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제각각 이런 저임금을 받은 이유는 시간당 임금이 아닌 계량기 한 개를 교체할 때마다 '4000원'과 같은 형태로 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배고파 못 살겠다'며 자결을 택한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 최종범 씨의 급여 지급 체계와 유사하다. 최 씨 역시 수리(A/S) 건당 수수료 형태로 임금을 받았다.
위탁 교체원 ㄴ 씨는 "봄·여름·가을에는 계량기 정기 교체 기간이라 이보다는 많은 돈을 벌어 연봉은 대개 1700~2000만 원 수준"이라며 "그러나 정기 교체가 끝난 겨울철에는 일감이 없어 손가락을 빨며 산다. 오늘(10일)도 8명이 일하는 이 사무실로 들어온 교체 민원은 단 한 개로 2월 10일 받을 월급은 오늘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부수도사업소 김 모 팀장 역시 "겨울철엔 오늘처럼 일감이 적어 일하시는 분들이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서울시 수도 계량기 교체원들이 수거한 동파 계량기들. 이 계량기 한 개당 이들은 4000원씩 급여를 받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교체 건당 급여 지불 체계는 용역 계약을 일부 위반한 것이다. 서울시가 입찰자들에게 내건 '용역계약 특수조건' 문서를 보면, 위탁 업체들은 교체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일정액에 대하여 성과가 없더라도 지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 들은 교체원 ㄴ 씨는 "기본급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일이 없으면 0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원청인 서울시가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같은 문서에 따라, 위탁 업체는 "매월 종사원 임금 지급 내역 등을 발주기관에 제출하여야 하고, 계약 담당 공무원은 임금 지급 자료를 확인해 미비할 경우 시정 지시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 지급 규정을 위탁 업체가 불이행했을 경우, 서울시는 해당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도 있다고 돼 있다. 서울시가 위탁 업체의 저임금 지급을 묵인 또는 적어도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함께 서울시의 간접 고용 정책 역시 저임금 문제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북부수도사업소 요금과 관계자에 따르면, 계량기 교체 한 건당 서울시가 책정한 직접 노무비(설명)는 7000원에서 8000원 사이다. 결국, 차액인 3000~4000원이 중간 위탁 업체에 돌아간다는 얘기다.
이러한 급여 지급 체계는 하청 노동자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고도 있다. 서울시 요구에 따라 교체원들이 미리 정해진 교육을 이수하면, 이 기간 교체원들은 돈을 한 푼도 벌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또한 서울시가 겨울철 계량기 동파 예방 캠페인을 할수록, 하청 노동자들의 일감은 외려 적어지는 결과도 생긴다.
교체원 ㄱ 씨는 "지난해 11월 상수도관리본부가 주관하는 서울시 교체원 교육에 참여한 6시간 동안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했다"며 "겨울철엔 동파 민원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며 밤 11시까지 '비상 대기'를 하는데, 결국 손에 쥔 건 8만 원이다"라고 말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사무실 인터넷비'와 '아르바이트 노동자 인건비'까지 부담
북부 수도사업소 계량기 교체원들은 업무에 필요한 차량과 공구는 물론, 교체원 사무실 인터넷 사용료까지 자비로 해결하고 있다. 교체원 ㄷ 씨는 자신의 차 트렁크를 열며 "여기서 일하기 시작하며 자비로 이 중고 차량을 구입했다"며 "트렁크 안에 있는 공구들도 직접 샀고 차 옆에 붙인 '북부수도사업소 긴급공무수행 3146-3233'이란 스티커도 3만 원을 내고 구입했다"고 했다. 이 역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차량, 교체 공구, 방한 용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용역 계약 조건 위반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이 많이 몰리는 시기에 한시적으로 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인건비마저 위탁 교체원들이 한푼 두푼 모아 마련하고 있다. 북부 수도사업소 교체원들은 지난 여름에도 교체 업무가 밀려 계량기를 연마하고 패깅을 붙일 아르바이트 노동자 1명을 쓰며, 한 사람당 약 9만 원씩을 모아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월급을 줬다. 교체원 ㄴ 씨는 "회사에 알바 월급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봤는데, '니들이 벌어 먹고 싶어서 알바를 쓰는 건데, 왜 회사가 그 돈을 줘야 하냐'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류하경 변호사는 "알바비를 대납한 노동자들은 노무 제공을 받고도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이 소송을 통해 사업주 대신 부담한 알바비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북부수도사업소 계량기 교체원들이 공개한 아르바이트 노동자 급여, 사무실 인터넷 비용 지급 내역. 첫번째 표에서 두 번째 항목인 '연마 및 패킹 붙이기' 가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각 교체원들이 지급한 월급이다. 한 사람당 약 9만 원씩을 모았고, 결과적으로 이 알바 노동자는 63만 원을 벌어갔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계량기 교체원들은 식대와 커피, 인터넷 요금도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검침원들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2월 체불 임금을 돌려달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한 중부 수도사업소 검침원들은 취업 과정에서 위탁 업체 사장에게 250~3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해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단독] 서울시 수도검침원, 임금 체불에 금품 상납까지?)
또한 이 검침원들은 채용 과정에서 "과업 지시서 및 운영 내규 지침을 준수"하고 "위 사항에 배치되는 사항을 요구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 또는 단체 구성을 하지 않겠음"이란 서약서를 ㅊ 위탁 업체 대표 앞으로 작성하기까지 했다. 이는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박탈하는 불법 행위다.
'위장 도급' 소지가 큰 사업장에선 이처럼 저임금과 부당 노동 행위 등 비인간적 근로 조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애초에 이러한 불법적 간접 고용 형태를 사업주들이 채택하는 이유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산업재해 보상 등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해고를 손쉽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위장 도급 체계 안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 조건 문제를 제기하거나, 부당한 해고가 발생해도 문제를 풀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원청은 '법적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발뺌하고 하청은 '원청이 결정한 것'이라는 '핑퐁 게임'을 이어가곤 한다.
계량기 교체원과 검침원들이 최근 가입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의 김세현 조직 차장은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한 간접 고용은 필연적으로 최악의 근로 조건을 가져온다"며 "용역 계약 위반이 명백해 보이는 만큼, 서울시는 용역 계약을 즉각 해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업무는 상시·지속적이자 필수적인 공공 업무이므로 해당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고용 전환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한편, 북부수도사업소 계량기 교체원들이 속한 ㄹ 위탁 업체 측은 10일 "사장님이 없어 구체적 상황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 메모를 남기겠다"고 말한 후 현재까지 연락이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계약 위반이 실제 발생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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