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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9>-'폭력성의 권위'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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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9>-'폭력성의 권위' 김영삼

노통 멱살 잡은 YS, 92년 대선때 7천억~8천억 사용

3당 통합이라는 '정치 연금술'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그 과정은 간단치가 않았지. 선임 대통령 노태우가 자신의 후계자로 확고하게 바턴 터치를 해 주지 않아 상당히 애를 먹었어.

노통 쪽의 사돈 쪽에서 나온 이야기로 이런 것이 있어. 후계 문제를 담판하기 위해 YS가 청와대로 들어갔지. 노통은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았어. 의중에 둔 인물이 있었다기보다는 당시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지. 대세야 분명하지만 별로 YS가 맘에 들지 않았거든.

담판 진행이 지리멸렬해지자 YS는 노통에게 '신체적 공격'을 가했다는 거야. 무슨 주먹다짐까지야 안 갔겠지만 넥타이를 잡고 육탄 공격을 했다고 해. 두 사람의 감정적 대립이 심각했다는 걸 과장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소스가 아주 신빙성이 있어. 바로 노대통령의 아주 가까운 인척이야.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고 보면 정확한 묘사라고 볼 수밖에 없어.

하긴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매우 피차 매우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애. 하도 실제상황 같지가 않아 이야기를 과장한 게 아니냐고 하니까 자기가 한 말이 맞다고 부인하더라는 군. 격식이라는 걸 그래도 피차 갖추는 게 정치 일족들이라고 보지만 그런 불문율도 많이 깨져나간 것 같애.

10.26 사건으로 권력자의 내밀한 생활의 일단이 드러나자 권위가 부서지기 시작했지. 이미 권력자-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권위는 국민 사회에서 붕괴되기 시작했거든. 추종 세력 사회에서는 의전과 격식과 상하관계로 그들 권력자들이 권위의 공간을 확보하지만 국민사회나 정당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게 된 거야. 하물며 레임덕에 들어간 대통령과 강력한 집권 예비후보 사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정황이 벌어질 수 있지.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성 스캔들이 세상에 까발겨져 확인되었듯이 권력의 밀실에서도 아주 후진 이면들이 있어.

레임덕 아래서 빚어지는, 특히 자신의 후계자에 의해 빚어진 이런 수모를 노통은 돈으로 복수했어. 선임 대통령이 금고를 열어 집권당의 후계자를 지원하는 프리미엄에 아주 인색한 태도를 취한 것이야. 정적인 DJ는 풍부한 자금을 쓰고 있는데 YS는 돈줄이 바닥이 나 핀치에 몰려 있다는 소문이 그 무렵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 무성했지. 중립 위치를 선언한 마당이라 정치자금을 동원해 주지 않았다는 것은 표면이고, 그 이면에는 두 사람의 긴장관계가 보다 가까운 이유였는지 몰라. 따라서 YS의 승리는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사즉생(死卽生)'의 낭떠러지 현상이 건져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렇게 선거자금이 마른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하더라도 여당 캠프가 동원한 돈은 엄청난 것이었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어느 날 YS는 언론사 간부들과 청와대에서 회식을 한 적이 있어. 회식 도중 선거자금 살포 얘기가 나오자, YS는 배석했던 정무수석에게 얼마나 동원되었느냐고 물었어. "공식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7천억~8천억원으로 추산된다"고 정무수석은 말했어. 적어도 조 원대의 자금이 여야에서 살포되었다는 항간의 추정이 사실로 입증되었지.

정치자금은 선거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야. 대통령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지. 명절을 포함해서 때마다 돈을 뿌려야 해. 경호실에는 촌지 봉투를 돌려야 하고 퇴직하는 장관 위로금 챙겨주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어른의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 관례가 있어. 깨끗한 정치하겠다고 청와대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관례라카니 우짤꼬?"하고 YS도'비공식 의전'을 따를 수밖에. 여기 저기 '불우이웃' 챙겨주고 인사치레 하는 데 1백억 원 정도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바닥이 나더라고 당시 YS는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에게도 인사를 차려야 하는 데 돈 같은 것은 안 받으시니 질 좋은 포도주 2병을 보냈다고 하더라. 이런 저런 지출은 결국 권력의 유지비용이지.

그런 돈 안 써도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내는 건 아니지만 권력이란 추종세력이 있어야 권위가 서는 것이니 울타리를 튼튼히 쳐놓아야 하거든. 두 전임자들보다는 돈에 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정치를 하자면 돈이 가까운 거리에서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YS도 감각적이었지.

정치 자금과 그의 특출한 친화력의 상관 관계는 서로 상승작용을 했을 법도 하지.

K합섬의 J회장은 같은 기독교계 장로이기도 하지만 YS를 크게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어. 선거 다음날인가 J회장 비서는 깜짝 놀랐어.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전화를 든 거야. 선거 때 '실탄 한 박스'를 지원한 것에 대한 답례였어.

이런 일도 있어. 청와대에 입성한 후 첫 번째로 인사를 온 기업인은 부산의 한 건설업자였다고 해. 비서실은 약간 당황했어. 면회 신청이 들어오긴 했지만 지명도가 별로인 사람이거든. 그런데 곧이어 홍인길 수석이 달려오고 칙사대접을 하더라는 거야. 알고 보니 우연한 기회에 조우했던 사람으로 '실탄'지원을 해 온 후원자였어. 마침 추경석 국세청장이 청와대에 있었어. 홍수석은 "앞으로 이 분 기업활동은 많이 도와 주라"고 하자 국세청장은 홍수석에게 90도 각도로 절을 하면서 "예, 잘 모시겠습니다"고 깎듯이 하더라는 거야.

돈이 돌고 도는 표면 뒤에는 이런 권력의 톱니바퀴가 있어. 업자는 권력자에게 돈을 주고 기회를 차입하고 그 기회를 통해 반대급부를 받게 되고 그것을 제공하는 쪽은 자리를 보전 받는 회전축 말야.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만 홍인길 수석은 5공에서의 이른바 '스리 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와는 다른 실세라 할 수 있지. 조직사회의 위계질서 속에서 권력사용이 제한적이었던 후자에 비해 권력행사의 반경이 넓은 그야말로 '실세'이지.

그의 형과 막역한 사이인 은행의 한 간부가 홍씨 상가 위문도 하고 '눈도장'도 찍힐 겸 거제로 내려갔더니 완전히 유력 인사들의 사교장을 방불케 하더라는 거야. 경조사에 성의를 표시하는 거야 탓할 바 아니지만 별로 친분도 없는 은행 사람들도 줄 하나 잡을 수 없나 서성거리는 모습은 참 꼴불견이라는 거지. 뭐, 제 놈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면서 말야. 천리 길 멀다 않고 '실세 소사이티(society)'에 내려온 중앙일간지의 중진 주필도 있어 놀랐다고 하면서 '언론의 낮과 밤' 어쩌구 하면서 비양대더군. 하긴 가까운 친지들의 경조사에 거의 얼굴을 안 비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위문 아닌 '정치행위'로 보았겠지.

한보사태가 터지자 홍수석은 "나는 깃털"이라고 해서 "몸통이 누구냐"하고 사회와 언론의 대공세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발언의 진실은 이런 건지도 몰라. 자신이 막강한 실세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실제도 그렇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대통령의 아들 현철이가 진짜 핵심 실세라는 걸 알고 그것을 폭로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

권력의 이너서클에는 다시 이너서클의 '핵'이 있다고 보면 돼. 이 이원적인 틀은 돈이나 자리와 얽혀 갈등을 일으키고 분열을 자초하지. 권력자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분배한 권력이 형평성을 잃게 되거나 이너서클 안에서의 힘의 이동이 현저히 드러날 때 위기를 맞게 되어 있어. 김재규의 총탄이 박 대통령의 가슴을 뚫고, 두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의 대통령이 레임덕에서 치명적 타격을 받는 부조리 부패 사건에 휘말려 들어간 것도 외부에서 일어나는 압력보다 이너서클의 내부 갈등의 폭발이 보다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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