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 언론상 심사위원회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남도민일보>와 <프레시안>을 제12회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지난 2001년 9월 24일 고급정론지를 지향하며 출범한 이래 오늘날 대표적인 인터넷매체로 자리 잡은 <프레시안>은 2013년 6월 1일 언론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며 제2 창간을 단행했다"며 "단편적이고 선정적인 정보가 범람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관점이 있는 뉴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십여 년간 심층보도와 기획기사를 통해 차별화된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였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동시에 황우석 사태, 한미FTA,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파헤쳐 과학권력, 정치권력, 기업권력에 맞서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감시하고 진실을 수호하기 위하여 분투했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주식회사였던 <프레시안>이 올해 언론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이유와 그 과정에도 주목했다. 이들은 "<프레시안>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매출이 저조한 온라인 매체 시장의 구조적인 한계로 인하여 <프레시안>은 만성적인 경영 불안정을 겪었다"며 "경영난을 극복하고자 독자, 후원자와 유대를 강화하고 오프라인 사업을 벌이는 등 자구책을 찾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한때 자본과의 제휴를 통한 생존 방식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언론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받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자본을 택하지 않았다. 언론사로서는 국내 최초로 협동조합 체제로 전환했다"며 "세계적으로 협동조합 언론매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성 언론이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예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위원회는 "이제 <프레시안>은 생명∙평화∙평등∙협동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대안언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생존과 언론자유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국 언론계는 이들의 미래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송건호 언론상 시상식은 '청암 언론 문화 재단'이 심사위원회 구성, 수상자 선정, 시상식 개최 등을 맡는다. 이번 12회 시상식은 오는 17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송건호 선생의 삶과 '송건호 언론상' 역대 수상자 송건호 선생은 지난 1926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을 거치며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편집권의 독립에 깊은 관심을 보인 송 선생은 60년대에 이미 <신문편집인협회보>를 통해 "편집의 자주성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1971년,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언론자유수호선언'을 감행하자 송 선생은 간부임에도 후배들을 지지했다. 또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취임했지만 유신정권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 수차례 정보기관에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신문사를 떠난 이후에는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등 역작을 연이어 출간하며 민족의 장래, 지식인의 사명 등에 대해 고민했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지난 2003년 재심에서 사법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1984년에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주언론시민연합)'을 결성해 초대 의장을 지냈고 기관지 <말>지를 창간했다. <한겨레>창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 1987년 12월 한겨레신문사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오랫동안 정권의 압박에 시달리며 생긴 불안감, 긴장감, 고문 후유증 등으로 인해 1990년에 급기야 파킨슨병이 발병했다. 송 선생은 2001년 12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송건호 언론상 9회(2010년) 수상자는 전 문화방송(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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