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단에 서기 전 이런 질문들을 예상했다. '기자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기자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물론 이런 질문도 예상했다. 한 현직 교사는 "연예인 누구누구 봤냐?"는 질문이 많을 거라고 얘기해줬다.
그런데 막상 교단에 섰을 때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월급을 얼마나 받나요?"
"승진은 언제 하시나요?"
"정규직이신가요? 비정규직이신가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나만 이런 질문을 받는 건 아니었나보다. 심지어 초등학교에 가도 '돈은 얼마나 버냐?'는 식의 질문이 대수롭지 않게 나온다고 한다. 세상이 팍팍한 걸까? 한 교사는 "부모들의 관심사, 걱정거리가 그대로 아이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는 뭐가 관심사였는지 떠올려봤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중요한 관심사는 '싸움 순위'였다. "3반에 미친개랑 7반에 골리앗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얘기 들었어? 5반에 드럼통이 1반 지우개를 묵사발을 냈데."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이런 얘기도 많이 했다. "소련이랑 미국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북한이 쳐들어 오면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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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강원도 철원에서 육군 포병 사격지휘병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내무반에서 정신교육을 받고 있던 중 '실제 상황'이 떨어졌다. 서해 NLL 부근에서 남북 간의 무력 충돌, 이른바 연평해전(서해교전)이 발발한 것이었다. 즉각 전투태세를 하고 사격지휘통제기 앞에 앉았다. 대대 18문의 포신에는 실탄이 장전됐고 명령만 떨어지면 계획된 북한 표적으로 포탄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진짜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 그 때의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모든 사격 준비를 마친 뒤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릴 무렵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동안 기계적으로 암기했던 작전계획을 다시 들여다봤다.
"보자. 분 당 두 발씩 20분 동안 사격을 하고 주둔지를 빠져나가 이동을 하니까. 대대 18문이 1분에 36발을 쏘면 20분 동안 720발을 쏘는군. 그런데 주변에 같은 사단 3개 대대가 더 있으니 사단에서 쏘는 포탄만 2880발, 옆에 붙어 있는 좌우 사단에 군단 포병 여단까지 더하면, 음…. 20분 동안 이 동네에서만 최소 1만5000발은 쏘겠군. 그런데 북한은 포문 수가 남한의 3배라지. 그럼 우리가 1만5000발 쏘는 동안 북한은 4만5000발을 쏠 테고, 그럼 개전과 동시에 철원 하늘에만 포탄 6만 발이 날아다니는 거야? 게다가 우리가 북한 표적 다 알고 대포병 사격을 하듯이 북한도 우리 위치 다 알고 대포병 사격 할 거 아냐."
결론은 20분 동안 사격을 하고 주둔지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포탄들이 공중에서 부딪혀 터질 정도로 하늘이 포탄으로 새카맣게 뒤덮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많은 싸움을 구경했다. 보통 먼저 우는 놈, 먼저 코피를 흘리는 놈이 패자였다. 압도적인 힘(혹은 '깡다구')의 차이로 인해 싱거운 싸움도 있었지만, 센 놈들끼리 붙으면 모두 상처가 깊었다.
요즘 어른들 사이에서 싸움 얘기가 한창이다.
"미군 빼고 북한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다른 어른들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국방부 장관, '쓰리 스타'(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의 대화다. 누가 이기냐고?
물론 전쟁이 나면 이겨야 한다. 그런데 일련의 답변들을 보면 전시작전권 회수 연기를 정당화 하기 위해 '진다'고 답했다가, 비난 여론이 이니까 '이긴다'고 수습하는데 급급해 보인다. 하지만 손자는 병법에서 최고의 장수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장수"라고 했다. 애들처럼 싸우면 '진다', '이긴다' 따지기 전에 "싸움이 나지 않게 준비하겠다"는 대답을 하는 장수가 대한민국 군에는 없단 말인가.
하늘에 뜰 수만, 수십만 발의 포탄을 생각하시라. 당신들은 이길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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