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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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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94>

천관우(千寬宇) 선생

불광동 천관우(千寬宇) 선생댁에서다.
아다시피 천선생님은 당시 '동아일보' 이사였다.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자칭 우익이었다.

"나 우익이오."
가끔 그러셨다. 그리고는 술 한잔 드시면 나더러 가로되,

"김형, 아무리 봐도 좌익 같아. 그러나 다시 보면 또 도무지 좌익 할 사람이 아니야! 김형은 아마 좌우익을 합쳐 놓으려 하는가 보지?"

나는 그저 빙긋 웃고 만다. 좌익이라서도 좌우익 합친 것이어서도 아니다. 다만 그저 그러는 천선생님이 그냥 좋아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막연하지만 나의 구하고 찾는 바 목표이자 이정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잡탕 비빔밥만은 결코 되고 싶지 않았으니 천선생님의 임나설(任那說), 고조선사(古朝鮮史)에 관한 몇몇 관견(管見)들은 선생님 스스로 호칭하는 '우익'이 단순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만을 뜻하는 게 아니고 이제부터 우리가 싹틔워 가야 할 새 역사, 새 이념의 전망에 걸맞은 다른 사상, 다른 이념의 명칭을 발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서다.

<사진>

천선생님 스스로 가끔은 말씀 도중에

"이런 견해는 사회주의쪽 사람들만이 주장할 수 있는 탁견이오. 완벽한 과학과 역사를 원한다면 사회주의 역사학과 사회학도 해둬야겠지요."

이것은 알려진 사실일까? 아니면 나만 아는 사실일까? 하기야 내가 천선생님과 함께 동지로서 행동하게 된 것은 '오적' 때 감옥에서 나온 직후 뜨거운 한여름 대낮에 동아일보사 뒤에 있는 한 대폿집에서 너털웃음을 안주로 소주로만 소주로만 배불려 대취한 이후부터다.

나는 천선생님을 모시고 1971년 대통령선거 때에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전국청년학생선거참관인단을 조직하여 투개표 과정을 감시하기도 했는데, 투표일 직전에 선생님과 이병린(李炳璘) 변호사를 모시고 전주와 광주 강연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무렵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두 가지다.
하나는 전주의 한 비빔밥집에서 천선생님이 한꺼번에 세 그릇을 드시는 걸 보고 몹시 못마땅해하는 이변호사님의 표정이 참으로 우스웠던 것과 또 하나는 그날 밤 여관방을 두 개만 얻었는데 이변호사님이 천선생은 코를 심하게 고니 자기방에 와서 자라고 하시는데도 천선생님과 함께 자다 벼락 아닌 벼락을 맞아 새벽까지 말똥말똥 혼났던 일이다.

그 천관우 선생댁에서다.
정수일(鄭秀一) 형과 나는 선생님 서재 옆방에서 커다란 플래카드를 쓰고 있었다.
'유신헌법 철폐하라!'

그 이튿날 오전 종로 YMCA 1층 찻집에서 함석헌·김재준(金在俊)·지학순(池學淳)·법정(法頂)·이호철(李浩哲)·김순경(金純卿)·정수일, 김지하가 모여 내외신 앞에서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밖에서 장준하(張俊河) 선생이 왔다고 알려왔다. 천선생은 빨리 치우라고 했다.
정형이 플래카드와 페인트통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 아예 방문을 닫아 걸어 버렸다. 장선생이 들어왔다. 맞이하는 천선생의 심기가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

장선생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장선생은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백만인서명운동'건을 말씀했고 천선생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내가 나설 계제는 아니었다. 플래카드는 이미 다 썼으니 되었고, 나는 일어서는 일만 남았다.

두 분께 절을 하고 선생댁을 나서니 깊어가는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만 처량했다.
"새로운 사상, 새로운 철학."

사람들을 새 차원에서 묶을 수 있는 참으로 탁월한 사상, 탁월한 사상! 중얼거리며 중얼거리며 나는 돌아왔다. 임신중의 아기 때문에 아내가 돌아와 있던 정릉 처가로 밤늦게 돌아왔다.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니 잠은 오지 않고 두 거인 사이의 그 불편해하는 표정들만 상기되어 나까지 따라서 불편해졌다.

"새 차원에서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 아니 묶는다기보다 연결시킬 수 있는 새롭고 탁월한 사상과 철학!"

그렇다.
그것만이 해결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득히 멀고 먼 세계였다. 내겐 그것을 안출해낼 능력도 학문도 없었던 것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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