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시민연합은 24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철도파업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건물은 지난 22일 경찰의 철도 노조 강제 진압이 자행된 건물이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민언련 유민지 활동가는 "주요 언론은 철도 파업이 벌어진 본질적 이유를 전하지 않고 '철밥통'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기주의를 펴고 있다고 묘사한다"면서, 특히 "지상파, 보수 일간지, 종합편성채널의 삼각동맹이 정부 대변인 역할을 자처해 철도 파업을 흔들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 3사, 시민 불편 강조, 공권력 투입 정당화"
민언련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KBS)·문화방송(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 보도가 최근 철도 파업과 관련해 가장 많이 내보낸 보도는 '시민 불편'이었다. 노조 파업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파업 하루 전인 8일부터 17일까지 각 방송사가 내놓은 보도 70건 가운데 파업에 따른 피해나 우려, 시민불편, 사건 사고를 전하는 기사는 총 43건(61%)이었다. 철도 노조가 파업 이유로 밝힌 '민영화 논란'에 대한 보도는 방송사별로 2~3건에 그쳤다. KBS는 특히 파업으로 인한 '물류대란'에 주목하며 "당장은 아니지만 2~3일 후 물류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방송사들은 철도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는 등 정부 입장을 그대로 전했다. 특히 KBS는 민영화 전조로 논란이 되고 있는 수서발 KTX 법인 설립에 대해 "공기업 개혁의 첫 시금석"이라고 하는 한편,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주제 자체를 '철도 파업과 공기업 개혁'으로 뽑기도 했다.
방송 3사는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투입된 22일 보도에서는 정부 시각을 더욱 노골화했다는 지적이다. 유 활동가는 MBC 보도를 예로 들며, "마치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듯이 경찰을 주어로 한 리포트가 이어졌다. '연행 노조원 경찰 조사 중'이라는 리포트에선 마포경찰서를 생중계로 연결해. 굉장히 중요한 범죄자가 연행되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SBS는 이날 "지난 2009년 파업 때는 교통 불편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노조가 8일 만에 전격적으로 파업 철회를 선언했었다"며 여론 악화로 인한 노조 파업 포기가 사태 해결인 것처럼 다뤘다.
▲송호준 철도 노조 정책팀장은 파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여론과 언론사가 보도하는 여론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사진은 철도 노조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조중동·종편, 노골적인 철도 노조 흠집 내기"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는 '철도 노조 흠집 내기'에 골몰했다는 지적이다.
<조선>은 철도 노조 내부 분란에 주목했다. 파업 참가자들이 업무 복귀를 왜 안하는지를 분석한 기사에선 '노조 간부가 주도해서 파업 불참자를 따돌리는 분위기'라며 노조원들이 억지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는 한국철도공사가 전날 언론에 배포한 '파업 가담자 분위기'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연일 익명의 철도 전문가를 보도 내에 등장시켜 철도 노조를 비판했다.
<중앙>과 <동아>는 사설에서 철도 노조에 대한 비판 입장을 강하게 드러냈다. <동아>의 경우 이틀에 한번 꼴로 관련 사설을 내보냈는데, 21일자 사설에서 '수서발 KTX 설립은 당장 효과 나지 않더라도 노조 행태를 바꿀 것'이라고 하는 등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이다. 유 활동가는 "<중앙>의 경우 중도 입장을 가장한 채 정부 입장 대변했다"고 말했다. <중앙>은 13일 사설에서 "민영화를 빌미로 다른 것을 얻어내려는 속셈"이라고 파업 노동자들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종편 가운데선 특히 TV조선이 철도 관련 보도를 집중 보도했는데, 진압 사태가 일어난 22일엔 다섯 시간 가량을 할애해 특보를 내보냈다. TV조선은 이날 뉴스에서 보도 사이에 보수 패널들을 연이어 초청해 대담을 진행했다. 유 활동가는 "보수 인사들과 함께 상황을 보면서 '불법이다', '박근혜 정부 흔들기'라는 얘기를 반복하며 '박근혜 정부가 단기적으론 비난 받더라도 결정적 순간에는 밀어붙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 활동가는 "결국 아침에는 조중동이, 낮에는 종편이, 밤에는 지상파가 삼각동맹을 이뤄 하루종일 정부를 편들고 철도 노조를 비판하는 뉴스를 내보낸 셈"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관심은 '왜 발생했느냐' 아닌 '어떻게 끝낼 것인가'"
현재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송호준 철도 노조 정책팀장은 파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여론과 언론사가 보도하는 여론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면서, 언론에서 '악의적 왜곡'이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송 팀장은 토론에서 "그동안 철도 노조의 파업은 노조 이기주의로만 몰렸고, 치기 어린 행동인 양 왜곡되면서 눈물 머금고 현장으로 복귀했던 경험이 있다"면서, "20년간 근속하면서 여섯 번 파업을 경험하는데 이번처럼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광범하게 확산된 파업이 없었다"고 말했다. 언론이 주장하는 '국민의 외면을 받는 파업'이 아니라는 얘기다.
노조 간부가 파업 불참자를 따돌리는 탓에 노조원들이 억지로 파업에 참가한다고 한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그는 "파업 참여하는 조합원뿐 아니라 현장에서 근무하는 조합원들도 제가 생각하기에 단 한 번도 이번 파업의 정당성에 대해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생하지 않은 일을 근거로 벌이는 파업'이라고 언론이 깎아내리는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송 팀장은 "현재 수서발 KTX 노선을 분리해 새 주식회사에 내주는 자체를 철도 노조는 민영화로 보고 있는 것"이라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니라 지금 발생하는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쟁점"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수서발 KTX 노선을 둘러싼 '민영화 논란'이라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특히 철도 파업을 둘러싼 쟁점이 왜곡된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지난해 MBC 장기 파업을 주도했던 이용마 해직기자는 "논쟁의 핵심은 민영화"라며 "언론은 '왜 발생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그는 "민영화인가 아닌가하는 부분에 대해 언론사는 '판단 중지'를 하고 정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사태를 정부의 시각으로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언론이 여론을 왜곡시키면서 철도 파업을 명분 없는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대응하는 데 대해 '본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기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노조의 대규모 파업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데, 본보기 차원에서 다음에 어떤 노조도 파업하지 못하게 하려고 초전박살로 밀어붙이려는 것 같다"면서 "MBC에서 보듯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은 노조로선 퇴로가 없어 물러날 수 없으니 파업을 장기화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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