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35년 동안 중국의 고도성장은 사회적 격차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시켰고, 정치적 부패와 공고한 기득권의 철옹성을 구축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해왔다. 따라서 이 과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몰려 있고 그 방향을 '심화 개혁(deep reform)', 새로운 중국 모델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에 따라 "미국화=서구화=근대화"라는 신화가 깨지면서 중국 모델이 새로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 정부도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대안 담론을 쏟아내었다. 국제 관계의 민주화, 신형 대국 관계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했으며 급기야는 실체가 모호한 '중국몽'으로 옮겨 붙었다.
물론 개혁 개방 이후 지속적인 중국의 경제 발전은 더 이상 '기적'으로 보기 어렵다. 당연히 기적의 근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중국 모델이 새롭게 주목받았던 것은 미국의 위기에 기인한 것이지, 그 자체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중국 모델을 둘러싸고 지금도 유무(有無)에서부터 지속 가능성, 보편성, 규범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문제를 깊이 천착해 온 홍콩과학기술대학의 딩쉐량(丁學良) 교수는 "중국은 레닌주의적 국가, 사실상 정부에 의해 효과적으로 지배되는 시장, 국방비를 능가하는 사회 치안 시스템"이 중국 모델의 축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처럼 정부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미치는 시장에서는 특권과 부패 그리고 지대 추구 행위(rent seeking)가 만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중(大衆) 경제 시장을 통해 행위자를 늘리고 진입 장벽을 해소할 때, 고질적 병폐가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더 큰 시장과 시장의 기능 확대'가 중국 모델 혁신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시진핑 체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개혁이 심수구(深水區)에 진입했다고 생각하면서 시장을 강화해 통해 특권과 부패의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권력과 유착된 경제력을 분산시키고, 부문(部門) 이기주의와 관료주의를 혁파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이점이 시진핑 체제가 기득권과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의 하나이다.
우선 부패와의 전쟁, 1950년 3반5반(三反五反) 운동과 같은 정풍 운동, 사상 운동과 군중 노선의 강화를 천명하면서 출발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고량주인 마오타이주 가격이 사스(SARS) 발생 시기만큼 내려갔다는 평가처럼 공무원을 중심으로 일부 새로운 기풍이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3대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간단치 않다.
즉, 부패한 관리를 중심으로 한 특권 귀족(權貴) 세력, 독점 기업을 중심으로 한 독점 이익 집단, 부동산과 자원업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자원 이익 집단 들이 그들이다. 이들 상당수는 지방 정부와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일종의 '성역'이 고수하고자 한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이라는 조롱 섞인 시각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진핑 체제가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은 특권 세력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도 있다. 심지어 정치국 상무위원과 같은 고위 관료는 처벌하지 않는 관례(刑不上常委)도 깰 수 있다는 결기를 내보인 셈이다. 이러한 심화 개혁은 18기 3중전회가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역대 3중전회는 역사의 분수령이었고 이번 회의도 10년 시진핑 체제의 집권 기간에서 보면 전환기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거시적인 방향은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383개혁플랜>과 같이 시장 체제의 완비, 정부 기능의 전환, 기업 체제의 혁신이 관건이다. 구체적으로는 호적 제도 개혁, 소득 분배 개혁, 주택 제도 개혁, 공공 서비스 균등화 등 필요했지만 그 동안 손을 대지 못하던 영역들이다.
우선 비교적 내부의 저항이 적었던 도시화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이것은 차이나 3.0 시대의 '소비'와 필요충분 관계에 있다. 소비 문제는 소득 재분배, 정치 안정, 지역 균형, 성장 잠재력 확충 등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 격차를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출구를 도시화에서 찾았다. 현재 51%의 도시화율을 2020년까지 60%로 끌어올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여기에는 천문학적 자본과 다양한 정책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길은 멀고 어깨는 무겁다. 무엇보다 차이나 3.0 시대의 새로운 중국식 발전 모델은 밑으로부터의 참여의 요구에 반응해야 한다. 중국이 '선거는 민주적인가, 다수결만이 민주적인가' 등 서구 민주주의의 한계를 물을 수는 있지만, 오늘날 중국의 당 국가 체제가 최소 민주주의라는 절차적 정당성과 참여, 경쟁, 자유와 같은 요소를 가지고 확대하고 있는가에 대답해야 한다. 즉, 업적에 의한 정당화(performance legitimacy)의 정치적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서 차이나 3.0 시대에 부응하는 민주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중국 당정이 지적한 대로 정부도 8대 개혁 대상의 하나이다. 이처럼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아이러니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과의 타협과 협상을 통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넘어 덩샤오핑식의 과감한 개혁, 남순강화(南巡講話)와 같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think the unthinkable)'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시진핑 체제는 몇 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집권 초기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이 적기이다. 또 하나는 당·정·군의 권력을 후진타오로부터 모두 물려받으면서 강력한 권한 속에서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개혁에 대한 기대감과 대중과 소통하는 정책으로 중국 국민들의 기지 기반도 상당히 공고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득권과의 투쟁에서 타협을 통해 정치 안정을 획득할 것인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는 점에서 그 관건은 결국 리더십의 역할에 달려있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200호에 실린 글입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