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공정위보다 세다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이 직접 고백했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사 방해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바로 삼성전자가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한 사건 관련자들의 '승진 잔치'에 대해 무력감을 드러낸 것이다.
'삼성전자 공정위 조사 방해 사건'은 아직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인식이 세간에 확고히 뿌리박히지 않은 탓에 상당히 충격을 던졌던,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전설적인 무용담'이다.
▲ '삼성전자 공정위 조사방해 사건'의 주역들이 모두 승진하자 ' 역시 삼성공화국' 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공권력 행사 앞에서 '사전약속' 요구
'무용담'의 내용은 이렇다. 2011년 3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공정위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렸다는 혐의를 잡고 관련 자료를 압수하러 '경제 검찰'이 들이닥쳤다고 닫힌 문을 활짝 열어젖힐 직원이 있다면 그는 '삼성공화국 국민'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보안담당 직원들은 '사전 약속'도 없이 어떻게 감히 삼성의 사업장에 들어올 수 있느냐면서 조사관들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경제 검찰'의 체면을 완전히 꺾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동안에 관련자료를 폐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경찰까지 부르는 소동 끝에 조사관이 관련 자료를 압수하려고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조사할 게 없다"였다.
관련자료들은 이미 빼돌려졌거나, 폐기됐거나, 삭제됐다. 핵심 담당자들조차 잠적해버렸다. 만일 검찰이 직접 압수수색에 나섰어도 삼성 임직원들이 이렇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12일 공정위 관계자로부터 사정을 들어보니, 삼성이 공정위 조사관에 '사전약속 없음'이라는 이유를 들이댈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 검찰'이라는 위세는 삼성에게 통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한계 때문이다.
"방해하셨습니다. 과태료 좀 내세요"
"공정위의 조사권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기습적으로 하는 것이며 사전약속이라는 핑계를 대는 것은 공권력 무시다. 조사를 방해하면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그런데 그 처벌이 돈으로 때울 수 있는 과태료 같은 금전벌 수준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과태료 부과라고 해도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킬 수 있다면 위력이 있을 수 있다.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공권력 위에 군림하는 사기업의 오만방자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정위 자체가 삼성 같은 대기업 앞에서는 작아진다. 과태료 부과를 결정하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지난해 3월 세간의 관심도 사라진 가운데, 공정위는 조사 방해 혐의로 과태료를 부과했다.
고작 4억 원었다. 공정위는 '역대 최고액'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혐의 자체가 사실이라면 엄청난 규모의 이득을 챙겼을 범죄를 은폐하는 대가로 형벌적 성격도 없는 과태료 4억 원으로 때울 수 있다면, 삼성 측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회장의 진노, 징계는 '승진 예약 훈장'?
만일 삼성 스스로 '윤리 경영'에 충실하려는 기업문화가 있다면, 임직원들이 이런 약삭바른 계산보다는 공정위의 조사에 순순히 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직원들에게는 '윤리경영'보다는 '약삭바른 계산'이 앞서는 문화가 체질화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공권력을 상대로 무용을 발휘해 따르는 '징계'는 곧 승진을 예약하는 '훈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삼성 임직원이 가장 무서워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진노'도 회사를 지키려는 무용에 대한 '진노'일 경우, 그것이 '애정 표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공정위 과태료 부과가 결정되자 이인용 당시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이 회장이 공정위 조사 방해 사건에 대해 "화를 많이 냈고 강한 질책을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김순택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윤리를 위반한 임직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조사를 방해하는 행위가 혹시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일부 임직원의 그릇된 인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최대 요인이라는 '승진'의 결과를 보자. 마치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1984>에서 등장하는 독재국가의 언어 '뉴스피크'처럼 겉말과 속뜻이 뒤바뀌는 '삼성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조사 방해의 용사들' 중 실무 책임자로 밝혀진 당시 전무는 공무집행 방해로 중징계를 받았으나 '중징계 2년 내에는 승진 불가'라는 사규의 적용이 안되는 특진 대상으로 분류된 모양인지, 지난 5일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증거 인멸의 실무 책임자 격인 상무는 이미 지난해 말 전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용사들'을 대신해 사과했던 부사장도 역시 지난해말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이 이렇게 '뉴스피크' 식의 인사를 하자 공정위 관계자들은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더라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승진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크다. 매우 부적절한 인사였다"라면서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삼성 탓을 하기 어려운 이유
그러나 공정위의 불쾌감은 검찰에게 돌려야 할 것 같다. 검찰이라도 '삼성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는 태도를 보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도 삼성 앞에서 '솜방망이'이기는 마찬가지다. 스스로 나서지도 않지만, 시민사회에서 '고발'을 해도 끄떡없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정위 조사방해와 관련하여 삼성전자 임직원들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지금 이 고발사건은 어떻게 됐나?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이 고발 사건은 7개월 동안 방치됐다가 겨우 배당됐고 담당 검사는 1주일 만에 검토해 지난 7월 19일 증거가 불충분하다면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8월6일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다.
삼성처럼 조사 방해를 하는 행위를 근절하겠다면서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된 공정거래법에는 폭언· 폭행, 현장진입 지연·저지 등의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처벌 조항이 신설됐다.
그런데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검찰의 태도로 볼 때 형사처벌 조항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한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논리가 "청와대 행정관의 비리 행위는 개인의 일탈이지 청와대와 관계 없다"는 청와대의 '유체 이탈 논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당사자의 고소 사건이 아닌 제3자의 고발 사건의 경우 최종 불기소처분 결정이 내려질 경우 재정신청이나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검찰이 마음먹고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면 사실상 국민이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고발사건에서 검찰이 봐주기 결정을 할 경우 공익적 사안에 대해서는 법원이 개입하는 등의 제도적인 개선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원은 삼성에 대해서 당당한가? 그것마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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