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제다. 지역적으로 호남은 영남에 비해 소수다. 유권자 수에서 호남권은 이제 충청권에도 밀린다. 인구학적으로는 고령화와 맞물려 50대 이상이 갈수록 늘어나 4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지표다. 따라서 ‘영남 대 호남’ 구도인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40대 이하의 세대전략에 초점을 둔 선거도 필패다. 민주당으로선 재앙 가득한 묵시록적 미래다.
김한길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시사한 민주당의 ‘우향우’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애환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 같다. 민병두 의원은 “과감하게 전선을 오른쪽 중간에 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지자 정당’이 될 것인가, ‘다수파 정당’이 될 것인가 선택하자”고 했다. 그러나 집권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이건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당 지도부는 연평도를 방문해 ‘안보’를 돌아보는가 하면, 기업들을 방문해 ‘경제 성장’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보였다. 민 의원은 “경제민주화와 경제 정의를 내세우며 모든 재벌을 적대시하는 태도는 민주당을 수권정당으로 보게 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했고,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변화한 환경 하에서 새로이 다듬어지고 작동 가능한 햇볕정책 2.0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경제 성장과 경제 민주화가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고, 포용정책도 남북의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재설정 돼야 한다는 점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민주당의 ‘우클릭’은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반발하는 당내 강경파들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중원에서 철수해 극우화로 방향을 선회했으니, 민주당이 중도와 합리적 보수로 치고 나가면 ‘다수파 정당’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섣부르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중원 싸움은 대등한 힘의 균형이 뒷받침 될 때 해볼 만하다. 새누리당 지지율의 절반, 안철수 신당까지 포함하면 10%대 지지율로 곤두박질치는 지금의 민주당이 그러한가? 민주당이 아무리 우경화해도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진보는 선거에서 결국 민주당을 찍을 것이라는 오만은 아닌가? 민주당의 우클릭이 성공했던 과거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건 현명한 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포기를, 대북정책의 실패를 부각시켜야 할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자칫 쟁점이 희석될지도 모를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속내는 정작 따로 있는 것 같다. 새누리당보다 안철수 신당을 겨냥한 행보라는 의심이다. 이와 관련한 여러 갈래의 해석들이 나온다. 중도를 야권 내부 경쟁의 승부처로 판단했거나, 안철수 신당과의 장기적인 통합을 염두에 둔 거리 좁히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후자는 오히려 흡수합병될 가능성이 높기에 패배적이다. 진보노선을 포기하고 중도에 먼저 깃발을 꽂아 일정한 지지세를 구축한 쪽은 안 의원이기에 그러하다. 민주당은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전자라면 방향을 잘못 택했다. 불가피해진 3자 경쟁에서 민주당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오히려 왼쪽으로 나 있다. 안철수 신당과의 차별화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심판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단지 선거 전략만의 의미가 아니다. 안철수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과제도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지지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정당이 되지 못한 데에서 민주당의 비극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1000만 명 시대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곡소리가 민주당으로는 수렴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을 우회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바람이 민주당과 상관 없이 잦아드는 책임도 이를 벌써 과거 이슈로 넘겨버린 민주당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약속에 속은 사람들이 민주당 주변으로 모여들지 않는 까닭도 민주당의 실력이 의심스러운 탓이다.
김대중-노무현의 그림자에서 옴짝달싹 못하면서 목소리만 큰 강경파가 민주당의 변화를 이끌 견인차가 되기엔 무망하다. 이들은 안철수 신당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는 민주당 내부의 또 다른 적이다. 그러나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출범한 김한길 체제가 1년도 못가 중도 쟁탈전에 뛰어드는 갈지자 행보도 민주당의 부박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민주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정할 집요한 의지가 있다면, 안철수 신당을 오른쪽으로 밀어내고 무주공산이 된 진보의 영역에 자리를 잡는 쪽이 승산 있다. 김 대표가 말하는 민주당의 혁신과 야권의 “경쟁적 동반자 관계”도 그래야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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