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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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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는 울지 않는다

아이티 대지진 현장에서 죽음과 희망을 생각하다

어느 무더운 날 오후였다. 샤워하고 숙소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오분 후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더위가 내 몸을 점령하는 그런 날이었다. 임시로 쓰고 있는 촬영조끼 한쪽에 망원렌즈 하나 또 한쪽엔 광각렌즈 하나 찔러 넣고 카메라에 스트로보를 꽂아 또다시 도시 중심을 무표정하게 배회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촬영 첫날에 비하면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첫날엔 검은 눈에 빨간 눈의 그들이 하이에나처럼 다를 덮칠지 몰라 솔직히 너무 두려웠다. 지옥도가 현현한 이 도시에서 그들이 내 육신을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 놓을지 몰라 두려웠다. 두려움 때문에 잠도 설쳤고 내 몸의 컨디션은 정말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이런 날들이 거듭되면서 두려움의 날은 점점 무디어져 갔다. 그리고 어둠에 파묻혀 있던 그들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엔 두려움, 불안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인간성의 상실이나 분노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지구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두려움과 여러 고민들의 중첩 그리고 또한 나약하지만 질긴 생명력이 읽혀졌다. 상처는 아물어진다. 정 반대의 감각인 행복도 망각되는 것을 보면 감각의 작동 원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날도 시대 한 구역에서 타다 남은 시체를 발견하였다. 화장이 아닌 길거리에서 주인 없이 방치되어 불로 태워진 머리, 팔다리가 잘려나간 그런 시체 말이다.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영혼이 빠져나가 의식이 없는 시체에 본능적으로 시체에 파인더를 가져갔다. 나에게 시체를 촬영할 권한이 있는지 모르겠다. 시체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타다만 숯덩이의 산화된 단백질 사이로 붉은 살점들과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인다. 파리가 웅웅 거린다. 파리에겐 이 시체는 또 다른 생명력의 발현을 꿈꾸는 장이 될 것이다.

죽음은 동시에 생으로 마감된다. 어미 개가 다가온다. 젖가슴이 주렁주렁 매달인 막 생명을 잉태한 그런 떠돌이 어미 개 말이다. 나는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런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마치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살인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것 같았다. 다리가 굳어 어디로 숨을 수도 없었다. 무표정의 어미 개는 타다 남은 잘 익은 인간의 육신을 개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쩝쩝. 잘 찢어지고 삼켜지는 그런 잘 숙성된 고기 말이다.

두려워하며 다시 파인더를 가져갔다. 거리는 가까워지고 그쪽의 파리, 모기가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윙윙. 혹은 시꺼먼 매연을 뒤집어쓴 쥐가 잽사리 지나간다. 후다닥. 큰일 났다. 내 몸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 상황을 막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갑자기 세상에 침묵이 다가왔다. 내가 갖고 있는 인간 윤리의 범주에서는 가장 극악무도한 세상의 종말을 여기서 보았다. 시간의 멈춤 이후 억겁의 시간 이후에 다시 소리가 돌아왔다. 다시 세상의 브라운관에 빛이 들어왔다. 차가 지나갔고 다시 행인들이 이 광경을 스쳐 지나가며 힐끗 보더니 다시 갈길을 계속간다. 배를 채운 개는 혀로 입주변을 낼름 훑고 다시 동네를 싸돌아 다니기 시작한다.

대낮을 호령했던 장군인 태양이 경계를 풀고 깊은 밤의 세계로 세상을 인계할 시간이다. 태양은 생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 마지막 희망의 불빛을 황금색으로 비춰주고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약 23만명의 생명을 저 어둠 넘어로 인계해 간 이 먼지로 뒤덮인 슬픔의 도시에선 어둠이 하루의 시작일까. 인육을 먹은 개가 동네를 배회한다. 공포가 이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인간 문명의 세계가 사라지더라도 죽음은 여전히 육신 먹이고 이 육신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인간 세상의 종말이란 나약함과 자기중심적 사고의 결과일 뿐이었다.

인간 세상의 종말 보다 위대한 자연의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겸허했다. 인육을 먹은 개는 골목을 배회하고 안면이 있는 주민들은 여느 날처럼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자연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겸허하다. 참 순한 개이다. 그 개에겐 아무런 삶에 대한 미련도 분노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문명, 윤리 따윈 개의치 않았다. 자연은 훨씬 거대했고 위대했다. 인간따위에게 결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

23만명의 죽음 앞에 두려움과 분노로만 이후의 세상을 다스리기에는 인간의 생은 너무 짧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기억은 하되 생을 생으로 장식하라. 죽음을 생에서 재현하지는 말지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다시는 이런 이유 없고 무자비한 살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제 인간과 자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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