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론스타는 더 많이 챙길 수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방해해서 손해를 봤다면서, 정부를 상대로 국제소송을 벌이고 있다. 소송가액이 당초 알려진 2조 원 정도에서 두 배로 불어난 4 조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국제소송에 휘말린 정부는 소송에서 지면 국민의 혈세 4조 원이 또 털리게 된다면서 소송비용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론스타 사태'는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때부터 불거진 론스타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하고 수상한 일처리로 인해, 지금도 한국을 '먹튀 놀이터'로 삼는 외국계 자본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 '론스타 사태'가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오비맥주의 대주주인 외국계 자본의 '먹튀' 행각이 국세청으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연합뉴스 |
오비맥주 대주주 외국계 자본 , 배당소득세 한푼 안낸 비결
최근 국세청이 오비맥주(주)의 대주주인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해 1500여억 원의 세금을 추징한 조치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이 지난달 오비맥주의 대주주로 지주회사 격인 몰트홀딩에 거액을 추징한 이유는 지난 3년간 7000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챙기고도 배당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추징금을 부과한 조치에 대해 오비맥주 측은 과세당국의 판단을 존중해서 추징금을 일단 내기는 했지만, 억울하다면서 국세심판원에 조세 불복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해명이 가관이다.
몰트홀딩은 지난 2009년 오비맥주를 다른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인수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이며, 7000여 억원의 배당을 자회사인 오비맥주로부터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수를 위한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썼기 때문에 외국으로 가져갈 배당소득이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회사를 인수하느라 진 빚을 갚느라고 소득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과세당국으로부터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출도 비용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리"라면서 "그렇다면 수익을 빚 갚은 데 쓰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오비맥주 측은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에서 탈세 혐의가 확인될 때까지는 더욱 당당했다. 배당소득세를 내지 않는 것이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큰 소리치는 근거가 뭔가 했더니, 현재 상법이나 법인세법 상 국내기업이 국내 자회사로부터 배당을 받을 때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규정이었다. 이 법의 취지는 자회사로부터 배당받은 모기업이 나중에 법인세 등을 납부할 때 이중과세가 발생하는 문제점을 막기 위한 것이다. 몰트홀딩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업체이니까 자회사인 오비맥주로부터 받은 배당에 대해 배당소득세를 내야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몰트홀딩이 오비맥주 청원공장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사무실과 종업원이 없어 대주주들이 탈세를 위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라고 판단했다. 몰트홀딩이 페이퍼컴퍼니라면, 실질적인 수익이나 소득이 어디로 귀속되느냐에 따라 과세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몰트홀딩의 모회사 격인 외국계 자본에 세금을 추징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이다. 몰트홀딩의 자본을 거꾸로 추적하면 세계적인 사모펀드 KKR과 연결된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서 운영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끝까지 소송을 해서 매듭을 져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자초한 약점, 끝내 '최초의 ISD 소송'까지 초래
그래도 론스타에 비하면 오비맥주 사건은 심각성이나, 규모나 복잡성에서 한참 떨어진다.
론스타는 오비맥주 사건처럼 국내에 페이퍼컴퍼니를 둔 것이 아니라, 한국과 투자협정을 맺고 있는 벨기에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세금 한 푼 안내고 '먹튀'를 하려고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세청은 벨기에의 페이퍼컴퍼니가 외환은행 인수 업무를 취급했다는 론스타 측의 주장을 일축하고, 한국에 있는 '론스타코리아'가 실제 업무를 처리했다면서 수천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론스타는 각종 소송 건으로 외환은행 매각 과정이 지연돼 손해를 봤다면서 2012년 말 국제투자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하며 반격을 가했다. 정부는 이 소송에서 "120% 우리가 이긴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자초한 약점들이 있어서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려가 되는 점들은 이런 것들이다. 첫째, 한국과 벨기에가 1976년에 맺은 투자협정에 의하면 벨기에 회사는 한국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페이퍼컴퍼니는 이 협정 대상에세 제외된다는 단서를 붙였으면 론스타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협정 적용 배제 조항을 협정 체결 때도 집어 넣지 않았고, 2006년 개정할 때도 수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과세는 투자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론스타는 '산업자본'이어서 어떤 예외 조항으로부터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제대로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금융자본으로 인정해 놓고, 뒤늦게 자본의 성격을 따지고 들면서 외환은행 매각이 지연됐다면서 역공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여, 4조 원 혈세 또 털리지 않으려면 소송비용 대라?
론스타 사태를 복기해보면, 정부 관료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허용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둔 배경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자본이든 인수자가 나서지 않으면 외환은행이 파산한다는 당국자들의 초조함과 당황스러움이 컸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보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외환은행을 론스타가 인수할 수 있도록 금융관료들이 편법을 동원한 정도가 아니라, 무자격자에게 은행을 헐값에 넘겼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문서들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도 외환은행을 론스타가 넘기는 과정에서 최고 결정권자가 누구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외환은행 인수 자본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 끼어있지 않느냐는 의혹까지 가라앉지 않고, 그저 정책적 판단을 사후에 따지고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라는 관료의 항변 논리만 있다.
국내 최초의 ISD 소송 사건으로 번진 '론스타 사태'에 대해 정부는 내년말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200억 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야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본소송만 앞으로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론스타 소송'과 관련한 자세한 진행과정도 알기 어렵다. 법원이 정보공개 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론스타 사건의 교훈이 법적, 제도적 정비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제2의 론스타', '제2의 오비맥주' 사건이 계속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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