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말 롯데호텔 지하 일식집 벤케이에서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과 손광식 본지 고문을 비롯한 언론계 고위층들이 오찬을 같이 했다. 당시는 과거비리 척결을 밀어붙이던 김영삼(YS)정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시에 ‘소황제’ 김현철을 중심으로 한 사조직의 전횡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벤케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정치권에 만연했던 부패를 언급하며 “재앙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애”라는 말을 했다. 무심결에 한 이 말은 그로부터 3년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발발하면서 적중했다. IMF사태는 YS정권 초기부터 권력의 음지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편집자
C : 요새 이런 유행어 들어 봤어. YS가 한 건 터질 때 마다 “우째 이런 일이...”하다가 요새는 밑엣 사람이 “각하, 보고가 있습니다” 하면 “또 뭐꼬?” 한다더라.
P : 박재윤(재무부 장관)이는 재무부가 재경부로 통합된다는데, 역대 재무장관 회식 준비를 해 눈치 없는 사람 되게 됐어. 본인은 전전긍긍이라더군.
C; 그나마 문민정부에서 한 것이 있다면 ‘신경제’인데 박이 그 주역 아닌가. 도중하차시키면 말이 아니지.
김만제 : 이용만(노태우 정권말기 재무장관)이가 요새 죽을 지경인 모양이야. 안병화(노태우 정권 시절 상공장관)는 검찰에서 돈 받은 죄만 족치고 쓴 곳(정치자금)은 도대체 고려 안 해서 속이 타 죽을 지경이라는 거야.
남은 돈도 한전의 ‘비(秘)구좌’에 고스라니 남겨두었는데, 한전 쪽에서는 “우리는 몰라”하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더군.
C : 노통(노태우 대통령)은 해 먹어도 너무 했어. 차라리 전통은 ‘앗싸리(산뜻)’했다는 평이야. 지금 경제 부실도 6공 때 너무 삥땅해서 업자들이 그걸 벌충하느라고 ‘후도비끼(제품의 두께를 규격보다 얇게 만들어 이익을 취하는 방식)’한 탓이라는 거야. 이게 아마 재앙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애.
(편집자 주: YS는 집권후 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당시 첫 표적이 되었던 이들은 이용만과 안병화. 이용만은 노통 시절 은행감독원장(90~91년), 재무부장관(91~93년)을 거치면서 노통의 비자금 조성에 깊게 관여했었다. 안병화는 91~92년 한국전력 사장 재직시절 한전이 발주한 원전공사와 관련,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었다. 이들은 그후 수뢰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살아야 했다.)
C: 참, 한승수 주미대사가 실장(청와대)된다는 설이 파다하던데......
L : 현철이면 다 통하고. 최근 빚어진 일련의 대(大)사고사건에서도 아들의 아이디어, 진언만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디다.
김만제 : 그러니까 ‘갱력한 청와대 실장’은 필요 없다는 거지.
S : 전병민 실장, 뭐 이런 거 아닌지 모르겠어.
김만제 : 권력이란 절대로 무슨 덕목, 합리성 그런 걸로 주변 인물 배치를 안 합니다. 결국 ‘가신 그룹’들이 그걸 용납하지도 않아요.
(편집자 주: 얼마 뒤인 그해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한승수 주미대사를 비서실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한 대사가 비서실장이 되기까지에는 한 때 미국생활을 하던 중 한 대사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던 김대통령 딸이 가족모임에서 아버지에게 그를 추천한 대목이 결정적 작용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력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한 비서실장은 그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을 맡는 등 YS시대에 승승장구했다.)
C :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YS에게 누가 집권 이후의 통치 비결을 위해 봉투 3개를 주었어. 하나를 열어 보니까 ‘과거의 잘못을 규탄하고 전임자에게 책임을 돌려라’, 두 번째 걸 열어보니까 ‘언론과 국민에게 책임을 돌려라’, 세 번째 봉투를 열어 보니까 ‘이제 당신도 봉투 세 개를 준비하라’ 이거야.
S : 요즘 YS의 주변 부패설이 돌던데.
P : YS 자신은 물론 아니지만, 주변에는 이미 부패로 오염되어 있다는 얘기야. "뭐 해 줄 것 없느냐”고 현철이 쪽에서 오히려 사인을 주고 있다더군.
L : 케이블 TV 할 때 하도 말이 많아서 안기부장 김덕이 시켜서 극비 조사 보고를 했더니, 몽땅 주변에 줄이 걸려 있었다는 거야.
P : 그나마 ‘엔고(高)’ 덕에 경제는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데 원화가 절상되어 7백선으로 내려가면 말짱 부도 파산이야. 그걸 보면 일본놈들 견디는 건 대단해.
김만제 : 포철은 6백선까지는 경쟁력이 있어 버틸 거야. 자재수입 비중이 기계 포함해서 한 40%고 거기다가 국내 물가 요소가 있으니까 어쩌면 더 견딜 수도 있다고 보고 있지.
S : 아침에 기사를 보니까 포철회장이 결재하는 건 딱 하나라더군.
김만제 : 그건 임원들 업무관장에 대한 결재권 하나야.
S : 하긴 인사 하나 틀어쥐면 다니까.
C : 언젠가 장관했던 모 사장이 아침 골프를 치면서 “사장 재미 모르지? 아침에 마음대로 골프 칠 수 있는 거야” 했다지.
S : 그래, 사장 마음대로지. 회의도 “오늘은 없다” 하면 그만이지.
C : 그런데 YS쪽에서 요즘 언론에 대해 너무 신경질적 반응이야. 생각대로 잘 안 풀리고 있다는 반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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