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역사를 배운다는 건 뭘까.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웠던 역사는 지루했다. 고조선부터 조선,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는 '국사'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머나먼 고릿적 얘기거나 혹은 식민지 간접 체험이라는 불쾌하고 부끄러운 콤플렉스였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영문학이라는 전공에 필요한 서구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와 이론을 훑느라 바빴다. 내 관심사는 과거-이곳이나 현재-이곳이 아니라 과거-이곳이 아닌 저곳, 현재-이곳이 아닌 저곳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건 꽤 한참 후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 내가 기억하는 1990년대 중반의 경쾌하고 풍요로운 분위기와, 1997년 말 IMF 이후의 처참한 분위기와, 2000년대에 갑자기 더 치열하게 부활한 듯한 (적어도 내 눈에는) 양극화와 지역감정의 대립 이 모든 것이 불과 10년 사이에 한꺼번에 밀어닥쳤음을 깨달았다.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모순이 뒤엉킨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나는 그 관점과 태도조차 결정하기 어려웠다.
▲ <1960년을 묻다>(권보드래·천정환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천년의상상 |
일제시대, 한국전쟁, 5공 독재의 시기(거기엔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어떤 '신화'까지 꼭 들어간다)에 대해선 우린 너무 자주 접했다. 그러나 1960년대라는 이 낯선 시기는 대체 뭘까? 문학평론가 고 김현이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고 말했던, 혹은 권보드래와 천정환이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이며 지금의 한국이 그 시대를 통한 "재구조화의 결과이거나 그 잔여물"이라고까지 칭했던 1960년대는, 한국전쟁의 50년대와 유신의 70년대 사이에 낀 그 시대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까지 한다.
이승만 하야 및 박정희 등극으로만 기억되는 1960년대의 풍경은 이 책에서 다채로운 사례들과 함께 때로는 전향한(정확하게는 전향을 강요받으며 '발명'된) 간첩으로, 실존주의의 유행에 취해 성적으로 개방적이고자 했던 '아프레 걸'의 모습으로, <엔카운터> 잡지를 통해 세계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그렇게 스스로를 상상했던) <사상계> 필진들의 모습으로, 4.19 혁명 당시 거리를 가득 메웠던 어린 학생들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저자들은 이 '주체'들을 두고 "오래된 민족주의와 '근대화' 이데올로기 그리고 급격하게 부상한 경제제일주의의 자장 속에서 '자기'와 사회를 새롭게 연결 짓기 시작했다"라고 단언했다. 우리가 아는 '강력한' 국가-아버지, 그에 순응과 저항을 동시에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자식이 1960년대에 탄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되풀이 주장하는 질문은 60년대의 산물들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혹시 '5.16이 돼버린 4.19'의 주박(呪搏)에서 시작된 건 아닌가 하는 지점이다. <1960년을 묻다>의 첫 번째 챕터는 4.19혁명에서 시작한다.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이라는 두 번의 연속된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했고, 미국의 '전후 원조'라는 관용에 기대어 근대화를 시작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분노하여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자애롭지만 무능력한' 대통령 이승만의 하야라는, 애초에는 가능하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사람들은 그날의 흥분을 얼마든지 과대평가해보는 것처럼 유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박태순, <무너진 극장> 중에서. <1960년을 묻다>에서 재인용)
▲ 4.19혁명의 풍경을 찍은 <사상계> 1960년 6월호 권두화보. ⓒ천년의상상 |
4.19혁명의 어린 주역들을 아마도 마뜩찮게 바라보았을, 5.16쿠데타의 효율적인 군인들이 시작한 '선의의 독재'가 어쩌면 당시 많은 이들이 내심 기다려왔던 질서와 발전의 열망과 맞물렸던 건 아닌가, 그리하여 "'5.16이 4.19의 배반'이라는 인식이 공론화된 것은 1966년 이후"에야 가능해졌다.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저자들은 여기서 "우리 현실이 완전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기대하기 어려우니만큼 차라리 전체주의 국가라도 세워 숏·카트하자"던 이 조급한 시대에 대한 회한을 숨기지 못한다.
"4.19 한복판에서 "이러다 우리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모두들 빠방 쏴버려야 돼"(<무너진 극장>)라고 탄식한 군인의 초상이 보여주는 대로, 5.16은 4.19 자체를 믿지 않았다. (…) 4.19는 시작하기 전에 이미 배반당하고 있었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데, 다른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 그토록 인색했던 것이다. (…) 속전속결, 가난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빨리 벗어던지려는 초조는 결국 쿠데타를 예기하고 묵인케 했다. 이것이 4.19혁명 중 5.16쿠데타에 의해 회수된 몫이다."
물론 회한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저자들은 4.19-순수한 혁명, 5.16-나쁜 군인들의 쿠데타라는 이분법으로 '사후' 평가에 따라 절단면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계속 거부한다. 오히려 우리가 한국의 '근대화'와 '세계화'가 시작된 이 모순적인 기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거기서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혹시 4.19혁명이 그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아주 잠깐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근대화의 급류 속에 침몰해버렸던 중립국의 꿈이 현실화될 수도 있었을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점검도 등장한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때의 가능성들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우리가 결코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다시 한번, 저자들은 성취하지 못한 가능태들에 대한 미련에만 매달려있지 않았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 그러니까 5.16쿠데타가 발발했고 군인 박정희가 대통령 박정희가 된 이후를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훑는다. '자유'에 대한 관심사가 아주 빠른 시간 동안 '발전'으로 바뀌어가고, "당시 한국 지식인들에게 바닥까지 처박히는 듯한 열등감을 생산하는 한편, 끝없는 자기갱신과 '발전'을 갈구하도록 만드는 조울증적 심리의 엔진"으로 기능했던 '후진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분단 체제의 '심리적 현실'"의 과장된 거울로서 북한을 끊임없이 신문‧방송‧영화를 통해 호출하면서 기괴한 푸닥거리 퍼포먼스를 할 수밖에 없던 시절, "'자유 진영(free world)'의 질서 너머로 시각을 확장할 수 없었던 한 시절", 그리고 "한국인의 지배적 '심상지리'도 '동북아시아-대동아'의 축선에서 '한반도-태평양'의 횡선으로 이동"했던 시절을 말이다.
거기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김종필, 이후락 등의 정치인들뿐 아니라 김승옥과 박태순, 이청준과 방영웅, 김현과 임석진, 김질락, 이수근, 최인훈과 이어령, 전혜린과 그의 부친 전봉덕, 미우라 아야코 등이 불려나온다. 이들은 결코 잊힌 유령이 아니다. 이들의 자장은 여전히 한국정치와 한국문학과 한국의 대중문화 곳곳에 미친다. 권보드래와 천정환이 4.19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두고 "식민 말기에 태어나 해방기 및 한국전쟁기에 소년 시절을 보낸 '침묵하는 세대(silent generation)'가 자기증명에 성공한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 그들은 다시는 침묵으로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던 표현이 이들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해도 크게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기원, 우리의 망탈리테를 들여다본다는 게 가능한가. 다시 한 번 서두와 똑같은 질문을 하자면,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1960년대의 분열적 풍경이 여전히 2013년에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 앞에 몇 가지 선택지가 나타난다. 1962년 박정희가 <우리 민족의 나갈 길>에서 '인간 개조의 민족적 과제'를 역설했듯, 1964년 좌파 잡지 <청맥>의 필진들이 "한국인의 비루하고 괴팍한 '민족성'"과 "이상기질"을 병리적 증상으로 꼽았듯, 그 패배적이고 희생자적인 심약한 신경증적 민족주의를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잠긴다면 "우린 어떻게 해도 안 된다"고 체념하고 말 것인가, 또는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라는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인가.
결국 우리의 새로운 과거, 또한 우리의 낡은 미래를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현재를 과거에 비춰보면서 지금의 잘못된 기원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한 가지 버전이 아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오이디푸스는 역병을 일으킨 죄인을 찾다가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진실을 알고자 했던 오이디푸스는 '범인은 바로 너'라는 손가락질 앞에 결국 그는 스스로 눈을 찌른다. 하지만 소포클레스의 또 다른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의 오이디푸스라는 선택지가 있다. 그는 눈을 찔러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가 되는 대신, 신의 가혹한 운명 놀음 앞에서 자신의 정당함과 존엄성을 주장했다.
▲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김원 지음, 현실연구 펴냄). ⓒ현실연구 |
ps.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1960년을 묻다>가 2013년 초가 아니라 2012년 12월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 전문지들에서도 '올해의 영화'를 꼽을 때 그 이전 해의 12월 초부터 기간을 소급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애써 변명해보고 싶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출간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사과드려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ps. 1960년대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증언을 들려줄 수 있을 만한 인물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다. 현재 87살인 그는 지난 12월 10일 발족한 '운정회'에 참석하여 "회고록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제발 그 결심이 바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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