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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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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도시

옥인아파트에 남은 13가구 이야기

"내가 선택하는 공간이 언제 사망 선고를 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돈이) 없어서 당하는 기분이다. 있으면 그냥 가면 된다. 억울해도 그냥 가면 된다"
"내가 참 열심히 살았는데......"

흩어진 말들이 모이자 '도시'가 보였다. 재개발의 환부는 깊었다. 돈은 매정했고 철거는 가혹했다. 차갑고 견고한 도시 앞에서 사람들은 무력했다. '유민의 도시'는 위태로워 보였다.

2010년 3월 서울시 종로구 옥인아파트. 인왕산 공원화 계획으로 작년부터 철거가 시작된 이곳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다. 떠나지 못한 13가구의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발표에서 철거까지 불과 2년

절차는 간단했다. 2007년 12월 인왕산 공원화 계획이 발표된 뒤 2008년 9월부터 보상이 시작됐고, 철거는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은 2009년 8월 말에 착수됐다. 발표부터 철거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짧은 공정은 부작용을 낳았다. 급히 서두른 보상은 분쟁거리를 만들었고 소송이 꼬리를 물었다.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둘 다 받았다고 해도 임대아파트 입주 전에 당장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소송에 걸리거나 아파트 입주 전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폐허가 된 아파트에 남았다.

떠나지 못한 사연들

두 아이 교육 때문에 남양주에서 서울로 온 김혜옥(46) 씨는 3년 전 옥인아파트로 이사 왔다. 그런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가 헐린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울시는 김 씨에게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고, 김 씨는 임대아파트를 선택했다. 뒤늦게 주거이전비까지 같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김 씨는 소송을 했고 승소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원 결정대로 주거이전비를 주는 대신 2년 후 임대아파트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공문이 날아들었다. 그래서 또 이런 결정에 대한 취소 소송을 하고 있다. 이 소송만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김 씨는 "(돈이) 없어서 당하는 것 같다. 있으면 그냥 가면 된다. 억울해도 그냥 가면 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2동에 사는 김화용(31) 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소송까지 해서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를 같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단서가 붙었다. 임대아파트 계약 1년 후 재계약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취소 소송을 걸었다. 임대아파트 대기번호 5번은 줄지 않고 있고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아 폐허가 된 아파트를 지키는 형편에 소송은 힘든 결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6동에 사는 박현술(72) 할머니는 천안 직산에 내려가기로 했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옥인동에서 30년을 넘겨 살았고 옥인아파트에서만 8년을 살았다. 할머니가 받은 보상금은 2천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아들이 가져가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했다. 구청은 아무런 확인 없이 평소 연락도 뜸한 아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박 할머니는 "그래도 아들에게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친척들은 대구에 있지만 신세지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아는 사람들이 있는 천안에 가서 싼 방을 찾겠다고 말했다.

3동 104호는 지하라는 이유로 보상금이 턱없이 적게 나와 소송을 건 경우다. 승소했다. 그래서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시가 항소를 결정했다. 소송이 끝나기 전에는 보상금을 받을 수 없으니 떠날 수 없는 형편이다.

7동 106호의 경우도 마냥 기다리는 형편이다. 보상금이 턱없이 적게 나와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그런데 아직 아파트 분양권은 나오지 않았다. 당장 가 있을 곳이 없어 아파트에 남았다. 이 집 주인 김경재(가명) 씨는 "공무원들이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참사에서 죽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도 가스통 가지고 구청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다"라며 그는 어렵게 마지막 말을 이었다.

2010년 오늘. 이 도시에서 이들이 사는 공간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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