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국가보안법의 방송심의 버전'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을 방송심의 규정에 새롭게 넣기로 했다. 더불어 논란이 됐던 '민족 존엄성' 조항의 신설은 포기했다.
방심위는 지난 9일 전체회의를 열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공안 심의의 근거 규정이 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은 제29조 2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신설됐다. 해당 조항은 오는 14일 관보게재 후 바로 적용된다.
이 조항은 '방송은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 '방송은 남북한 간의 평화적 통일과 적법한 교류를 저해하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만 위원장을 포함한 여당 추천 위원들은 '민주적 기본질서'가 헌법뿐 아니라 방송법에도 명시된 부분으로 이를 조항에 넣는 것일 따름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정부 입맛에 맞게 정치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어 언론단체 및 야당 추천 위원들이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정부가 지난해 통합진보당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하기로 심의 의결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야권 추천 위원들은 해당 조항에 '구체적인 사례가 적시되지 않아 추상적이라 자의에 의해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일부 위원은 해당 조항에 '기본권'을 넣어 민주적 기본권과 기본질서를 해치는 방송에 대해 제재하자는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여 대 야의 구도인 6대 3으로 갈려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 신설안은 통과됐다.
이런 가운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방송을 규제하기 위한 '민족의 존엄성' 조항의 신설은 제외됐다. 해당 조항은 '방송은 민족의 존엄성과 긍지를 손상하지 않도록 해야한다'와 '일반적으로 인식된 역사적 사실 또는 위인을 객관적 근거 없이 왜곡하거나 조롱 또는 희화화해 폄훼하지 아니 하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왜곡이나 조롱의 기준이 명확치 않아 자칫 정권이 자의적으로 이용할 소지가 높다는 비판을 받아온 조항이다.
방심위는 이를 제외한 이유로 "현행 제25조의 3항(방송은 민족의 존엄성과 긍지를 손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과 중복되며, 객관성·명예훼손 등 타 조항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자체 규제심사위원회의 심사와 입안예고·공청회 등에서 나와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심의과정에서 꾸준히 폐지 혹은 축소 요구가 있었던 '공정성'과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언론단체는 이번 조치를 '공안 통치를 위한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에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여연대, 언론연대, 민언련 등은 서울시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에 대해 "방심위 위원들이 원칙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해 정치적 비판 방송에 대한 징계를 남발할 것이 분명하다"며 "국가보안법의 방송심의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방심위가 할 일은 기존의 위헌성 지적을 받아온 심의 조항들을 합헌적으로 개선하는 일이지 개악이 아니다"라면서 "이번 개정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