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는 이렇다. 쿠바 관타나모의 미군 해병대 기지에서 산티아고 일병이 동료들의 가혹행위에 의해 사망한다. 숨진 산티아고 일병은 우리나라 군대 용어로 치면 '보호관심사병'이었다. 부대에 적응하지 못해 상급부대에 부대의 불합리한 관행을 고발하며 전출해달라고 편지를 써댔다. 부대 참모장은 이 병사를 전출시키자고 했지만 완고한 성격의 지휘관 제셉 대령은 일명 '코드 레드'를 명령한다. 부대 내의 음성적 가혹행위 관행으로 우리 식으로는 '얼차려'다. 그러다 산티아고 일병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부대에서는 '코드 레드' 명령 사실을 숨기고 단순 살인 사건으로 은폐하려 한다.
▲ 영화 <어퓨굿맨>의 포스터. |
캐피 중위는 두 병사에게 "6개월만 살고 나오면 자유"라고 회유하지만 도슨 상병은 협상안을 거부한다.
"6개월 뒤에는 불명예 전역이겠죠? 우리는 신념에 따라 살고 싶어서 해병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입으로 해병임을 부인하라고요? 재판에서 진다면 승복하겠습니다. 하지만 명령(코드 레드)에 따른 것은 옳은 일이라 믿습니다. 6개월 뒤의 자유를 위해 제 자신과 해병의 명예를 실추시키지는 않겠습니다."
명령에 따른 것이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코드 레드'는 음성적인 명령이었기에 관련자들의 증언 외에는 증거가 없다. 관건은 '코드 레드' 명령을 내린 최고 책임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 "산티아고를 보호하라고 명령하고 전출 시키려 했다"고 거짓말하는 제셉 대령을 상대로 캐피 중위는 법정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산티아고를 보호하라고 명령했는데 소대원들이 대령님의 명령을 무시한 건가요?"
"소대장이 '전출시키라'는 대령님의 명령을 까먹은 건 아닐까요?"
"소대원들이 대령님의 명령이 틀렸다고 생각해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나요?"
'명령 불복종' 가능성 언급에 제셉 대령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남에게 내 목숨을 맡겨본 적 있나? 남의 목숨을 맡아본 일은? 우리는 명령에 복종한다. 안 그러면 사람이 죽어."
캐피 중위는 굴하지 않고 계속 묻는다.
"산티아고를 보호하라고 명령했으면 산티아고는 안전했을 텐데, 산티아고가 죽은 것은 결국 소대원들이 대령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내 덕분에 너 같은 애송이들이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고 "명예, 신조, 충성이라는 말이 생명"이라는 군인 정신에 투철한 제셉 대령은 결국 참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며 "제기랄, 내가 코드 레드를 명령했다!"고 실토한다. 결국 제셉 대령은 법정에서 헌병에 체포되고 두 병사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는다.
이미 '유죄'가 선고된 사이버사령부, 책임은 누가?
요즘 정부 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보면서 20년도 더 된 <어퓨굿맨>의 해병들이 떠오른다. 특히 군 사이버사령부를 보면 그렇다.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정치 개입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들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군형법에 따르면 정치 개입 금지 조항(제94조)을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금고에 처해진다. 국방부장관은 대선을 앞두고 네 차례나 공문을 통해 정치 개입 금지를 지시했다고 한다. '명령 위반'(제47조)의 가능성이 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이다. 이들은 업무 시간에 댓글 활동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사실일 경우 '군무 이탈'(제30조) 가능성을 따질 수 있다. 전시엔 사형도 가능한 중대 범죄이나 평시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이들의 활동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대북 심리전'이라는 적법한 직무였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미 "개인의 일탈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명령에 따랐건, 개인적이었건 이미 '일탈'이라는 '유죄' 선고가 내려진 것이기에 '직무 연관성'의 다툼 여지는 없게 됐다.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은 명령 위반에 정치 관여, 군무 이탈까지 더해져 가중처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인복무규율'에는 '명예'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온다. "군인정신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굳게 지녀야"(제4조의3)하며, "모든 부대는 군기가 상징하는 부대의 전통과 명예를 위하여 지휘관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하여야"(제4조의6)하고, "군인은 군의 위신과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제9조 제1항)되며, "군인은 타인의 명예를 존중하여야 하며 이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제9조 제2항)된다.
'명예'의 한자는 '이름' 명(名)에 '기릴' 예(譽)다. 전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군인에게 '이름을 남기는 것'은 목숨과 비견되는 가치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명예도, 부대의 명예도, 나아가 전체 군의 명예까지 훼손했다.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명령에 불복종한 채 '개인적 일탈'을 자행했다면 처벌은 물론 그들의 명예까지 짓밟혀 마땅하다.
그렇다고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할 군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반복적으로 명령을 어기고 위법 행위를 하는 데도 이를 몰랐던 죄가 있다. 김관진 장관은 2010년 12월부터 국방부 장관을 맡아왔다. 직접적인 당사자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면? 국정원의 교육에 따라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라면? 영화 <어퓨굿맨>과 상황은 비슷해진다.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은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이다. 제셉 대령은 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이 될 수도 있고, 국방장관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면 김관진 장관부터 군 지휘관들은 '비겁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들의 안위(혹은 정권의 안위),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병사들의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니까.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하면서 국정원 말단 직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였다. 사이버사령부 요원들도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면 군 사법기관 역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기소되지 않았던 배경에는 '원장님 지시사항'이 증거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군은 업무 특성상 '중대장 말씀'까지 모두 일지에 기록한다. 군 조사본부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단순히 명령에 따랐을 뿐이더라도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의 책임이 전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어퓨굿맨>에서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은 살인, 살인모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지만 불명예 전역을 당했다.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명예'를 지키고 싶어 "'불명예 전역'은 안 된다"며 법정 투쟁까지 벌였으나 결국 '불명예 전역'이라는 결과를 받게 된 것이다.
"대령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우리 잘못이 뭐죠?"
다우니 일병이 납득을 못하겠다면서 캐피 중위에게 따지자, 도슨 상병이 대신 답한다.
"아니,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어.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지. 우리는 산티아고를 보호했어야 해."
영화 속 숨진 산티아고 일병은 2012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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