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 '쩐의 전쟁'이 펼쳐진다. 또 하나의 프로야구 시즌, 스토브리그가 9일 16명의 FA(자유계약) 신청 선수 발표와 함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야구계에선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그 어느 해보다 구단들 간의 치열한 영입전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2013 시즌 결과가 준 학습효과 때문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 순위는 사실상 작년 겨울 FA와 트레이드 영입전이 갈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착실하게 전력을 보강한 LG와 NC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고 전력 유지에 성공한 넥센과 두산도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주축 선수가 빠져나간 롯데, SK, 한화는 실망스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선수 자원이 부족한 프로야구에서는 거물급 FA 영입 외에는 마땅한 전력 보강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내년 시즌 각 팀의 성패도 이번 스토브리그 결과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이유는 이번 FA 시장에 유독 대어급과 준척급 선수가 많다는 점이다. FA 자격을 신청한 선수만 16명. LG 이대형과 권용관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난 시즌 팀의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들이다.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급 선수는 물론, 향후 오랜 기간 좋은 성적이 예상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FA 시장에 쏟아져 나온 해는 없었다. 이에 지난해 김주찬의 50억은 기본이고, 역대 최고액인 심정수의 60억 기록을 깨는 선수도 여럿 나오게 될 전망이다.
FA 자격 신청 선수 명단
장원삼(투수), 박한이(외야수), 정근우(2루수), 이종욱(외야수), 손시헌(유격수), 최준석(1루수), 이용규(외야수), 윤석민(투수), 강민호(포수), 강영식(투수), 이대수(유격수), 한상훈(2루수), 박정진(투수), 이병규(외야수), 이대형(외야수), 권용관(내야수)
FA 신청자 중 투수 최대어인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또는 일본 야구 진출이 유력한 상황. 여기에 원 소속팀 잔류가 확정적인 박한이(삼성)와 이병규(LG)를 빼면 실제 각 구단이 영입할 수 있는 선수는 13명이 남는다. 이 가운데 9개 구단이 영입 대상 '1순위'로 꼽는 후보는 5명. 포수 강민호와 2루수 정근우, 좌완투수 장원삼과 외야수 이용규·이종욱이 이번 FA 시장의 '빅 5'로 꼽힌다.
'FA 빅 5' 50억 기본, 100억까지 간다
빅 5 중에서도 단연 최대어는 강민호다. '20대 포수'라는 희소가치에 전국구 스타의 상품성까지 겸비한 강민호는 팀 성적과 흥행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다. 현재 프로야구는 대부분의 팀이 심각한 포수 인력난을 겪는 상황. 매년 2할 7푼 이상 타율-10홈런 이상이 가능한 공격력과 안정적인 포수 수비까지 갖춘 강민호만한 포수는 어디서도 구하기 어렵다. 프로 10년차지만 이제 겨우 29살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앞서 이대호-홍성흔 등을 다른 팀에 빼앗기며 큰 타격을 입은 롯데는 강민호만큼은 반드시 잔류시킨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확실한 주전 포수감을 찾는 몇몇 구단들의 구애가 만만치 않아서 잔류를 100% 장담하기는 이르다. 심정수의 60억 기록을 깨는 것은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몸값이 최대 100억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악바리' 이용규도 FA 대박이 예상되는 선수. 강민호와 같은 28세 젊은 나이에 통산타율 2할9푼5리의 정교한 타격, 수비력과 도루능력을 한 몸에 지닌 매력적인 선수다. 팀의 득점력과 외야 수비, 기동력을 단번에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로 여러 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용규의 계약은 지난해 FA 최대어 김주찬의 계약(50억)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용규가 선수 생활 내내 김주찬보다 뛰어난 기록을 냈고 나이도 세 살이나 어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큰 규모의 계약도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시즌 말미 받은 어깨 수술로 내년 시즌 초까지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내야수로는 SK 2루수 정근우가 여러 팀의 구애를 받고 있다. 정근우는 프로야구 역대 2루수 중 가장 공수주에서 완벽한 균형을 갖춘 선수. 통산 타율 .301의 정확성에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력, 리더십과 승부 근성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여러 차례 한국시리즈와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는 점도 장점. 이용규보다 나이는 세 살 많지만, 2루수 겸 톱타자라는 희소성이 있어 실제 가치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번 FA 시장에서 강민호 다음가는 거액 계약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수 중에는 좌완 장원삼이 가장 돋보인다. 윤석민의 해외진출로 이번 FA 중 유일한 선발투수 요원이고, 게다가 좌투수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년간 300이닝 이상-30승을 기록한 꾸준함과 내구성이 강점. 강속구보다는 제구력과 변화를 무기로 삼는 투수라 30대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이 기대된다. 항상 지적된 '홀수해 징크스'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역투(2경기 1승 평균자책 2.25)로 말끔히 씻어냈다. 투수력이 예년보다 약해진 원소속팀 삼성은 반드시 장원삼을 붙잡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좌완 선발을 원하는 구단이 워낙 많아 잔류 여부는 불투명하다.
'빅 5'에서 마지막으로 거론할 선수는 두산 톱타자 이종욱. 2012년 타율이 2할대 초반으로 급락하며 우려를 샀지만, 올해 .307에 30개의 도루를 달성하며 건재를 알렸다. 이용규와 마찬가지로 정교한 타격과 출루 능력, 빠른 발을 고루 갖춘 외야수라는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특히 폭넓은 외야 수비 능력에서는 이용규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내년 시즌 서른 네 살이 되는 적지 않은 나이가 흠이라면 흠이다. 이용규의 계약 규모가 부담스러운 구단이라면, 차선책으로 이종욱 영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내야수 풍년… 투수 FA는 마땅찮네
해외진출 선수와 팀 잔류가 확실한 선수, '빅 5'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내야 요원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선수는 두산의 1루수 최준석. 정규시즌에서는 부진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폭발적인 활약으로 한껏 주가를 끌어올린 상태다. 아직 30세의 젊은 나이에 프로야구에 흔치 않은 우타 거포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1루수-지명타자 요원으로 수비와 주루에서 기여도가 거의 없어서 실제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보다는 수비력이 뛰어난 유격수 손시헌, 안정적인 2루 수비와 출루 능력을 갖춘 한상훈 등이 팀 승리에 많은 기여를 하는 '알짜 FA'가 될 수 있다. 수비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어느 정도 공격력을 갖춘 유격수 이대수도 염가 FA로 고려할 만한 대상자다.
넘쳐나는 내야 자원과는 달리 투수 FA는 올해는 흉년이다. 선발투수 장원삼을 빼면 남는 선수는 좌완 불펜요원인 강영식과 박정진 뿐이다. 강영식은 구위는 위력적이지만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게 약점이고, 박정진은 38살의 적지 않은 나이가 부담이다. 류현진을 신호탄으로 윤석민, 오승환 등 대어급 투수들이 잇달아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프로야구 FA 시장에서 특급 투수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이번 FA 신청선수들은 오는 16일(토)까지 원소속 구단과 협상 기간을 거친 뒤 여기서 계약을 맺지 못할 경우, 17일부터 23일까지는 다른 8개 구단과 계약협상 기간을 갖는다. 여기서도 팀을 찾지 못할 경우엔 24일부터 내년도 1월 15일까지 모든 구단과 교섭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명목상의 교섭 기간일 뿐 실제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구단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FA 선수가 원소속팀 외의 다른 구단들과 수차례 접촉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A 선수는 벌써 B 구단에 가기로 정해놨다더라' 'C선수가 D구단과 교섭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지난달 8일 KBO 이사회에서 모든 구단은 'FA 선수와 사전접촉할 경우 강력한 징계'를 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애초에 지키지도 않을 약속, 뭐하러들 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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