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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6>동아일보 상속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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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6>동아일보 상속비화

"원래는 차남 병건씨였다"

이 이야기는 96년 1월 5일 동아일보 전직 고위관계자로부터 손광식 본지고문이 취재한 동아일보 상속 비화이다. 이 날은 한때 동아일보의 실세중 하나이던 신용순 강원일보 사장의 발인 날이었던 까닭에 자연스레 화제는 신사장이 동아일보에서 밀려난 뒷 얘기에 맞춰졌었다.

증언자는 94년 1월16일 김상만 당시 명예회장이 급작스레 서거하면서 경영권이 맏아들 김병관씨 쪽으로 넘어가게 된 이면의 비화를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아울러 그 무렵 단행된 YS정권의 언론 세무조사가 동아일보 후계 게임에 미친 영향도 증언하고 있다. 편집자

<사진>

오늘 신용순 전 강원일보 사장 장례 날이야. 중앙병원에서 발인을 했어.
동아일보에서는 이채주 주필이 얼굴만 보이더군. 그래도 만자선생(고 김상만 동아일보회장) 친척에다 편집국장, 상무까지 지냈는데 동아일보가 좀 섭섭하게 한 것 같애. 하기야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워낙 김병관회장 하구 신용순씨가 사이가 나빴으니까. 적당히 예의만 표시하자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여.

김병관 회장은 만자선생의 장남이지만 눈 밖에 나 있었지. 술 잘 하고 통 크고 그렇지만, 가업의 후계자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본 것이지. 술도 안 하고 일전, 이전 따지는 ‘수성형(守成型)’의 차남 병건씨를 후계자로 일찌기 점찍었던 거지. 병관씨는 전무 시절에도 아무런 권한이 없었어.

***"김상만 회장의 내심은 장남이 아닌 차남에 있었다"**

만자 선생은 연말이나 추석 때 ‘금일봉’을 줄 때도 병관씨한테는 직접 주지 않고 아우 병건씨를 통해 전달할 정도였지. 평소에도 대소사를 같이 얘기하는 걸 볼 수 없을 정도야. 그러니 병관씨는 절치부심 했겠지. ‘오냐 내가 대권만 잡아봐라.’하고 별러 왔다고 볼 수 있지. 신용순 사장은 병관씨보다는 후계자로 지목된 병건씨 쪽이었지.

어느 날 간부회의가 열렸는데 병관씨가 모처럼 내놓은 의견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가운데 신용순이 그 건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했지. 아마 개인적으로 감정도 섞였을 거야.

‘저놈은 사사건건 내 생각을 깔아뭉개?’ 화가 난 병관씨는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자리에서 신용순을 보고 “당신, 내가 사장되면 같이 일 못할 줄 알아”하고 면전에다 대고 포박을 해댔지.

병관씨는 아버지뿐 아니라 당시의 사장이던 김상기씨한테서도 미움을 받았지.
김상기는 알다시피 만자선생의 아우 아냐. 그런데 상기씨는 당초 부친으로부터 동아일보 주식을 상속 받지 못했어. 그러니까 오너십이 약했다고 볼 수 있어.

만자 선생이 상속을 받을 때 아우인 상기씨 몫이 없었던 것은 당시 상기씨가 아주 어렸을 때였으므로 장자인 만자 선생에게 아우 몫까지 맡아서 관리하라는 뜻이 있었지. 그래서 경영권 행사에 밑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

게다가 형인 만자 선생은 큰 아들 병관씨 아닌 차남 병건씨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려 하고 있어서 힘의 균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었어. 그러니 병관씨 쪽에서 보면 삼촌 김상기 사장이 자신을 미워하고 물먹이는 것을 책략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

어떻든 김상기씨는 사장자리에서 조카 병관씨가 올리는 아이디어나 의견은 모조리 “노(NO)!”해 버렸지.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도 낸 사람이 자기라는 걸 알면 "노"하니까 병관씨의 심중에는 한이 자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급작스런 서거, 김회장의 등극, 그리고 '칼질'**

그런데 김상만 회장이 돌아 가셨어.(94.1.16)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유언이라든가 앞으로의 경영체제에 대한 지침이 남겨지지가 않았어.

항간에는 김회장이 입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비가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보았지만 가벼운 감기 기운이었지. 말하자면 급박하게 일어난 사고라 할 수 있어.

자연 여러 사람의 의견과 자연스런 승계 방식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지. 장자로서 병관씨의 권위가 인정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대통은 그에게로 넘어간 것인지.

병관씨는 대권을 잡자 반대세력을 치게 되었지. 작은 권력이나 큰 권력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수단은 ‘칼질’이야. 우선 김상기 부회장을 고문으로 끌어내렸지. 김상기씨 아들이 이걸 알고 회사로 쳐들어왔어. “형님, 이럴 수가 있어요!” 책상을 치고 야단이었지.

신용순씨는 병관씨가 전무를 하고 있었을 때 동아일보를 떠났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어.
신용순이 출판국 상무로 일하고 있을 때 그쪽에서 금전사고가 났어. “책임자도 문책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지. 신용순은 도의적으로나마 사표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지. 일단 정치적 수습을 휘한 제스처 정도로 본인은 생각했지. 만자선생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을 했어.

이때 병관씨가 강경론을 들고 나왔어. “대(大)동아일보가 이런 사내 비리처리에 정의롭지 못하게 사적인 관계에 매달려서 되겠는가. 그래 가지고 어떻게 천하를 논하려 하는가!”라고 소리를 높였어. 결국 신용순은 동아일보를 떠나게 되고 등을 돌리게 된 것이지.

***YS의 언론 세무조사, 도리어 김병관회장의 친정강화 계기**

병관씨는 대권을 잡게 되자 자신의 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어.
YS(김영삼 전대통령)가 정권을 잡자 그 기회가 왔어. YS는 추경석 국세청장을 시켜 언론계의 발목을 잡으려고 신문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켰지. 동아일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지. 비자금, 보너스 세금처리 등 이런저런 세무변칙 처리가 잡혔지. 미묘하게도 이 사안으로 병관씨는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잡아 낼 수가 있었던 거라.

자신이 사장이 되기 전까지 세무처리를 비롯하여 일체의 경영권 행사에는 동생 병건씨만이 참여했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강화된 거라. 그러니까 국세청이 동아일보로 쳐들어오더라도 “이제까지의 경영책임은 병건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그를 화살받이로 밀어낼 수가 있었어.

권오기 주필이 통일원 장관으로 나가고 남시욱 상무가 문화일보 사장으로 빠지자 이젠 완전히 병관씨 천하가 되었지. 사장 겸 회장, 경영, 발행, 편집, 인쇄 등 5권을 휘어잡고 “그 동안 한 경영이 이 정도야?” 하고 국세청 자료를 흔들어 댈 수가 있게 되었어.

하지만 김성열 사장이나 삼촌 김상기씨를 고문으로 밀어내 회사를 떠나게 한 것과 동생 병건씨를 밀어내는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어. 병관씨가 소유하고 있는 동아일보 주식지분이나 병건씨의 그것이 큰 차이가 안 난다는 사실이야. 법적 분할권에서 막상막하라 아주 밀어낼 수가 없는 구조라. 그러니까 물을 먹여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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