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래 기사는 2014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코너 '취미는 독서'입니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김용언, 성현석, 안은별 기자와 함께 천문학자 이명현,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정승일, CBS 정혜윤 PD, 자유기고가 노정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의 최근 독서 목록'을 공개합니다. |
▲ <다시 한 번 리플레이>(켄 그림우드 지음, 공보경 옮김, 노블마인 펴냄). ⓒ노블마인 |
이명현(천문학자) : <빛의 공학>(석현정·최철희·박용근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좋다. 그냥 교과서려니 했는데 살펴보니 보석이다. 빛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로 적격이다.
<남자를 위하여>(김형경 지음, 창비 펴냄)는 별로다. 시시하다. 작가가 이왕 시작한 마음 공부를 정신분석학에만 가둬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화심리학을 향해 점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
"나는 공룡만큼 매력이 넘치고 존속한 기간이 공룡보다 두 배나 더 긴 삼엽충에게 그에 걸맞는 영광을 부여하고 싶다."(36쪽)
"삼엽충은 무려 3억 년 동안, 거의 고생대 내내 존속했다. 늦깎이로 등장한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들에게 '원시적'이나 '성공하지 못한'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인류가 산 기간은 들이 산 기간의 0.5%에 불과한데."(38쪽)
- <삼엽충>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오래 산 걸로만 쳐서가 아니라 삼엽충은 정말 매력적이다. 마디마다 아가미가 달려있는 부속지로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내 갈비뼈마다 그런 게 하나씩 나왔으면….
버지스 셰일 동물들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커다란 집게 입을 가진 아노말로카리스였어요. 다 자라면 크기가 1미터나 되어서 그 당시로는 당할 동물이 없었지요. 이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써야만 해요. 빨리 헤엄치거나,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거나, 아노말로카리스보다 커지거나(…).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지구이야기> (이지유 지음, 창비 펴냄, 72쪽)
캄브리아기 시절엔 산소도 부족해서 살기 힘들었다는데, 작은 놈들은 어쩔겨, 항상 크고 센 놈들이 문제야….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TV에서 보신각 종소리를 듣고 자리에 누워 전날(작년) 회사에서 들고 온 만화책 <거인의 역사>(맷 킨트 지음, 소민영 옮김, 세미콜론 펴냄)를 완독, 올해의 첫 책이 됐다. 약 1940년생으로 보이는 어느 미국 남자와 그 엄마와 아내, 딸 3대에 걸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덟 살부터 이상을 보이기 시작해 미국,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자로 성장해 간다. 어떤 이야기일 것 같은가? 어떤 이야기도 될 수 있지만, 슬픈 얘기였다. 그는 너무 컸고, 누군가가 크다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큰 일이었다.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보유한 장서의 수가 엄청난 편집자의 집에 놀러갔다가 나도 모르게 꽥 소리 질렀다. 어린 시절 그토록 읽고 싶었던 버트리스 스몰의 <아도라>(최인석 옮김, 모음사 펴냄)가 내 눈 앞에 있었다. 1985년 출간된 <아도라>의 광고 카피는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연인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당신의 입에서 복숭아 향기가…' 자수정빛 눈동자와 빨간 입술의 여자!" 냉큼 이 책을 빌려왔다. 쇠락해가는 비잔틴 제국의 공주 테아도라는 13살 나이에 술탄 오르칸의 세 번째 부인이 되지만 술탄의 아들 뮤라드를 비롯, 메셈브리아의 영주 알렉산더와 차례차례 사랑에 빠지며 육욕의 하렘을 벗어나 지중해 인근을 호령하는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 버트리스 스몰의 매우 자극적인 성인용 할리퀸 로맨스는 지금 봐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하렘과 불의 노래'의 뼈대를 갖추고 있다. 차성진의 만화 <비운의 공녀 아도라>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노정태(자유기고가) : 나는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고 집착하는 이른바 '워커홀릭'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 '시간 관리하는 법' 따위에는 사회 평균에 가까운 관심이 있다. 바바라 골드스미스의 <Obsessive Genius: The Inner World of Marie Curie>(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1)를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어떤 영어권 포럼에서 '꾸준히 기록을 하고 관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주제가 떠올랐는데, 누군가가 바로 이 책을 예시로 들었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아마존에 접속해봤더니 킨들 버전이 있어서 바로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제목만 봐서는, 또 처음 소개받은 맥락으로는,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인 퀴리 부인, 결혼 전 이름은 마리아 스쿼도프스카였던 그 여성에 대한, 심도 있으면서도 담담한 전기문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저자 바바라 골드스미스는 과학자, 여성, 일하는 어머니,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소수자 등, 같은 입장에 처해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감의 시선을, 일말의 울분이나 억울한 기색 없이, 그저 '과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책을 절반 가량 읽은 지금도 퀴리 부인의 노트 관리법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불만은 없다. 다만 과학 용어들이 낯설어서 독서에 방해가 되므로, 과학책을 잘 옮기는 번역자에 의해 한국어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뤽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
정승일(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 <레비와 프티의 바이블 스토리 : 있는 그대로 성경을 읽다, 구약 신약 합본>(장 피에르 레비 지음, 장 피에르 프티 그림, 전경훈 옮김, 투비북스 펴냄)을 읽어보면 왜 성경이 중세까지 금서(禁書)로 지정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살인과 인종말살, 전쟁과 강간, 자기 부인의 성(性)을 손님에게 접대하는 풍습 등 고대 세계의 기괴한 모습들이 '있는 그대로의 구약성서'로서 묘사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 성서는 가히 혁명적인 전환이었다. 그런데 로마 시민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로마 제국에 전파한 바오로는, 예수를 다시 구태의연한 구약성서의 전통과 결합시켜 버렸다. 비기독교인이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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