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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성택 처형, 신뢰 프로세스 '딜레마'에 빠지다"

[2013 남북관계 되짚어보기]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인상적 장면

남북관계 암흑기였던 이명박 정부 5년을 지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2013년, 남북관계가 다시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 안보위기는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이른바 '말(언어) 폭탄'을 거치면서 급기야는 전쟁위기로 격화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겹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하지만 남북은 7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을 진행했고 7차례에 걸친 마라톤 회담 끝에 8월 14일 개성공단 재가동에 합의했다. 뒤이어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합의하면서 남북관계가 탄력을 받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도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북한이 상봉 나흘을 앞둔 9월 21일, 돌연 상봉 연기를 발표하면서 올해가 저물어 가는 현재까지 남북은 서로를 향해 비난만 주고받는 상황이다.

이처럼 올해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열전의 한해였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전달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 3년 만에 재개된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 양측은 개성공단 재가동에 합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1년 동안 한 것이라고는 죽어가는 개성공단을 살린 것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 기존에 해왔던 남북 교류 사업은 여전히 재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보다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3년 한 해 동안 발생했던 남북관계의 주요 사건을 되돌아보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며 2014년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전문가 10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의견을 내준 전문가는 다음과 같다.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박후건 경남대학교 교수,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장용석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학교 총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가나다 순). <편집자>

▲ 남북 양측은 지난 6월 9일 남북 장관급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을 실시했다. 남측 수석대표 통일부 천해성(왼쪽) 통일정책실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김성혜 부장이 수석대표회의를 갖고 있다. 장장 17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가졌음에도 양측은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 장관급 회담 결렬의 조짐은 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일부

2013년 남북관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지난 6월 회담 대표의 '격(格)'논란으로 무산된 남북 당국회담을 가장 많이 꼽았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두 달째로 접어들던 지난 6월 6일, 북한은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특별 담화문을 통해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이에 같은 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6월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열자고 역제안했다.

북한이 정부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6월 9일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기 위한 실무접촉이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양측은 9번의 수석대표 회담과 장장 17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했음에도 합의문 도출에 끝내 실패했다. 양측이 정식 회담도 아닌 '접촉'에서부터 이견차를 보이며 회담 전망은 어두워졌다.

양측이 입장 차를 보였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회담 대표의 '격' 때문이었다. 남측은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 북측 조선노동당의 통일전선부장인 김양건 당 비서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측은 기존에 해왔던 대로 조평통 부의장이나 서기국장을 내보내겠다고 맞섰다. 이에 남측은 통일부 장관이 아닌 차관을 회담 대표로 북측에 전달했고 북측은 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대표단 파견을 보류하겠다며 사실상 회담 결렬을 통보해왔다.

남북이 회담 개최를 합의하고도 격 문제로 회담이 무산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은 "박근혜 정부가 과거 정부와 차별성을 보이려고 했는데 도가 지나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이번 일로 "조평통 서기국장이 어떤 위치인지에 대해 정부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조평통 서기국장은 상근직이다. 조평통 내부 조직을 보면 서기국장을 하다가 부위원장을 하는 경우도 빈번한데, 부위원장은 비상근 명예직에 속한다. 그는 "이를 보면 서기국장이 오히려 조평통의 실권자"라며 "경우에 따라 통전부가 조평통 모자를 쓰고 회담에 나오기도 한다"면서 격 논쟁으로 대화가 무산된 것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회담 대표 격 논란이 "현실적으로 크게 설득력도 없고 정책적 의미도 없는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그동안의 남북 대화를 보면 장관급 회담 말고도 수많은 회담이 있었는데 상대방 회담 대표의 격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경우는 없었다"며 "남북관계가 이런 형식적인 문제 때문에 상당히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는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들으면서 대북정책을 남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청와대 홍보 수석이 정책 부서 위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정책 혼선이 구조화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덧붙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역시 이례적인 일이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밝힌 '신뢰'가 상호작용으로 쌓아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북한이 받아들여야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이 이번 사건으로 잘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전례 없는 격 논란이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 속에 이와 비슷한 사례인 회담 대표 교체를 주목할 만한 사안으로 꼽은 전문가도 있었다. 지난 7월 6일 개성공단 관련 당국 회담의 남측 대표였던 서호 당시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3차 회담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김기웅 신임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회담 대표로 등장했다. 교체 당시 통일부는 예정됐던 인사였다고 설명했지만,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회담대표를 교체한 것은 이례적인 사안이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었다.

▲ 지난 7월 6일 남북 양측은 개성공단 관련 당국 실무회담을 개최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당시 남측은 서호(오른쪽)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을 대표로, 북측은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을 대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남측은 예정된 인사라는 이유로 3차 회담부터 회담 대표를 서호 단장에서 김기웅 현 단장으로 교체했다. ⓒ통일부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서호 단장이 회담 대표에서 교체됐던 것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당시 정부가 개성공단을 살려낸다는 목적이 확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관측했다. 그는 "대내적인 여론이 이것마저 (정부가) 거부하면 명분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협상에는 응했지만, 협상 성공에 대한 강한 유인이 없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협상 태도에도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회담 대표 교체에 대해 "내부의 정책결정구조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 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부인했지만, (서호 단장이) 북한에 좀 저자세를 보였다는 것, 압도적인 원칙론을 북한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회담 대표 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 아닌가"라며 "회담의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남북 인력 철수로 시작된 사상 초유의 개성공단 중단

남북 양측은 개성공단에 파견된 자국 인원들을 철수하며 공단 가동 이후 처음으로 공단이 멈추는 사태를 불러왔다. 북측은 지난 4월 8일 개성공단 내 노동자 철수를 발표하며 공단 운영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이후 남측은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촉구했지만 북은 응하지 않았고 결국 정부는 26일 공단에 잔류하고 있는 남측 인원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장용석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특히 북측의 조치에 주목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개성공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6.15 공동선언의 산물로 나온 것인데 북한이 이것마저 흔들었다는 것은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남측 인력의 철수에 대해서는 "개성공단에서 우리가 철수하면 경제적 피해가 많고 정부의 공신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안이었다"며 "그럼에도 국민들의 피해를 감내하면서까지 철수 조치를 감행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 개성공단 남측 인원 전원 철수 조치가 내려진 다음 날인 27일, 남측 인원들이 차량마다 한아름씩 짐을 싣고 도라산 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해 남측으로 내려오고 있다. ⓒAP=연합뉴스

경남대학교 김근식 교수는 11일 류 장관의 대화 제의와 26일 남측 인력 철수가 상반된 조치라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박근혜 정부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당시 대화 제의에 대해 "북에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북측과 대화는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것이 이명박 정부와 다른 점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 정부가 25일 북한에 실무접촉을 제안하면서 다음날 정오까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대조치를 하겠다고 사실상 북측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원칙을 지켜가면서 북한의 버릇을 고쳐나가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지점에서 11일 대화를 제의한 것이고 DJ 햇볕정책의 비판지점에서 최후통첩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굉장히 애매한 입장에 서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김영삼 정부 때처럼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를 부른 지난 3월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말(언어) 도발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김정은, 한국의 박근혜, 미국에서 재선한 오바마 등 새로운 지도자들이 서로 '기싸움 프레임'에 갇혀 먼저 양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최근에 겪어보지 못한 전쟁위기가 고조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기간에 고도로 높아진 심리적, 물리적 긴장 속에서 '현지 하급단위 부대' 수준에서 어떤 기술적인 실수라도 생기면 그것이 대규모 군사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며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머지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전쟁위험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건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장성택 숙청, 한반도 넘어 동북아 전체에 영향 미칠 사안

한편 몇몇 전문가들은 지난 12월 12일 전격 처형된 장성택 숙청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는 "장성택이 끌려나가고 재판을 받는 모습이 공개됐는데 충격적이었다"며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려고 해도 북측이 저렇게 나온 상태에서 관계개선을 시도하면 우리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장성택을 즉결 처형하는)저런 북한과 어떻게 신뢰를 구축하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신뢰 프로세스를 남북관계의 기치로 내건 이 정부는 어떻게 북한과 신뢰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지난 8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장성택(빨간 원 안)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중앙TV는 9일 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장성택 체포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경남대학교 박후건 교수 역시 "장성택 숙청은 북한의 대외관계나 대미관계, 나아가 남북관계와 한반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장성택 숙청은 곧 "중국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국내에 퍼져있는 불만을 해소한다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장성택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총괄했다는 점에 착안해 "북한에서 중국과 사업을 하면서 소수의 성공한 사람과 다수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생겼을 것"이라며 "장성택 같은 아주 상징적인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불만을 무마시키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부정부패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이 북한의 자원을 싼값으로 넘기고 부정부패 행위를 저질렀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 사람들과 사업하면서 부정부패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북한이 장성택 처형을 통해 중국에는 "장성택이 했던 방식으로는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국내에서는 중국과 교역을 하는 사람들 중 손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나름의 보상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장성택 처형에 담긴 메시지를 제대로 판단해 향후 북·중 관계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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