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죄인입니까?"
이 한 마디에 호응하는 함성은 어느 때보다 컸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구제역 파동으로 자식같은 소, 돼지를 묻은 심정을 아는지 당국은 초동 대응 실패는 감춘 채 소 키우는 사람들을 죄인처럼 몰아세웠다. 구제역 발생 농가에 보상금이 차등 지급됐다. 6개월이 지나도록 그 구제역 보상금도 아직 다 나오지도 않았다.
구제역 파동은 축산업 회생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부가 내놓은 선진화 방안은 구제역과 같은 질병에 걸렸을 때 양성 축산농가의 책임을 키우고 백신 비용까지 떠안긴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축산업을 되살리는 묘안을 궁리하는 대신 정부가 열을 올린 것은 FTA였다.
구제역을 피해간 사람들의 표정은 더 어두웠다. 작년만해도 8000원대이던 사료값이 1만 1000원대로 오른데다 소 값은 말 그대로 '똥값'이 됐다. 한 농민은 소에 올라 타고 "이 소를 39만원에 사가시오"하고 소리질렀다. 정말 거래를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키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 속에서 농민들은 소를 들이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소를 팔아야 하는 처지였다. 헐값이라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축산농민의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한우 송아지 가격은 작년 230만원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160만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EU FTA는 이달부터 발효됐고, 한-미 FTA도 국회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잘못이라면 소를 키운 것 뿐"이다.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 소의 영정을 들었다. 구제역 파동 때 죽은 소의 영정이 아니라 앞으로 죽을 소의 영정이었다. 장맛비를 뚫고 아침부터 상경해 익숙하지 않은 구호를 따라하며 탄식 섞인 사연들을 뽑아내던 이들은 결국 어떤 사과도, 어떤 위안도, 어떤 약속도 듣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12일 오후 1시부터 전국축산인총궐기대회가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1만여명의 축산농민들은 ▲한-미 FTA 반대 ▲사료값 대책 마련 ▲암소 20만 마리 수매 ▲한우가격 연동제 시행 ▲축산산업 선진화대책 전면 수정 등을 요구했다. 그 먹구름 같은 얼굴과 쓸쓸한 뒷모습을 한 17만 축산인들의 오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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