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을 읽으면서도 상당히 답답했다. <도덕경>을 읽다보면 마키아벨리다운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렇지만 누군가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덕경>은 일종의 통치술이라고 말이다. 더욱이 <도덕경>을 읽고 <장자>를 읽으면 이들이 왜 한통속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도나도 노장을 한 묶음으로 말해왔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노장을 말하던 시절의 강신주 책에서 어느 정도 해갈이 되었지만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 없어 답답했다. 그런데 드디어 나왔다, 새로운 시각으로 노장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 김시천의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책세상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한문 세대가 아닌 마당에 교양인이 동양고전을 읽는 방법은 고전을 완역하고 해설한 책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여러 번역본을 검토하며 읽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거기에다 골라 읽는 책은 유명한 이의 책이거나 상대적으로 쉽고 잘 읽힌다고 정평이 난 책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해설한 사람의 관점으로 노장을 읽게 되고, 그 정도 수준에서 이해가 멈추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노장을 읽으며 들은 여러 의문에 명쾌한 답을 던져주는 책을 읽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김시천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
이 관점에 서면 그동안 가려졌던 <노자>의 진면목을 직시하게 된다. "<노자>에는 모든 개인들에게 소용되는 삶의 지혜, 혹은 문명과 규범의 역기능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패권을 다투었던 성인, 군주, 사와 같은 통치계급을 위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된다.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내가 얼마나 무식했는지도 깨달았다. 그가 인용한 책들을 보면 이런 논의는 상당히 오래되었고 다양한 수준에서 펼쳐졌다.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는 하상공의 해석이 이런 흐름의 '벼리'였고, 서양학자들의 논의도 상당히 융숭 깊었다. 하상공과 짝패로 나오는 왕필은 자주 들었지만 하상공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던지라 서점에서 찾아보았더니 번역본이 이미 나와 있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더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생각이 다시 드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하상공장구>가 도를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그러한 다양성의 통합을 실현하는 군주의 지침이자 방법"으로 보았다는 말은 수긍하게 되었지만, 그의 해석이 어찌 "한의학과 같은 기담론, 도교의 신선술이나 내단 사상을 이야기하는 보다 풍부한 해석"으로 뻗어갔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더 공부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책은 논문 모음의 성격이 강하다. 김시천의 글재주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든다. 그런데 '조선 사회의 <노자>와 지식인'은 그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느낌이다. 짧은 논문이지만 장르를 바꿔 길게 쓰면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버금가는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싶을 정도다.
▲ <순언>(이이 지음, 조기영 옮김, 지만지 펴냄). ⓒ지만지 |
2부는 장자를 집중해서 논의하고 있다.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장자> 전권을 읽고 내편만 다룬 책도 읽었건만, "당대의 한유 이래 장자가 공문 계열이라는 주장이 상존해왔다"는 사실은 잘 몰랐다. 이것저것 읽어치우는 데 급급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한 한계를 절감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장자>의 체제는 진나라의 곽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그런데 잘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장자에는 공자를 풍자하고 희롱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공자를 비판한 책으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 <장자>(장자 지음, 오강남 엮고 풀이, 현암사 펴냄). ⓒ현암사 |
장자 해석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유(遊) 개념에 대한 설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한 낱말의 쓰임새와 빈도수를 정리해서 개념을 정리하는 방식을 종종 선보인다. 유라는 개념도 <논어> <맹자> <장자>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빈도수는 얼마인지 밝혀 정확한 뜻을 새긴다(같은 방법으로 ' 무위' 개념을 설명한 대목은 3부에 있다). 이 방법을 통해 지은이는 일반인의 장자에 대한 통념을 깨버린다. "<장자>가 제안하는 초월은, 많은 곳에서 사회적 영역의 초월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의 초월"이고 "정치로부터 벗어남, 책임의식과 정치적 욕망을 버림"을 말하며 "일정하게 떠난 삶, 세속적 삶에서 거리를 둔 삶을 의미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삶에 매이지 않고 거리를 둠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것"을 뜻한다.
3부에서 지은이는 노장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맞선다. 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장자가 기계문명을 거부했다는 견해를 논파한다. 그리고 책의 결론으로 노장을 "보편적 진리 탐구의 정신으로 정의되는 철학으로 이해"하는 도가나 도교라는 말을 버리고 "양생과 달생의 차원을 열어나고자 했던" 도술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이 대목은 상당히 논쟁적인지라 학술 차원의 반론이 기대된다.
그런데, 아직 기다리는 책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고 통념을 박살내는 책을 읽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하나, 교양인들에게 이런 유의 책을 읽으며 노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쳇말로 책임지라는 것이다. 나는 김시천이 이 책에서 말한 독특한 관점으로 <노자>와 <장자>를 완역하고 해설한 책을 펴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릇 모든 고전은 천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김시천이 보는 노자와 장자의 파격적인 면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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