 한 30대 남성이 반지하 방에서 갑자기 밀려든 급류에 사망하기도 했다. 산기슭에서 길가로 쓰러진 나무들은 어제 오전 행인을 덮치기도 했다. 전원마을에서만 6명이 사망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이 마을 등대교회에 대피해 있다.
우면산 산사태는 10곳도 넘는다. 무리한 생태공원 조성과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등산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큰 돌이 많지 않고 뿌리가 깊지 않은 아카시아 등의 수종이 많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였다.
자연 앞에 사람은 작았다. 거대한 산사태와 홍수를 막을 힘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순식간에 발생한 18명의 사망자가 그 점을 말해줬다. 그러나 다시 예전의 생활을 이어 나갈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주민들은 어린 장병들과 함께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며 다시 일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산사태가 난 지 하루가 지난 28일 우면산 자락의 세 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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