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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판의 '올드보이', 정치판의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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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판의 '올드보이', 정치판의 '올드보이'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박수'와 '야유'

요즘 들어 신문·방송에 '신(新)386'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60년대에 태어나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일컫는 '386 세대'와는 전혀 다르다. '신 386'은 30·40년대 출생하고, 8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부통령'으로까지 불리는 김기춘(74) 청와대 비서실장, 현경대(74)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홍사덕(70)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상임의장, 경기도 화성갑 보궐선거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된 서청원(70) 전 의원, 이경재(72) 방송통신위원장, 남재준(69) 국가정보원장 등이 여기 해당된다.

기존의 '386 세대'는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세대를 가리켰다. '신 386'은 정반대다. 군사정권 시절 공직이나 정치 활동을 시작해 권력의 전성기를 맛본 이들이 대부분이다. 신 386 세대는 민주화 세력의 집권과 시대적 흐름 속에 자연스레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다. 흘러간 과거의 이름들로, 그렇게 조용하게 지워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신 386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나둘씩 권력의 핵심부로 복귀해서 전성기에 버금가는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정치판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이미지는 전혀 딴판이긴 하지만, 프로야구에도 돌아온 '올드보이'들이 있다. 한동안 유니폼을 벗고 야구장을 떠나 있던 이들의 현역 선수 복귀 소식이 계속해서 들린다. 스타트를 끊은 선수는 LG 좌완투수 류택현. 지난 2010년 부상으로 잠정 은퇴했다가 2012년 다시 현역으로 복귀, 2년 연속 3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하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58경기에 출전해 3.07의 수준급 평균자책에 16홀드를 기록하며 든든한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활약 중. 올 10월에는 프로야구 최초로 투수 900경기 출장이란 대기록까지 달성했다.

▲ 2013시즌 NC에서 성공적으로 복귀한 손민한. ⓒ연합뉴스
올해 신생팀 NC 소속으로 재기에 성공한 손민한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롯데 에이스로 활약한 손민한은 지난 2009년(6승 5패 평균자책 5.19)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모습을 감췄다.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선수협 사태까지 겹쳐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해 보였던 상황. 그러나 꾸준한 개인 훈련으로 몸을 만든 뒤 올 시즌 NC 선수단에 합류, 환상적인 제구력과 게임 운영 능력을 앞세워 마운드의 대들보로 자리를 잡았다. 시즌 성적은 5승 6패 9세이브 3홀드에 3.43의 평균자책점. 팀이 필요할 때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구멍을 메운 것은 물론, 어린 후배들을 독려하고 경험을 전수하며 투수진의 리더 역할까지 수행했다.

한동안 야구계에서 잊힌 선수였던 류택현과 손민한은, 지금은 LG와 NC 마운드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그 외에도 과거 두산 에이스였던 박명환이 NC 유니폼을 입고 내년 시즌 부활을 노리는 중이고, 은퇴 후 코치로 활동하던 넥센 김수경도 고양 원더스에서 현역으로 새출발을 알렸다. 최근에는 2001년 투수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인 신윤호(전 LG)가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신윤호는 지난 2008년 SK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지만, 최근 사회인 야구에서 140km/h가 넘는 빠른 볼을 던지며 가능성을 보였다.

흘러간 스타들이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최근의 분위기는 야구선수의 수명이 갈수록 길어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한 야구인은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30대 초반이면 노장 축에 들었다. 지금은 성실하고 몸 관리만 잘 하면 얼마든지 40세 넘어서도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의료기술과 트레이닝의 발달로 이제 어지간한 부상으로는 선수생명이 위협받는 일은 드물다. 박명환과 신윤호가 다시 140km/h 빠른 볼을 뿌리는 일은, 과거 기준으로는 '기적'에 가깝다.

여기에 류현진 등 스타 선수들의 해외 진출, NC와 KT 등 신생구단 창단이 가져온 '선수 품귀 현상'도 야구계가 은퇴한 선수들을 다시 찾게 만드는 이유다. 시대적 요구가 올드보이들을 야구장으로 다시 호출한 셈이다. 게다가 이들이 보여주는 야구에 대한 열정과 '경륜'은 야구계를 위한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부상으로 오랜 기간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다시 현역 생활을 하고 싶을까 싶지만, 노장들은 다시 그 고통스런 길을 선택했다.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손민한은 선발-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출격했고, 김수경 전 넥센 코치는 소속팀에서 재기할 기회를 마다하고 굳이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행을 택했다. 옛 영광을 뒤로 하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이다. 야구계 노장들의 귀환이 팬들의 박수를 받는 이유다.

그러면 정치권의 올드보이들은? 야구 노장들의 복귀가 시대적 요구에 충실한 결과라면, 정치 노장들의 복귀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는 점에서 정반대다. 근래 사방팔방에서 당당하게 울려퍼지는 독재와 쿠데타 찬양 발언, 국정원과 군의 대선 개입 사태, 검찰 장악 시도 등은 달력에 표시된 '2013년'을 의심케 한다. 열정보다는 권력욕이, 백의종군보다는 최정점에서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더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지금 '신 386'이란 말을 MB 시절 '강부자·고소영'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시대를 역행한 올드보이들의 복귀가 관중(국민)들의 박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5년 뒤에 야유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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