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개혁 안하고 앉아서 선진국 되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최대한 합의하고 합의 안 되면 밀고라도 간다. 시끄러운 것은 감수하고 가야 한다"고 '마이웨이'를 걸을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언론의 평가는 애당초 기대한 바 없으니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다"며 "국민들의 평가는 잘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작년에 완전히 포기해 버려 2007년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 한편 자신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법제실적 보고서 받으니 안도감 생겼다"
노 대통령은 3일 임채정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한명숙 총리 등 3부 요인과 열린우리당 김근태 당의장, 민주당 장상 대표,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국민중심당 신국환 대표, 정부 부처 차관급 이상 인사 등 각계 요인 240여 명이 참석한 신년인사회에서 10여 분으로 예정된 발언 시간을 훌쩍 넘겨 약 40분 가까이 지난 4년의 소회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의 계획을 소상히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언론의 평가는 물론 국민들의 평가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면서도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은 제 스스로의 자긍심, 제가 봐서 그게 아니다 싶으면 제가 어디 의지하고 버티고 서 있을 것인가, 이런 불안이 있었던 게 사실인데 오늘 그 불안을 '법제실적보고'가 씻어줬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보고된 법제실적보고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정부 입법실적은 임기가 지날수록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이전 민주정부에서는 (법제실적이) 하강곡선이었는데 참여정부만은 상승곡선이었다"며 "잘 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가슴에 돌덩어리처럼 막혀 있던 것이 그 보고 받고 점심 먹고 나니 쑥 내려간 것 같고, 지금은 시원한 편이라 마음이 막힌 데가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보고서 하나로 답답한 마음이 뚫렸다고 말했지만 외부의 평가는 물론 자신의 자긍심마저 흔들려 '무슨 힘으로 버티고 있을 것인가'라는 불안이 있었다고 각계 요인들 앞에서 고백하다시피 한 것.
"부동산, 환율 다 해결될 것"
이같은 심경 토로 이후 노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미래에 대한 계획과 낙관적 전망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가 걱정이지만 그 시행착오는 바로잡을 수 있다"며 "부동산 파동으로 인한 금융 부분에 다소 불안한 기미가 없지 않지만 이대로만 관리하면 큰 사고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에 심각해진 환율 문제에 대해서도 "제일 좋은 방법은 국가의 경제 능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환율이 금방 떨어지는 것인데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특유의 역설적 수사를 통해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올해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서 환율 문제가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한국이 잘 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7대 전략'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혁신주도형 경제전략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의 함께 가는 경제 △개방 △사회투자 △신뢰와 원칙이라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 △ 정부혁신 △평화중심의 안보전략 등을 이에 포함시켰다.
"민생문제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대부분의 현안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의지를 표출했지만 민생, 양극화 문제에 대해선 고심의 일단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봐서 결코 나쁘지 않은 경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큰 소리를 좀 했지만 걱정이 없냐? 그렇지 않다. 민생이 어렵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민생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며 "세계화, 정보화 현상으로부터 나타나는 세계적 양극화의 흐름"이라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양극화가 IMF외환위기 때부터 빠른 속도로 갑자기 와버렸다고 설명하며 "2003년 이후 조금 나아지는 착시현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이 현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어느 정권이 일시적으로 대응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장기적으로 국민적 합의 위에서 도전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라며 비전2030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합의가 미래를 결정" VS "합의 안 되면 밀고라도 가야"
양극화 문제를 실질적 위기 요인으로 짚은 노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부닥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국민적 합의와 용기가 2030년까지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해관계가 달라서 갈등이 있을 때 합의 안 되면 밀고라도 가야 한다. 참여정부뿐 아니라 어떤 정부라도 시끄러운 것을 감수하고 가야 한다"는 다소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이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거시적 국가전략에는 합의가 필수적이지만 실질적 개별 정책수행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저는 1년 안 되는 시간만 여대 국회를 가졌지, 나머지 전 기간 여소야대 국회라는 소위 정치적 맞바람을 안았고, 나름의 역사적 관점이 있어서 자초한 언론환경에서 4년간 걸어 왔는데 남은 1년 무슨 장애가 있으랴는 것이 제 심정"이라며 "제가 가진 합법적 권력을 마지막까지 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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