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치, 경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 인간 존엄을 위해서입니다. (중략)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정책도 만들어지고 예산도 편성돼야 합니다. 출산율에 대해서도 '왜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을까? 나름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보다는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문제라며, 무작정 100만 원씩 주고 아이를 낳게 하자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누가 100만 원 준다고 애를 낳겠습니까."
그래서인가 보다. '동네 아버지'로 불리는 최 도지사는 '문순 씨'라고 이름 붙인 관사를 개방하고 그곳에서 도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민감한 강원도의 현안을 하나둘씩 해결해 왔다. 앞으로는 사람을 키우고 싶다는 그에게는 현재 작은 소망이 있다. 강원도를 평화와 화해의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릴 적에 봄이 오면 어머니가 산나물을 캐러 가십니다. 저도 따라가지요. 저쪽에 취나물이 많이 있는데 이상하게 어머니는 그쪽으로 안 가시는 겁니다. 내가 어머니께 '저기 나물이 많은 데 왜 안가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저기 옛날에 누가 누구를 쏴 죽여서 시체가 놓여 있던 자리다'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또 어떤 마을은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날이 모두 같습니다. 한 날에 다 죽은 것입니다. 마을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어서 오늘도 그 아픔을 갖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지금 강원도는 과거와 달리 평화를 바라는 지역이 됐지만,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갖고 사는 곳이다. 북한이 자신만의 체제를 견고하게 다지려고 노력할수록, 이에 맞서 남한이 더욱 강해질수록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구성원들에게 의사 결정권을 주면서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능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좋은 프로그램은 자유와 자발적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MBC <무한도전>이 대표적입니다. <무한도전>은 옛날 코미디같이 작가들이 미리 대본을 다 써주고 그대로 연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열린 방식으로 참가자들이 신나서 노는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개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운 요즈음이다. 문순 씨와 함께 그리는 한반도의 '무한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 최문순 강원도지사 ⓒ프레시안(최형락) |
- 부쩍 바빠지신 것 같습니다. 최근 근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도루묵 파느라고 바빴습니다. 2011년부터 동해안에 치어를 방류했더니, 도루묵 수확량이 늘었습니다. 올해도 많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수확량만큼 소비가 잘 안되니 재고가 쌓이고 값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작년부터 트위터나 페이스북, 방송을 통해 시도 때도 없이 도루묵을 팔고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국회에서나 도(道)에서나 2014년 예산을 편성하는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도 예산 중 전국 최초로 초·중·고 전체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 예산이 부결됐습니다. 도립대학교 등록금 삭감 예산은 잘 통과가 돼서 도립대 등록금은 25만 원 선까지 삭감됐습니다. 강원도에 기업과 외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야 늘 하는 일이고요. 사실 1년 중에서 연말이 가장 바쁜 때입니다.
- 블로그나 트위터 등을 통해 '도루묵을 파는 도지사' 등과 같이 기존의 권위적이고 무게 있는 도지사 이미지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애교 섞인 모습으로 '탈(脫) 권위' '노매드(nomad, 자유인 또는 방랑자라는 의미)' 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젊은 층에서 많이 좋아해줍니다. 나이 든 분 중에는 불편하게 여기는 분도 있고요. 지난 50여 년 동안 강원도는 국가가 지배하고 통제하고 군림하는 가운데, 굉장히 딱딱하고 엄한 도지사-시장-군수들을 배출했습니다. 그러다 나 같은 이상한 사람이 오니까 처음에는 적지 않은 분이 거부감을 가지고 싫은 소리를 많이 하셨습니다. 도지사가 무게를 좀 잡으라는 요구가 많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이 없어졌습니다. 동네 아저씨부터 시작해 동네 오빠, 작은 아버지, 삼촌에 이르기까지….(웃음) 여러 가지 명칭이 생겼습니다. '불량 감자', '5미터(5미터 전방에서부터 아는 척하고 반가워한다는 뜻이라고 함)'와 같은 별명도 생겼습니다. 이런 리더십을 처음 접하다 보니 신기하다가도, 막상 함께해 보니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외국에선 수상이나 도지사 같은 사람들이 그냥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닙니다. 대중목욕탕에 나타나기도 하고요. 저도 그런 리더십으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편하게 다가가서 말을 걸 수 있는 리더십 말입니다. 저는 요즘 유행하는 '소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작위적인 소통은 소통이 아닙니다. 억지로 소통을 하겠다고 소통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보통 소통을 강조하는 분이 '소통의 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통은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쉽게 다가가서 말을 걸 수 있어야 소통인데, 그게 안 되는데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법이나 제도,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법과 제도가 필요 없는 것이 민주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상명하복이나 위계질서를 깨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고 소통이라는 뜻입니다.
- 상명하복이나 위계질서를 깨는 것이 민주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특히 기존 관습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비서실에 늘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제가 지사실에 들어갈 때 제발 자리에서 일어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힘듭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고쳐지지 않아서 거의 싸우다시피 합니다. 또 제가 가방이나 서류 등을 들고 다니면, 직원이 막 빼앗습니다. 우산도 빼고요. 도지사는 뭘 들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안 됩니까? 오랜 습성입니다. 이런 관행을 없애려고 할 때마다 전쟁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도지사를 동네 아저씨, 동네 오빠처럼 대할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민주주의와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겁니다.
MBC 사장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방송사 구성원들도 과거에는 도제식으로 교육했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아주 엄했습니다. 선후배 사이가 거의 군대 같았습니다. 사장이 사원들과 편하게 소주를 마실 때도 사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장이 질문하는 것에만 '네, 아니오' 하고 답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참 불편했습니다. 리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구성원들에게 의사 결정권을 주면서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능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좋은 프로그램은 자유와 자발적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MBC <무한도전>이 대표적입니다. <무한도전>은 옛날 코미디같이 작가들이 미리 대본을 다 써주고 그대로 연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열린 방식으로 참가자들이 신나서 노는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출연자에게 '오늘은 이 주제로 한다'라고 큰 방향만 제시하고, 대본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도록 한 최초의 예능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과거의 권위주의적 질서에서 벗어나는 조직은 처음엔 이완(弛緩)됩니다. 규율과 질서 속에만 있다가 갑자기 풀어지면, 처음에는 일을 안 하지요.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고 공부하게 되고, 그때부턴 자발적으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큰 성과를 내지요. 저는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 강원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MBC 기자가 돼 노조위원장을 거쳐 사장까지 역임했습니다. 모험이나 다름없는 일인데, 매 순간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노조위원장이 사장이 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언론 중에는 제가 MBC 사장이 된 것을 '쓰나미'라고 표현한 곳도 있습니다. 야당 불모지인 강원도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강원도지사가 된 것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계획한 일이 아니라, 제게 다가온 운명이기도 했습니다. 승패 또는 성패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이익에 연연하며 살지 않았고,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았습니다. 노조위원장이 사장이 된 일, 야당 국회의원이 강원도에서 도지사가 된 일은 사회의 다양성 확보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지더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도지사에 출마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 2012년 초, 170일 동안 진행된 MBC 노조의 파업을 보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노조위원장 당시 기억을 더듬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제가 노조위원장을 할 때도 파업을 했습니다. 파업 기간은 22일이었는데 파업 이슈는 지금과 같은 방송의 독립성 문제, 그 중에서도 사장 선임 문제였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사장과 노조위원장을 동시에 해임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물론 정치권과 시민 사회권에서 중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문·방송을 다 포함해 전체 언론의 최장기 파업이 50일이었는데, 이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한 달 남짓이면 대개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서는 MBC뿐만 아니라 KBS, YTN, 국민일보 등 대부분의 주요 언론이 정권을 향해 파업을 하거나 이에 준하는 항의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 때보다 더 많은 언론인이 해고되고 징계를 당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파업에 동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요?
어느 파업 현장에나 그런 갈등이 존재합니다. 언론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언론의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그 임무를 잠시 내려놓는 게 맞는지 누구나 고민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고민입니다. 그러나 언론인의 경우 자신이 전하는 뉴스와 기사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행여 제대로 된 뉴스를 전달하지 못할 때는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더 큰 자유를 위해 직분을 내려놓는 것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똑바른 소리를 전하지 못할 것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카메라 출동>은 당시 인기 있던 심층 고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80년대 권위주의 시절, 뉴스가 진실을 전하지 못하던 때 <카메라 충동> 같은 고발 뉴스가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뉴스 전체가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한두 개의 인기는 사회 전체로 볼 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프로그램에서 보도한 사안 한 건 한 건에 대해서는 성과가 많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보도는 지하철 '분당선' 부실시공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분당선은 지하에서 공사를 진행했는데,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부실하게 사용한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한 것입니다. 그때 포크레인을 동원해 부실 시공한 부분을 깨 내고, 현장을 직접 보여준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리한 취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 이 보도로 분당선 일부 구간은 건설이 중단됐습니다.
- 언론영역에서 정치영역으로 이동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언론에 있으면서는 정치를 하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정성을 강력히 주창하는 언론인으로, 정치와는 거리를 둬야 했습니다. 결탁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거죠. 그런데 방송사 사장을 마치고, 비례대표로 민주당에 가면서 정치를 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언론의 전체적인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하지만, 언론을 떠난 사람 중에는 정치권에서 언론 자유와 언론의 정치적-경제적 독립성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민주통합당 후보로 강원도지사에 도전할 때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강원도는 제 고향이지만,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우리나라 최전방이고 안보가 최우선인 지역입니다. 그래서 진보와 개혁을 지향하는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매우 취약합니다. 이광재 전 지사 전까지는 민주당 출신이 도지사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런 일방적 정치 구도는 강원도의 발전에 큰 취약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도지사나 시장, 군수를 많이 배출해 여야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 강원도를 위한 좋은 정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광재 전 지사는 짧은 기간 재임을 해서 본인의 꿈을 펼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이광재 전 지사의 정치적 이념이나 도정 운영 철학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의 뒤를 이어 강원도지사를 하는데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 늘 '남북 평화협력'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분단의 상징인 강원도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분단과 통일문제 등에 대해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있나요?
강원도는 유일한 분단도(分團都)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북 강원도 인구가 168만 명이고, 남 강원도는 155만 명입니다. 인구는 북쪽이 더 많지만, 면적은 남쪽이 더 큽니다. 강원도는 이 둘을 합쳐 300만 명이 넘는 매우 큰 도입니다. 지금은 DMZ로 막혀 있지만, 그 전에는 남북을 쉽게 오갔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던 곳입니다. 강원도 전역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 철책으로 막힐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해치던 그런 지역입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이 처절하게 농축된 땅이, 바로 이 강원도입니다.
제가 태어난 동네가 지금의 김유정역 부근인데, 그곳에서는 한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해치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에게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죠. 어릴 적에 봄이 오면 어머니가 산나물을 캐러 가십니다. 저도 따라가지요. 저쪽에 취나물이 많이 있는데 이상하게 어머니는 그쪽으로 안 가시는 겁니다. 내가 어머니께 '저기 나물이 많은 데 왜 안가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저기 옛날에 누가 누구를 쏴 죽여서 시체가 놓여 있던 자리다'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또 어떤 마을은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날이 모두 같습니다. 한 날에 다 죽은 것입니다. 마을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어서 오늘도 그 아픔을 갖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아픔과 적대감은 점차 줄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는 인식이 넓고 깊게 자리해 있습니다. 지금 강원도는 갈등과 대결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지역이 됐습니다.
남한 정부는 오랫동안 북한 인접 지역에 국가발전을 위해 공장을 짓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에서 대포를 한 번 발사하면, 큰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안보상의 이유로 강원도는 국가발전에서 배제됐습니다. 그러나 강원도민들도 과거와 달리, 지금까지의 과도한 염려와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북방 정책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는 대륙으로 진출하자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한반도는 반도 국가인데 북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으니, 사방으로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는 섬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정학적으로 아주 곤란한 상황에서 이것을 깨자는 인식이 점점 생겨나고 있습니다.
- 지역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늘 존재합니다. 강원도도 알펜시아 문제로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밀양도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한국전력과 주민 간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송전탑 건설이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첨예한 갈등,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알펜시아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 1조6000억 원을 들여 지은 시설입니다. 올림픽을 치룰 시설과 호텔 등을 지었는데 분양이 잘 안 돼서 빚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과 의회에서는 매일 1억1000만 원의 이자가 나가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첨예한 갈등을 풀어내는 일은 존중과 존엄에 대한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민원이 생기면, 이를 제기한 쪽과 인허가를 담당하는 행정기관 및 정치권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보통 정치와 행정은 여기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의 관점으로만 접근합니다. 이렇게 협소한 접근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치와 행정은 존중받고 존엄하게 여겨지길 원하는 인간의 심연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행정이 법적 해석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진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강원도 골프장 건설 문제와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는 상황이 거의 비슷합니다. 강원도 골프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제가 지사가 될 때만해도 수십 개였는데, 임기 중 거의 다 해결하고 극소수만 남아 있습니다. 골프장과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분 대부분이 우리 어머니 같은 분, 즉 80대 어르신들입니다. 이분의 존엄은 보장하지 않은 채 행정적인 보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고 봅니다. 인간 사회에서 생기는 수많은 갈등의 밑바탕에는 늘 존중과 존엄의 문제가 있습니다. 상대를 대우해야 해결하는 문제는 돈이나 법만으로는 절대로 해결이 안 됩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핵심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존엄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 '인간 존엄'을 내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도지사의 지위에서 주위 보좌진들과 일반 도민들에게 인간 존엄과 존중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는 일일 것 같습니다.
- 칸트 철학의 결론이 바로 '인간 존엄'입니다. 국가, 정치, 경제가 존재하는 이유가 모두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가치가 나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거쳐서 독일 헌법 제1조 1항 '인간의 존엄'이라는 규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복지국가가 성립됐고요. 한국의 복지국가 논쟁은 핵심인 철학적 바탕과 신념 없이 경제적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복지 국가들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철학은 헌법에만 있는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자유, 배가 고프지 않을 자유(권리),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자유(권리), 원하면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권리) 등 하부 조항과 법률에 하나하나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정책도 만들어지고 예산도 편성돼야 합니다. 출산율에 대해서도 '왜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을까? 나름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보다는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문제라며, 무작정 100만 원씩 주고 아이를 낳게 하자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누가 100만 원 준다고 애를 낳겠습니까.
저는 수행비서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도청 직원은 물론 강원도민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 나와 동등한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도청에서는 낮은 직급에 있을 수 있지만, 집에서는 가장이고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귀한 자식입니다.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직위·직급은 일을 하기 위한 잠정적 수단이지 그 사람의 본질, 또는 존엄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수직적 위계질서·상하관계 속에서는 폭언, 폭력, 성희롱 등 비인격적 행위가 상존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도청에 부임하고 나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것을 점차 없애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 히틀러 패망 이후 독일이 발표한 '퀼른 기본강령'에는 "독일이 있는 이유, 정치를 하는 이유, 경제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헌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켜지는지 아닌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경제민주화도 헌법 제119조 1항에 있지만, 잘 실현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7공화국이 필요합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제6공화국이 수립됐습니다. 이제 제6공화국이 지향했던 최소한의 민주화가 수명이 다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7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제7공화국이 되면 강원도를 비롯한 한반도의 지방자치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7공화국은 제6공화국의 최소 민주주의를 넘어 '인간 존엄'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복지국가가 될 것입니다. 거기에 자치 분권 국가를 지향하는 양원제, 통일국가로 가기 위한 남북 경제 공동체, 그리고 대통령 연임제 또는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이 포함됩니다. 이것과 밀접하게 연결해 지금의 선거제도도 지역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포함해야 합니다. 많은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자치 분권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앙집권적 질서는 독재로 이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독재를 하려면, 권력을 중앙으로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지역에 나뉘어져 있으면 독재가 힘듭니다. '퀼른 기본강령'을 보면, '중앙 집권주의는 반(反) 독일적인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중앙집권은 경제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경제성장의 동력은 지역 주민들이 자기 지역을 위해 자발적으로 뛸 때 생기는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작은 도시들에서 그 지역 경제의 90%가 일어납니다. 그러니 국제적 외환위기가 와도 충격이 적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국가, 그런 지방 자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 지난 삶을 돌아보면, 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에서 나왔나요?
살다 보면 늘 어려운 과제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대개는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두렵고 싫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속성입니다. 힘든 과제 앞에 그것을 피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피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제가 사는 방식입니다. 태어난 것도 제 마음대로 태어난 게 아니듯 일도 제 마음대로 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으면 죽지.'(웃음) 이렇게 말입니다. 그게 오히려 편안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 앞으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싶으신가요?
하고 싶은 건 많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지금 청년들은 우리가 살 때보다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둘째 딸이 아직 학교를 다니는데, 젊은이의 낭만 같은 것은 없어 보입니다. 첫째 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데, 첫 직장의 설렘을 갖고 일하기보다는 마냥 힘들어 보입니다. 취직하는 것도 힘들고, 취직해도 힘들고…. 도대체 이게 사람이 사는 건지,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 문명의 전환기처럼 느껴집니다. 과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경쟁하다 공산주의가 붕괴했습니다. 이후 자본주의는 극단적으로 가다가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지면서 일정 부분 스스로 붕괴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명의 전환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청년들입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분단 이후 통일을 준비하는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 최문순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자유란 일종의 '생명'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유를 추구합니다.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돈을 벌려는 이유는 돈 자체를 벌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부(不) 자유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밥도 못 먹고, 버스도 못 타고, 영화도 못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없으면 사람을 참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권력을 가지려는 것 역시 자유를 향한 노력입니다. 남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것이죠. 속박의 부자유를 거부하려는 노력입니다.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인터뷰는 정치경영연구소 손어진 연구원이 진행하고, 정리는 조경일 연구원과 정인선 인턴이 맡았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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