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볼 때, 갑오년은 외부 세력에 의해 체제가 변화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잘 대처해 나가야 함을 보여주는 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갑오년은 가히 해현경장(解弦更張)의 해라 할 수 있다. 해현경장이란 '거문고의 줄을 팽팽하게 고쳐 맨다'는 뜻으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제도 개혁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2014년 갑오년에는 정책이나 제도 가운데 '홍익인간'을 위해 마땅히 개혁해야 할 것은 개혁해야 하며,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지도자들은 이를 명심하여 헌법 정신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주인이 되고 서로 의견과 가치가 달라도 그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2014년 갑오년 벽두인 6일 오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평소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를 그나마 개선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역시 소통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오죽했으면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OECD 국가 중 신임 대통령이 취임 후 10개월 만에 처음 기자회견을 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라며 "이것도 정상은 아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벽이 생기면 소통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주문했을까? <중앙일보>도 사설을 통해 "민주당이 대변하는 정치적 반대층과 국회에서의 위상을 감안해 더 경청하고 이해하는 정성스러운 모습이 필요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며 "신년 회견이 소통의 시작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소통이 잘되지 않으며, 또한 잘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소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나름대로 소통을 하려 하는데 야당이나 노동자나 일부 국민들이 법과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이나 자기주장만 너무 많이 한다고 여기는 편견 내지 선입견, 고정관념에 기인한다. 대통령이 "노사관계는 법과 원칙, 그리고 국민의 이익이라는 두 가지 기본 틀 내에서 노사정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수용, 타협하는 것은 소통이 아닌 것으로 단정 짓게 되고 아예 타협은커녕 그 이전 단계인 소통조차 하지 않으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을 연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
타협은 서로의 다른 이해관계, 예를 들어 너는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원한다는 것에 대해 서로 좋게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으로서 우선 만나서 소통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타협의 전 단계인 소통조차 안 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과 편견이 강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소통의 기본인 상대방의 가치와 뜻을 우선 만나서 정확히 들어보려고 하는 소통의 첫 출발조차 할 수 없게 하며, 마치 타협을 소통보다 앞서는 것으로 오해까지 하게 된다. 따라서 타협에 매달리지 말고 우선 싫은 사람과 무조건 만나는 횟수를 많이 갖는 것이 이러한 인식의 문제를 푸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둘째로 어떤 이유로든 실제 상황이나 사실(fact)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거나 잘 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역사 교과서를 놓고 이념 논쟁이 번지는 것은 안타깝다"며, 이념적 편향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역사 교과서 문제는 좌우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친일, 반민주 등 역사적인 사실 자체에 대한 왜곡에 문제의 원인이 있는데, 이러한 사실 왜곡에 대한 인식을 이념의 차이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이는 이념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왜곡성에 문제의 핵심이 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 준다.
특히 대선개입 의혹 특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해 밝히고 있는 데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대선개입 문제는 누가 보더라도 '법과 원칙'에 위배된 엄연한 사실 아닌가? 그러니 이에 연관되는 사람이라면 빨리 교체하고 잘못된 제도와 정책은 하루빨리 시정하는 게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벤트성 개각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가 정말 궤도에 딱 오르게 할 시점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은 국민의 뜻과 너무 달라 갈등과 대립을 불러온 지난해 '불통'에서 한 발짝도 진전된 게 없어 대단히 유감이다. 사슴을 말(馬)이라고 우기면서 사실을 잘못 알고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문제 해결은커녕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스럽다. 이 문제는 대통령 측근들이 정확한 사실과 정세를 객관적으로 잘 보고하고, 과감히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소통의 문을 여는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교수신문>은 2014년 갑오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전미개오(轉迷開悟)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는 혼란과 미망, 무지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가짜와 거짓이 횡행했던 작년의 미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진짜와 진실이 승리하는 한 해를 열어가야 한다는 강한 염원을 담고 있다. 나아가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잘못된 것을 과감히 바로잡아 원래대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러한 염원은 비단 교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민주화, 복지를 제대로 하겠다고 국민에게 공언한 대통령이 이를 눈감은 채 이번 기자회견에서조차 이에 대해 입 밖에도 내지 않은 것은 너무나 이상하고 기이하다. 국민에게 약속을 저버리는 처사가 아닌가? 2012년 12월 19일 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후 광화문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민생을 챙기는 대통령,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세 가지 점을 분명히 밝혔다. 민생을 챙기겠다는 말 속에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방점이 찍혀 있고,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말에는 소통을 통한 타협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만 서둘러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의아해하는 국민들이 너무나 많다. 올해 6월 지방자치제 선거가 끝나면 레임덕이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잘했던 시장에서 어묵을 파는 아줌마와 잠깐 동안 만나는 것도 자주 하되, 무엇보다 의견이 다른 야당이나 시민단체 대표들과 허심탄회하게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일부터 정확하게 파악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민생을 챙기고, 국민 대통합을 이루며,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 앞에서 분명히 약속한 박 대통령에게는 올해 120주년을 맞이하는 갑오경장의 역사적 의미가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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