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일은 드물지만 협동조합 전환 전에도 있었다. 몇 년 전, <프레시안> 사옥이 종로구 옥인동에 있을 때도 한 20대 여성 독자가 수박을 들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즐겨 읽는 <프레시안> 기자들에게 "뭐라도 꼭 대접하고 싶어" 수박을 가져왔다는 그를, 당시의 편집국 기자들은 쑥스러운 나머지 대접을 제대로 못했었다.
바로 그 때 수박을 가져온 그 독자는 바로 양현진(31) 씨. 열성 '독자'에서 이젠 어엿한 <프레시안>의 '주인'이 된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 지금 한국에 안 계신다면서요?
네,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 재학 중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마쳐야겠다고 결심했거든요. 늦깎이 대학원생입니다.
-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을 이용해서 백금 표면에 흡착시킨 일산화탄소(CO) 분자의 분자 간 상호 작용과 움직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는 독자들이 극소수겠죠? (웃음) 원자 하나, 분자 하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현미경을 가지고 분자 하나 혹은 여러 개를 금속 표면에 올려놓고 그 움직임을 살피는 일이라고만 해두죠.
- 협동조합 전환 전부터 <프레시안> 열성 독자셨죠? 많은(?) 매체 또 여러 진보 매체 중에서 <프레시안>에 특히 끌리신 이유가 뭔가요?
<프레시안>에 끌렸던 이유요? 다른 매체에서 다루지 않은 이슈를 <프레시안>만의 관점으로, 심도 있게 그리고 뚝심 있게 (스크롤 압박!!!) 보여줘서요. 기억에 남는 기사만 얼핏 꼽아 봐도 부안 사태, 황우석 사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경고, 기륭전자 파업 등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기획 기사 중에서도 재생 가능 에너지, 핀란드 교육 등을 열심히 읽었었죠. 그리고 특히 다양한 분야의 외부 기고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다른 매체에서는 절대로 허용될 수 없을 듯한 엄청난 분량으로 실리는 다양한 관점의 글들은 <프레시안>만의 독특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 몇 년 전에 <프레시안> 사무실에 수박을 들고 찾아오신 적이 있죠? (웃음)
하하하, 그랬죠. 회사 쉬는 날이면 그 부근 동네(부암동, 효자동, 옥인동, 통인동 등)를 배회하는 걸 좋아했었는데, 근방에 온 김에 <프레시안> 편집국을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빈손으로 가긴 그래서 수박을 사들고 갔어요. 그 때 두 가지 때문에 놀랐었죠. 하나는 너무 조용~해서. (웃음) 어떻게 사무실에서 키보드 타이핑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고요.
또 하나는 저 같은 독자들이 많이 없었는지 기자들이 되게 쑥스러워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중 한 분이 저한테 이렇게 물었어요. '왜 이런 걸 사오셨냐, 돈이 많으시냐?' (웃음) 이 얘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 그 때 대접을 제대로 못해드렸던 것 같아서 아직도 미안합니다. 그런데 보통 이공계 대학(원)생, 혹은 과학기술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편견이죠. 아무래도 과학기술자는 사회 문제 등에 정보를 얻기 어려운, 고립되기 쉬운(;;;) 특성이 있죠.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죠.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를 얻기 쉬워진 상황에서 딱히 과학기술자, 이공계 대학(원)생이라고 해서 정보에서 고립되지는 않으니까요. 다른 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평균 혹은 그 이상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요?
- 외국에서 이명박 정부 또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봤어요. 밖에서 본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인터넷이 너무 발달해서 제가 바깥에 있다, 라는 게 아주 크게 실감이 나지는 않아요. 하하하.
- 공부, 연구보다는 뉴스를? (웃음)
그게…. 한국에 계신 분들만큼은 뉴스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전체적인 방향이 불안불안, 위태위태해 보이는 건 나라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한국에 계신 분들과 다른 점이라면 일본과 자꾸 비교해 보게 된다는 점이겠죠. 한국이 겪고 있는 변화가, 일본에서는 이미 겪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민영화도 한 예고요.
일본도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그럼에도 한국과 비교하면 변화의 속도 면에서 최소한의 기본은 지키는 것 같아요. 여론을 수렴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 자체가 생략된 한국의 폭력적인 일 진행을 보면 더욱더 그렇죠. 꼭 밖에서 본 한국 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요.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그 때까지 과연 이 나라가 무사할까요?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그 시점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 그래도 이 와중에 또 프레시안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셨잖아요? <프레시안>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딱히 <프레시안>에 제 의사를 반영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좋아하는 <프레시안>이 불안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기사를 읽는 재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물론 학위 과정을 마치고 나면 조합원으로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을 더 고민해 봐야겠죠.
- 그래도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이 있을 텐데요?
늘 그렇듯 초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관점 있고 심도 있는 기사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기사를 보여주는 방법(레이아웃, 폰트, 글씨 크기 등)은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프레시안>에 제일 아쉬운 게 바로 이런 디자인적인 요소들이거든요. 그것도 콘텐츠만큼 중요하잖아요?
- 2014년 새해네요. 이후 계획은 어떤가요?
일단 박사 학위 과정을 무사히 마쳐야죠. 계획대로라면, 올해 안에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할 것 같아요. 그럼, 일자리를 찾아야죠. 아마도 2015년에는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로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느 곳이 될지는 정해진 게 없고요. (웃음) 제가 좋아하는 연구로 계속 먹고살 수 있게 열심히 해야죠.
-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으세요? 또 만들고 싶으세요?
'소통과 공감이 가능한, 한 명 한 명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비인간적이지 않으면서도 '합리성'을 가진 사회가 될 수 있는데 뭔가 기여하고 싶습니다. 좀 막연하죠? 하하하.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프레시안 기자 또 다른 조합원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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