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경찰력이 지배해 버렸다. 5월 공사 재개 때만 해도 주민과 한전 직원과의 싸움을 지켜만 보던 경찰은 이제 선제적으로 주민의 반대를 막아내고 있다. 이달 초 공사 재개 때와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경찰의 '호위'를 받아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127번 등의 현장에도 머지않아 공권력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명분과 논리를 다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화나 소통은 커녕 당사자 간에 싸워야 한다는 원칙도 사라진 지 오래다. 불행하게도 밀양은 완력이 지배하는 가장 원시적인 공간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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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3분 간격으로 세 번의 해산명령을 내린다.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여경들이 노인들을 들어낸다. 경찰이 손가락을 펴 들고 3차 해산 명령을 내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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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공구에서 자재를 싣고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헬기가 밀양 댐을 건너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최근 일부 언론은 동화전 마을의 공사 찬성 소식을 기사화했다. 오랫동안 반대하던 마을 주민들이 찬성 도장을 찍어줬다는 내용이다. 이 언론들은 마치 밀양 주민들이 찬성으로 돌아선 것처럼 보도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합의 과정에서 주민이 직접 서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공사 찬성이 아닌 구속된 주민의 석방 탄원서로 알고 서명한 주민이 많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같은 의혹으로 주민 일각에서는 합의 무효 서명과 이장 교체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동화전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송전탑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전제를 깔고 말을 시작했다. 한 주민은 "경찰이 막으니 공사를 막아볼 어떤 방법도 없더라"는 말로 무기력감을 표현했다. 옆 마을인 바드리마을에서 경찰과의 마찰로 인해 한 주민이 구치소 신세를 진 것도 주민들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이 마을에는 공사를 반대하면 경찰서에 잡혀가서 이틀 사흘 구치소 신세를 지고 나온다는 말이 파다했다. 또 한 주민은 "주민 간 갈등만 심해지고 경찰 때문에 어차피 막지도 못할 바에는 농사일을 돌보는 게 낫다"면서 반대 입장 철회의 속내를 밝혔다. 그러나 그 역시 송전탑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는 못했다.
24일 밤 동화전 마을에서는 공사 찬반에 관한 주민 모임이 있었다. 모임은 싸움으로 얼룩졌고 투표는 무산되고 회의는 파행을 겪었다. 주민 다수가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식의 보도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주민들이 오랜 싸움에 지친 것은 사실이다. 경찰력에 대한 공포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수의 주민이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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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전 마을. 한 주민이 송전탑 반대에 관한 주민 갈등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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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전 마을은 강력한 경찰력에 공사 반대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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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회관 앞 게시판에 붙은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
경찰의 공권력은 주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25일 오후 109번 현장의 공사장 인부의 교대를 막아서던 주민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노주근(77) 할머니가 다쳤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경은 할머니의 팔다리를 붙잡고 들어내다 바닥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고 했다. 노 씨는 다리 관절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허리가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다. 다리를 잡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여경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결국 노 씨는 주민들이 부른 구급차에 실려갔다. 경찰은 공사 인력 교대 차량이 통과하자마자 현장을 벗어났다. 경찰력 행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특히 여경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상당했다. 상황이 끝나면 '그 가시나들'에 대한 성토가 한참 이어진다. 성추행 시비를 막고자 시작된 여경 투입은 그 과정이 의외로 과격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밀양의 경우 노인들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에 따르면, 30일 현재 44명의 노인이 응급실에 실려갔고, 3명이 아직 병원에 있다. 23명이 연행 혹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출석 요구를 받았고, 2명이 구속됐으며 1명의 주민이 수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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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채증 모습. 뒤에서 몰래 하던 채증과 달리 이제는 주민 바로 앞에서 행해지는 노골적인 채증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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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경에 대한 할머니들의 반감은 상당했다. 실제로 밀양에서는 여경의 진압 과정에서 가장 많은 부상자가 나온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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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주근(78) 할머니의 허리. 다리 수술을 두번이나 했고,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노 씨는 여경들이 사지를 붙잡고 던지듯 땅바닥에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급차에 실려갔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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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급차에 실려가는 노주근 할머니를 주민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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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비료포대가?" 여경의 진압 과정을 설명하는 주민 ⓒ프레시안(최형락) |
공사를 저지하는 주민들의 환경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109번 현장의 경우 주민들은 공사가 진행되는 산에 오를 수조차 없다. 경찰이 통행을 제한한 것이다. 이달 초 109번 현장까지 오르내리며 반대하던 주민들은 공사를 막기 더 어려워졌다. 헬기는 쉴 새 없이 자재를 나르고 주민들은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여론은 밀양 주민에 다소 우호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23~24일 실시된 <프레시안>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6.9%가 '송전탑 공사를 일단 중단한 후 지역 주민과 대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응답 48.2%와의 격차를 줄였다. 곧 이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가 27일 조사한 결과에서는 '밀양 주민의 주장에 더 공감한다'는 응답이 46.1%로 '한전의 주장에 더 공감한다'는 응답 42.3%를 앞질렀다.
문제는 현장이다. 이러한 여론은 현장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미 물리력이 지배한 공간에서는 명분도 논리도 세상의 이목조차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이미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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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번 공사 현장. 레미콘 차량을 대신해 헬기가 콘크리트를 나른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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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번 현장의 송전탑 기반부 공사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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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면 84번 현장 인근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타 지역의 송전탑. 다른 지역은 이미 건설이 완료됐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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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동면 여수마을. 농사 지으랴 공사 반대하랴 주민들의 고민은 깊다. 결국 이틀 쉬고 하루 올라가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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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마을. 헬기의 비행으로 마을은 종일 시끄러웠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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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마을. 반대도 어느 정도 소용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은 도무지 경찰을 이길 재간이 없다는 뜻이다. 한 주민이 답답함을 드러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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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마을에서 한전과 정부를 규탄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그러나 공사에 회의적인 여론은 밀양에서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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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동면 금호마을 주민들이 통행량이 많은 25번 국도에 나와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마을 박정규 동장을 비롯한 3명은 28일 공사 중단을 촉구하며 서울까지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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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동면 금호마을 서분이(73) 할머니의 단식 모습. 이 마을 주민들은 21일부터 매일 한 명씩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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