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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4>-'황제 대통령' 원조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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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4>-'황제 대통령' 원조 박정희

박통, "솔직히 나, 미국X들 좋아하지 않아"

권력자로부터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인물들 그 중에서도 소위 실세들을 이너써클이라 하지.
권력자는 이 울타리 안에서는 말과 행동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어. 책임 없는 소리도 하고 실수가 보장되어 있어. 비밀이 새어나가는 출구는 봉쇄되어 있고 들통이 나면 응징의 계율이 무섭거든.

게다가 언론이라는 ‘하이에나들’이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어. 그런데 기묘하게도 권력자는 진실을 기자에게 고백하는 수가 있어. 지금은 고인이 된 선배 언론인 J일보의 H씨의 증언.

월남 갔다가 귀국해서 동양TV에 끌려나갔지. 막 대담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니까 청와대에서 날 잡으러 왔대. TV를 보고 있던 대통령이 좀 보자는 거였어. 그래 둘이 앉아 월남 얘기 한참 했지. 술이 서너 순배 오가니 취기가 올라. 예라 할 말 다하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군.

"따이한 용감무쌍 어쩌고 하지만 문제가 많습니다. 미국X들 자기들 전쟁 돈 몇 달러 주고 청부맡아 달라는 거 아닙니까."

"H기자, 솔직히 말해 나, 미국 좋아하지 않는다. 우린 국력이 약해 어떻게 해서든지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야. 국력은 뭐야. 경제야. 경제는 뭐야. 돈이야. 참고 이 기회를 이용해야 돼."

헌데 박통이 말야, 말끝마다 '미국X, 미국X' 하더라더군.

결코 그는 친미주의자가 아니었어. 일본의 만군(만주 관동군)이었다는 출신 배경에서 "생리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영향도 있겠지.

그러나 5.16쿠데타를 일으킨 뒤 미국과의 갈등과정이 그 원인이었다고 보여져. 개발 계획에 들어갈 자금 좀 달라고 해도 노(NO), 통화개혁을 내자동원 하려니까 미 대사관에 안알리고 했다고 딴지 걸어, 권력 잡았을 땐 워싱턴 프레스 클럽으로 기자X들 시켜 이리 흔들고 저리 올려쳐, 미국이 좋은 나라일 수 만무하지.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유가적 도덕률에 젖어 있던 그에게는 미국의 틀과 사회가 마땅할 수가 없었겠지.

스타일과 문법이 비슷한 독재권력자로 볼 수 있는 전두환 대통령의 경유와 비교가 될 수 있는 대목이야. 전통이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율곡 프로젝트' 때 극명하게 드러났지. 예산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한 측근 장관에게 이런 말을 했어.

"만약 전쟁이 일어나 한판 붙으면 곧 미군을 서부전선으로부터 철수시켜야 해. 1주일 동안은 주전선인 이곳이 밀리게 돼 있어. 미국이 하는 짓은 보나마나야. 우왕좌왕 서서 총이나 쏘다가 밀릴 게 뻔해. 본국에서는 전쟁 장면을 매스컴을 통해 연일 보도할 것이고 백악관과 의회는 의회대로 이 문제를 놓고 질질 끌다가 전략은 한달 쯤 뒤에나 나올 것이니 전선은 기울어 버릴 위험성이 있어. 그러니 뒤에서 병참 역할이나 맡으라고 하고 반격전은 우리가 하고 나가야 해."

그의 눈에도 미국은 미더운 존재가 아니라는 거지.

5.16 후 검은 안경 끼고 미국에 건너가서 받았던 괄시를 십수년이 흐른 뒤 카터에게서 다시 받았으니, 워싱턴이 자기를 보는 눈이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생리적 반발도 있지 않았나 싶어. 카터는 한국엘 와서 박 대통령을 가까이 부를 때도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하는 걸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어.

PP(프레지던트 박)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과는 친한 친일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일본과도 갈등이 아주 최고조에 달한 적이 있어.

나중에 한은 총재를 지낸 L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 사건은 바로 ‘김대중 납치 사건’ 때였다는 얘기야. 일본정부는 곧 진사사절을 보내 사과하라는 요구를 해 왔어. 정부쪽은 적당한 선에서 무마하려고 이면 협상을 했어. 그러나 일본은 한 발짝도 안 물러났지. 웬만한 사안이라면 모르지만 DJ 납치사건은 정권의 문제가 걸리는 예민한 사항이니 PP로서는 보통 민감한 것이 아니었지. 드디어 일본측은 마지막 카드를 전달했어.

‘안 보내면 국교단절이다.’

청와대에는 비상이 걸렸어. 묘안은 없고 PP는 강경 일변도. 일본측 대사관은 ‘당일 00시까지’라는 최후 통첩을 했어. 이제 누군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터인데 대통령의 심기가 보통이 아니니 감히 나서지를 못해. 전문은 자꾸 날아들고 외무장관을 비롯하여 전 참모들은 비서실장 방에서 담배만 피워댔지. 마지막 순간을 재촉하는 초침소리만 높아갔어.

그때 숨막히는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어. “내가 들어가 보지” 김정렴 비서실장이었어. 청와대 일대에 내리 깔렸던 긴장감이 해소된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지. 결국 PP는 일본측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을 바꾸었어. 김정렴씨를 두고 뒤에 명비서 실장이라는 평가들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위기의 순간에 용기와 판단력을 보여준 이런 사건들 때문인 것 같아. <박정희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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