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이렇게 쉽게 될 일, 왜 6년을 끌었나"…기륭 노동자들의 허탈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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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클레인 한 대가 삼거리 귀퉁이에 서 있다. 얼마 전 엄습한 찬바람을 머금고 이 쇳덩이가 기운을 쓰려 할 때, 나약한 한 인간이 바퀴 밑에 드러누웠다. 불만스런 표정으로 멈춘 쇳덩이를 인간들이 스티로폼과 비닐 돗자리로 따뜻하게 감쌌다. 굽어있는 외팔엔 경쾌한 얼굴의 용머리를 달았다. 두 명의 인간이 아예 텐트를 얹고 둥지를 틀었다. 조등과 천 조각을 주렁주렁 달고 포클레인은 꽃상여가 됐다.
2. 밥을 먹는다. 땅바닥에 신문지와 돗자리를 섞어 깔고 종이컵에 밥을 담는다. 일명 '컵밥'. 한두 번 먹으면 야유회 기분이라도 내련만 아쉽게도 여러 해째 이 밥이다.
애초에 그들은 밥을 먹으려고 구로 공단을 찾았다. 그리고 지각했다고 해고, 대들었다고 해고, 말귀 못 알아먹었다고 해고…. 밥 먹듯이 당한 해고 덕에 배가 더 불렀다. 일하다 해고당하고, 다시 일하다 해고당하고, 하루하루 구로공단을 유령처럼 배회하다 이곳에 주저앉았다. 유령이길 거부하던 200명이 6년 뒤 32명이 됐다. 남은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앉아 컵밥을 먹는다.
3. 꽃상여 앞에 모였다. 세상에 우리가 아직 여기에 있노라고 외치려 모였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없다. 그들 보고 '떠나라'며 동네 주민들이 걸어놓은 현수막만이 맞은 편 옥상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허공을 향해 외쳤다. 아침이면 그들을 자른 회사 앞에서 선전전을 펼친다. 기만하고, 무시하고, 때론 억압해도 그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4. 무시당할수록 그들은 조용해졌다. 밥을 끊었다.경비실 옥상 위 텐트에 흰 옷을 입은 이들이 드러누워 있다. 그들이 곡기를 하루 더 끊을수록, 기운이 없어 말수가 줄어들수록, 세상은 그들에게 이야기하자며 다가왔다. 2년 전엔 그렇게 94일을 굶었다. 그래도 세상은 그들이 출근하던 라인을 돌려주지 않았다. 구로공단에 그들처럼 떠도는 유령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굶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 시작했던 협상이 결렬되고, 그들은 다시 밥을 끊었다. 그리고 '마지막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
5. 1892일이 흘렀다. 해고당하고, 무시당하고, 컵밥을 먹고, 다시 굶고, 외치고 저항하길 반복하며 그들은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들의 이름이 점점 굳어졌다.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 노동권의 사각지대. 그들로부터 시작된 이름이 뭉치고 뭉쳐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름이 새긴 균열이 사회가 쓴 단단한 가면을 깰 날을 기다리며 그들은 오늘도 컵밥을 먹고, 밥을 끊고, 꽃상여에 오르고, 허공을 향해 외친다. 언젠간 익숙한 그 라인에서 부지런히 부품을 조립할 그 손들을 공중에 곱게 걸어놓은 채.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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