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를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를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1월의 카메라명상학교

사진을 찍으려고 손에 드는 순간, 세상이 갑자기 새롭게 보이거나 이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온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입니다. 카메라명상학교는 사진 찍기에 내재된 이 힘을 명상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합니다. 사진 찍기의 과정 속에 항상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카메라명상학교에서의 사진 찍기는 카메라를 들고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과 우발적인 만남을 통해 명상이 시작되도록 합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것들과 맞닥뜨리도록 하며, 사물들이 내뿜는 감각들에 내 몸이 보다 예민해지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명상이 가능한 이유는 사진 찍기가 문 밖으로, 습관 밖으로, 이성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우리에게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마음을 버림으로써 그 바깥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진 찍기는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과 우발적인 만남을 통해 명상이 시작되도록 한다. ⓒ송미옥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카메라를 잘 다룰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주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 한다" "나는 사진 찍기의 초보자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 찍기의 초보자가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훈련된 사진 찍기의 고수들입니다. 사진 찍기에 대한 훈련이 거듭될수록 특정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세계와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잘 다루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만큼, 좋은 '사진 찍기'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사진 찍기를 좋게 하는 것입니다. 사진 찍기를 좋게 하면 그 결과물인 사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메라를 손에 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셔터를 누르기까지 벌어지는 여러 과정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사진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았는지,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세웠는지를 자신의 몸에 흔적으로 남기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명상학교(교장 임민수, 사진작가)가 새해 1월, 제4강을 준비합니다. 임민수 교장선생님는 카메라로 명상하기를 인도합니다. "나를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작정 카메라 들고 나서기입니다. 사진 찍기는 '밖'으로 나서기입니다. 문 밖으로, 습관 밖으로, 이성 밖으로 나서기입니다."

임민수 교장선생님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대전일보와 현대불교신문에서 사진기자로 일했습니다. 개인전 <전통의 가면>과 기획전 <서울생활의 재발견>에 참가했으며, <카메라-인간> 등 몇 개의 사진전을 기획했습니다. 2004년부터 '카메라로 사유하기'라는 주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 학생과 교사, 일반인, 소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카메라로 명상하기>가 있으며, 현재 대전시민대학을 중심으로 사진 찍기를 통한 다양한 명상과 사유의 가능성을 펴보이고 있습니다.

1월 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카메라명상학교 제4강의 구체적인 강의 진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메라명상학교는 이번부터 격월 둘째 일요일에 열립니다. 제4강은 2014년 1월 12일(일요일) 오전 10시에 시작합니다. 9시 50분까지 강의실에 꼭 도착해주십시오. 강의실은 서울 경복궁 옆에 있는 막걸리학교입니다(서울시 종로구 삼청로4(사간동 126-6) 광성빌딩 3층. 광화문 동십자각 바로 옆이며 아래 약도 참조).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카메라로 명상하는 방법> 강의가 있습니다.


<카메라로 명상하는 방법>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찍고 있는가
-카메라 들기에서 셔터 누르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사진 찍기를 이용한 명상의 방법들


우리는 사진 찍기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찍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면 곧바로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진 찍기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서는 것부터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복잡한 과정 전체를 말합니다.

카메라 들기→현실의 이미지 맞닥뜨리기→눈으로 보기→액정화면을 통해 보기→셔터 누르기라는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진 찍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진 찍기를 하며 겪게 되는 여러 과정을 어떤 목적과 태도로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사진 생산을 위한 사진 찍기'가 될 수도 있고 '명상을 위한 사진 찍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습을 선으로 환원해 사진 찍기를 함으로써 문화적인 규칙을 지키며 사진 찍기를 하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다. ⓒ송미옥

오전 11시 20분부터 오후 1시 40분까지 분까지 <특집1 : 세상을 선으로 환원해 사진 찍기>와 <특집 2 : 식별불능으로 사진 찍기> 입니다. 촬영지는 서울 경복궁과 경복궁 주변 입니다. 이 시간, 사진을 찍으며 마음에 드는 맛집에서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합니다(식사비는 각자 부담).

[특집1] 세상을 선으로 환원해 사진 찍기
-사진의 화면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세상을 잘게 쪼개서 바라보기


사진의 전문가들은 현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사진으로 찍혀져 나올 이미지를 정확히 예측합니다. 사진 찍기를 잘 한다는 것은 눈으로 본 것과 최종적인 사진을 잘 일치시키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기→사진 찍기→찍은 사진 확인하기'를 계속 반복함으로써 현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앞에 펼쳐진 모습을 사진으로 환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진 찍기에서 늘 벌어지는 이런 일은 그러나 매우 이상해 보입니다. 카메라를 손에 드는 순간,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자세히 보려 하지 않고 곧바로 사진으로 변환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우리는 세상의 모습을 사진으로 변환하는 자동기계가 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사건과 정보를 카메라로 제작된 사진 이미지를 통해 접합니다. 사진을 정보 유통의 매개로 사용하는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점차 사진은 현실을 대체하게 되고, 사람들은 실제의 현실을 사진으로 환원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특집2] 식별불능으로 사진 찍기
-사진 찍기로 길을 잃기
-윤곽을 없애고, 경계를 가르는 사진 찍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세계 속의 이미지, 물질들이 인간이라는 필터를 통과하고 남은 찌꺼기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을 알면 아는 그만큼 알 수 없는 부분, 감춰진 부분도 함께 증가합니다. 우리는 이성의 빛으로 세계를 비춰서 외부를 인식하고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이성은 빛은 세계와 나 사이에 놓인 재현체계라는 창에 불과하며, 이성의 불빛을 더욱 세게 하면 할수록 재현체계라는 창은 더욱 두꺼워집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그 대상과 우리의 관계를 드러내 주는 지표의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무엇을 사진 속에 담았다고 생각할 때, 사실은 그만큼 놓치는 부분도 함께 늘어납니다. 사진 찍기가 세계와 나 사이에 놓인 재현체계라는 창을 더욱 두껍게 할 수 있고, 가능한 얇게 해서 세계와의 소통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후자를 우리는 사진 찍기로 직관의 힘을 펼쳤다, 또는 카메라를 명상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사진 찍기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무엇인지, 재현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인지에 대해 보여 준다. ⓒ송미옥

[경복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정궁(正宮).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조선조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越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慶會樓)를 다시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蛾眉山)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세종은 이곳에 집현전을 두어 학문하는 신하들을 가까이에 두었으며, 경회루 남쪽에 시각을 알리는 보루각(報漏閣)을 세우고 궁 서북 모퉁이에 천문관측시설인 간의대(簡儀臺)를 마련하였으며,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欽敬閣)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玉漏器)를 설치하였다.

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연생전·흠경각·사정전(思政殿)을 복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이때 창덕궁·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정릉동의 구(舊)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를 임시 어소(御所)로 정하였다.

궁의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환도한 뒤 경복궁에 가가(假家)라도 지을 것을 명하였고,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여기에 경복궁이 길(吉)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왜란 후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에서 단종이 쫓겨난 일이 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 뜰에서 왕의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궁이 중건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 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동행각·서행각·연길당(延吉堂)·경성전·연생전·인지당(麟趾堂)·흠경각·함원전(含元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사정전·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경회루 등과 근정문·홍례문·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또한,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이 밖에 자선당 자리에도 석조건물이 들어서고 건청궁(乾淸宮) 자리에는 미술관을 지어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인멸시켰다.

1945년 광복 후 궁은 공원으로 개방되는 한편, 일인(日人)들이 지었던 총독부청사는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다가, 1971년 궁의 동북 담장 가까이에 지어진 목조기와건물 모양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에 들어있던 국립박물관이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을 고치면서 이 건물로 이건되었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원·낙성되었다.

한편, 일제에 의해 건물이 훼철되는 피해를 입은 경복궁을 복원하는 공사가 1991년부터 침전·동궁·흥례문·태원전·광화문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20년에 걸쳐 5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고종 당시 지어진 건물의 40%가 복원되고,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로조 지어졌던 광화문도 원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다시 강의실로 돌아와 <선으로 환원한 사진 함께 보기>와 <찍은 사진으로 성찰하기> 입니다. 각자 찍은 사진을 나누어 보면서 교장선생님의 강의를 듣습니다.

<선으로 환원한 사진 함께 보기>
-나는 어떤 규칙을 지키며 사진 찍는가
-시각적 무의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찍은 사진으로 성찰하기>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는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식별하는가


내가 찍은 한 장의 사진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무엇에 주목했는가, 나는 어떤 태도로 바라보았는가, 나는 어떤 방법으로 사진을 찍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사진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사진 찍기라는 행위를 어떻게 했는지를 자신의 몸에 흔적으로 남깁니다.

사진 속에 담긴 이러한 것들은 명상의 깊이를 측정하는 재료로 사용됩니다. 찍은 사진을 통해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습관이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진 찍을 만났던 이미지를 다시 맞닥뜨리며, 내 마음을 뒤흔든 이미지가 어떤 생각을 촉발시켰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준비하세요. 카메라가 없는 분은 교장선생님 소장품을 빌려드리니 미리 신청하세요^^

▲사진 찍기는 익숙한 삶의 공간을 낯설게 만나도록 하며,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것들과 우연히 맞닥뜨리도록 한다. ⓒ송미옥

이날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방한 차림, 디지털 카메라, 모자, 장갑,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 차단제, 필기도구 등.

카메라명상학교 제4강 참가비는 5만원입니다(강의비, 입장료, 다과비, 운영비 등 포함).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참가신청 바로가기


▲강의실 찾아오는 길(막걸리학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