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고 건 총리 측의 난타전이 격화되고 있다. 양 측은 서로 '우리도 할 말이 많았지만 비판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저 쪽이 먼저 공격해서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상대방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애초 설명과 달리 고 전 총리의 역량과 정책성과를 평가절하하며 '위원회 총리'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이 공방의 최종적 수혜자는 누가 될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지금으로선 청와대에 불리할 게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행 등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지만 사실 그런 비판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권주자가 대통령에 대해 먼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지만, 대통령이 범여권의 대권주자에게 먼저 차별화를 시도하는 초유의 사태에는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점점 수위 높아지는 공방전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21일 발언("고 건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에 대해 고 전 총리 측이 바로 다음 날 "자가당착이자 자기부정"이라고 반격을 가하자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즉각 "고 전 총리의 인품이나 역량, 정책성과에 대해 평가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휴일인 23일에 이례적으로 참모들을 소집해 "(고 전 총리가 나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맞받아치면서 공방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
노 대통령이 직접 직공에 나선 이후 청와대 일부 참모는 24일 "고건 총리 재임 시절 회의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 위원회 총리였다"며 "노 대통령이 고건 씨를 초대 총리로 발탁한 것은 이념적, 정치적 대립을 해소하는 중재자 구실을 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그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역량과 정책성과'를 평가했다.
또한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공식 대응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홍보수석실은 23일에는 '노 대통령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고 고 전 총리 측의 대응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청와대브리핑에 게재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 측이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하자 "고 전총리가 그렇게 신속하고 명백하게 무슨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이전에 본 일이 없다"면서 그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우유부단함을 꼬집으며 "'국민'이라는 말을 너무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평가한 적 없다"면서 "위원회 총리 아니냐"
이같은 공방에 대해 청와대는 일단 '고 전 총리 측의 정치적 의도를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21일 발언은 국정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을 뿐 고 전 총리에 대한 평가가 아닌데 고 전 총리측이 '오버'했다는 것.
하지만 대통령 본인은 애매하게 발언했지만, 그 발언이 나온 당일 청와대 관계자가 "고 전 총리가 탄핵기간에도 잘 하긴 뭘 잘했냐"라고 말한 점, 24일 또 다른 관계자가 "고 전 총리는 위원회 총리에 불과했다"며 '총리로서의 고 건'에 대해 평가절하 한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간계산의 저울추는 청와대 쪽으로
청와대와 고 전 총리 측의 공방이 벌어진 후 일부 親고건 통합신당파가 '선도 탈당론'을 제기하고 있고 고 전 총리 측도 "차별화를 하고 싶어도 도의상 자제하고 있었는데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라며 오히려 반기는 듯한 인상이지만 손익계산은 좀 더 복잡해 보인다.
'고 건이 과연 우리와 정체성이 맞는 사람이냐'는 노 대통령의 핵심적 질문에 통합신당파의 의견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는 것. 일부 친 고건 세력들이 전당대회 이전 탈당 등을 감행하며 먼저 움직인다면 이는 통합신당파의 분화를 가시화 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선도탈당 등으로 인해 범여권 내에서 고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로 설 경우,통합신당파 내의 재야파는 물론이고 전북이라는 동일한 지역기반 때문에 결국 고건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정동영계가 합류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일각에선 YS 정권 말기 이회창 씨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여당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던 사실을 떠올리며 "고 전 총리에게는 이번이 기회"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그 때와 달리, 현 상황은 노 대통령이 먼저 고 전 총리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청와대 입장으로서는 '불리할 게 없다'는 계산이 이미 섰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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