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에는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박정수(활동명 이특) 씨에 대한 뉴스가 그랬다. 이날 오후 9시께 한 연예매체가 "슈퍼주니어 이특, 6일 부친상 조부상 조모상 한꺼번에"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한 차에 타고 있던 박 씨의 부친과 조부모가 교통사고로 모두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슈퍼주니어의 무게감에 일가족 참변이라는 비극이 더해져, 기사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 지난 2012년 10월 30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306보충대로 현역 입대하는 박정수(활동명 이특) 씨가 입소 전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인간 박정수의 비극을 대하는 언론의 자세
연예인의 가족사가 수십 개의 언론사가 보도할 기삿거리인지 일단 의문이지만, 기사를 통해 사람들의 응원이 박 씨에게 전해진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과연 박 씨가 이런 보도를 원했을지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 와중에 억지로 찾아낸 '기사의 가치'라서 조금 궁색하긴 하다.
더 큰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한 언론사가 단독을 내걸고 "동작소방서 측 '이특 부친·조부모상, 교통사고 아닌 자살 추정'"이라고 보도했다. 소방서 측에 교통사고가 아니라 자살사건으로 들어왔으며 3명 모두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였다. 10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달리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자살'은 자극적인 키워드인지라, 여론의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이후 모두가 아는 것처럼, 경찰서 관계자가 "박 씨의 아버지가 부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7일 오전)까지도 이특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순위의 위상(?)에 따라 기사도 덩달아 점점 더 자극적으로 달리고 있다. 이 정도면 폭주다. '이특'으로 검색하면 "이특 아버지는 왜 부모님과 집단자살했나?", "이특 부친, 왜 부모 살해하고 자살했나"와 같은 제목이 줄지어 나온다.
"이특 부친·조부모 사망, '친누나' 박인영은 누구?"라는, 해맑게 느껴질 정도로 눈치 없는 기사도 있다. 장례식에서 소개팅 주선하는 꼴이다. 검색어 1위인 이특을 기사에는 집어넣어야겠고 이미 사건에 대해서는 어젯밤부터 몇 번이고 써서 더 이상의 자기복제는 민망하고. 어쩌겠는가? 박 씨와 함께 빈소를 지키고 있는 누나에 대해 서술할 수밖에. 이제 곧 연예인이 빈소를 방문할 때마다 'A가 방문했다' 'B가 방문했다' 'C도 방문했다' 는 식의 기사가 이어지지 않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박 씨의 부친은 치매를 앓아온 부모를 모시느라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특이란 유명인의 이름 아래 놓인, 인간 박정수의 가정사가 이렇다. 주변에 이런 사건이 터지면 장례식에서도 쉬쉬하며 자살이란 말은 되도록 꺼내지 않는다. 활자로만 봐도 비극적인 일을 몸으로 겪은 사람의 상처를 굳이 쑤시지 않기 위해서다.
너무 많은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을 쓸 것인가'만큼이나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가 언론사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일가족의 비극을 대하는 언론의 자세가 너무나 아쉽다.
대중, 슬퍼하는가 흥미로워하는가
더 나아가 대중의 반응이 아쉽다. 물론 언론이 부채질했겠지만 애초에 불씨 하나 없었다면, 옆에서 부채질한다고 불이 타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온 국민이 박 씨 가족의 비극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언론이 이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감히 '흥미롭게'라는 말을 썼다. '진짜 이특 아빠가 죽였을까?' '목 졸라 죽인 거래' '슈퍼주니어 이제 어떡해?' '이특 멘탈 회복 가능할까?' 대충 인터넷을 둘러보면 여론의 반응이 이렇다. 대다수가 박 씨와 생면부지일 사람들이라 이 이상의 반응이 나올 것도 없다. 이 정도의 반응을 자극적인 사건에 대한 '흥미'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손이 심심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이특의 기사를 클릭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정말 이 비극에 공감하며 슬퍼하고 있는가?
박 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나 애정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 역시 슈퍼주니어란 그룹에 늘 무심했다. 대중으로서 박 씨에게서 어떠한 활력이나 즐거움을 얻어 본 기억도 없다.
그러나 조부모와 아버지를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의 이야기를, 일차원적인 흥미만으로 보도해서도 안 되고 소비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일상이 팍팍해도 모두 이런 방향으로 폭주해서는 안 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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